젠더 그리고 정치적 내전

2025-01-17 0 By 커피사유

최근 독서 모임 중 하나에서 1월 도서로 데버라 캐머런의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아주 ‘의외’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주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고, 남성인 나로서는 여성 친구들의 경험과 정동을 모두 공유하지는 못하기에 어떤 연유에서 페미니즘이 등장했으며 왜 ‘젠더’ 이슈로 우리 사회가 갈등을 겪고 있는지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내가 여성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에게 다뤄주기를 제안했다.

이제 2/3 정도 읽었는데, 주요하게 느낀 것은 두 가지. 첫째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학만에 한정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젠더’와 ‘사회구조’에 관한 담론임을 느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 · 문화적 성(Gender)를 구분하는 점이었는데, 지금까지의 나 자신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구분할 수 있는 이 둘을 은연 중에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고 상당히 놀랐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 중 하나가 사회 · 문화적으로 결정된 성, 여성에게 육아 등의 무급 노동의 부담을 지우기도 하고, 외모와 특정 복식이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이상적인 성’이라는 점을 확인한 뒤, 어쩌면 이들이 제기하는 이의가 남성도 똑같이 제기할 수 있는 이의지 않을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바람직한 모습’이 나에게 강요되어 왔던 것은 아닌가? … 이처럼 나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무언가의 당연성을 의심하고 이를 다시 불확실성의 장으로 올려두는 것에 페미니즘이 젠더와 관련된 영역에서는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니체를 통해 ‘상식’, ‘당연함’이라는 말에 알러지를 가지게 된 나로서는 철학의 연장선으로써 이전보다 페미니즘에 좀 더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지금도 남성은 왜 치마를 입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왜 남성은 머리에 리본을 달아서는 안 되는 것인가? … 등의 복식에 관련된 질문부터, 왜 남성은 의젓해야 한다고 배우는 것일까? … 등의 이러이러해야 함이라는 문화와 도덕의 명령들에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지금으로써는 〈페미니즘〉이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것처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대해서도 이 운동 혹은 사조는 ‘자유’ 그리고 ‘존재’에 관련된 〈기둥 흔들기〉를 촉진할 수 있는 주목해야 할 철학적 움직임으로 보아야 한다는 평가에 이른 듯 하다.

느낀 것 중 둘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과 관련된 젠더 논쟁이 사실 한남동 관저 앞에서 벌어지는 일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문제는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가 지적하는 것처럼 집단을 구성하는 개별적 차이를 무시하고 상대를 집단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지각하고, 이러한 지각을 기반으로 혐오의 표현을 쌓아올린 끝에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는 움직임에서 발생한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운명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것 외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귀찮아하고 (공부하고, 알아보고, 자신과 반대되는 것과 마주하면서 고통을 겪는 것을 쾌락 원리에 따라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의 특징과 다양성을 일일이 확인하고 대면하는 것보다는 단순하게 몇몇 사례와 특징들을 하나의 ‘키치’나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이 틀에 기반하여 상대를 간편하게 재단하는 것을 소위 ‘에너지 절약’의 측면에서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원성의 부정, 나 편하자고 암묵적으로 행하는 이러한 작용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사실상 심리적 내전의 수준에 이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인지하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갈고 닦으며 반대하는 존재에 부딪히는 존재로써 스스로를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 생각보다 〈페미니즘〉이 단순하지 않고, 데버라 캐머런이 지적하듯 그 내부에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마개로 막아둔 채 잊어버린 모든 영역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일일이 짚으며 내 정신의 지평선을 넓히는 작업을 이어나가는 나의 여정이, 이제는 타자와의 공존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책과 작금의 사태로 깨달아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