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12. 혼밥의 시간

사유 #12. 혼밥의 시간

2021-02-02 0 By 커피사유

사유(思惟)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공간이자, 커피, 사유(思惟)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고독(孤獨)한 식사 속의 아(我)에 대하여


내가 무턱대고 길을 나선 이유는 그렇게 진지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었다. 오히려 엽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였다. 이 계절에, 이 시국에, 굳이 일본식 정통 라멘이 땡긴다고 기여코 먹어보겠다는 내 이상한 심리가 원인이라고 한다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었다. 이제 졸업을 한지도 한 달 정도 가까이 되어가는 고등학교 때, 장학금이라도 한 번 타겠다고 상경해서 면접을 본 후, 다시 내려올 적에 시외버스를 서울남부버스터미널에선가 기다리며 먹었던 라멘 한 그릇이 오늘 우연히 떠오른 나는 결국은 먹고 싶다는 수 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얼떨결에 거리로 나가게 되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옷깃을 조여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체감하게 되었다. 2월 초이지만 아직 겨울은 겨울이라고, 게다가 저녁 무렵이라 더럽게 추웠다. 저녁을 혼자 먹겠다고 선언해버린터라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나는 단지 몇 시간 전의 나의 결심을 실현코자 하는 의지로써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구글 지도를 켰다. 역시 국내 지방에서는 구글 지도는 길 안내에 대해서는 거의 무쓸모에 가까웠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네이버 지도 앱을 다운받아 돌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구글 지도 앱이 서울에서는 그래도 쓸만하다는 것을 우연찮게 떠올리고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포기해버렸다. 굳이 아까운 요금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장갑이라도 끼고 올 걸이라는 생각을 계속 드게 만드는 차가운 날씨에, 몇 시간 전의 욕망의 연장선으로 검색해놓은 근처 일본 정통 라멘집과 나의 위치를 보면서 길을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먹자 골목’이라고도 불리는, 나에게는 나의 중학교 시절이 담겨 있는 곳이기에 익숙하기도 했지만, 지난 2년 동안의 변화는 너무 색다르기도 했기에, 게다가 그 2년 전에는 일본 정통 라멘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인터넷으로 본 라멘집을 찾아내는데에는 조금의 시간이 더 걸렸고, 내 귀는 조금 더 불그스레 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여코 해냈다. 어느 가게 앞에 나는 멈추어섰다. 인터넷 맛집 정보에서 찾은 입구 사진과 똑같았다. 그 이전에 다른 가게와 헷갈릴 뻔 하였는데, 헷갈리지 않고 잘 찾아온 나 스스로에게 안도를 내쉬면서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으로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허락한 ‘혼밥’의 시간에 대한 첫 선택은 돈코츠 미소 라멘 한 그릇과 야채 교자 만두 한 접시였다. 일본 가게에 대하여 점주가 그래도 판에 박힌 이미지라도 잘 알고 있는지, 키오스크가 있었기에, 그냥 카드로 긁어버렸다. 12,000원이 나왔다.

영수증을 뽑고 자리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 환경을 평가하는 것은 어떤 가게에 들어선 나 같은 식객이 심심하면 하는 일거리인데, 솔직히 평가하건대 기대한 인테리어에 조금 못 미치는 인테리어였다. 어쩌면 나는 아마 그 유명한 일본 TV 프로 – ‘고독한 미식가’ 따위에 나오는 약간 목재 위주의, 선술집 느낌이 나고 손을 흔드는 고양이가 반겨주는 그런 일본 포장마차식의 인테리어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중요한 것은 그 가게는 동네에 있어 유일한 일본 라멘집 가게였다. 원래는 2개였지만, 1개가 최근에 문을 닫아버렸기에 그러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 나는 그냥 라멘을 먹는 사실로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라멘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보통 온전히 나 스스로만 있는 ‘혼밥’의 시간을 전혀 가져보지 못한 나로써는 다소 어색했다. 계속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휴대전화를 괜스레 만져보기도 했다. 원래는 보통 음식이 나오기까지, 눈 앞의 선생님, 가족, 친지들 등의 어른들의 질문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친구와 뭔가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옛 추억에 대해 말했었는데,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왜인지 모를 공허감을 느꼈다. 늘 혼자 있기를 원하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하고 있다는 평소의 생각이 혼자 저녁밥을 먹겠다고 가족들 앞에서 선언하던 순간에도 깔려 있었지만, 나는 뭔가 심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뭔가,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실수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 밥을 먹는 행위를 인원으로 분류할 때, 혼자서 먹는 것과 여럿이서 먹는 것 중에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럿이서 먹는 후자의 유형을 택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고독의 체감이 싫어서이지 않을까는 생각도 스쳤다. 스스로 고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도 막상 스스로가 고독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에는 그 현실을 거부하려고 하는 본성이 있나…….


돈코츠 미소 라멘이 나왔다. 미소 라멘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잘 썰린 삶은(거의 수육에 가까운) 돼지 고기 2장에 톳 비스무리한 것과 달걀이 고명으로 얹어져 나왔다. 그 누런 국물 색깔을 이기지 못하고, 우선 목표했던 것을 정확히 이루고자 하기 위해 한 숟갈 국물을 들이켰다.

미소 라멘은 미소 라멘이고, 돈코츠 라멘도 돈코츠 라멘 그 이름이었다. 약간 된장의 진한 맛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뭐, 반년만에 다시 맛본다는 사실이 이미 그 공백을 채워 주고 있었으니까. 재빨리 젓가락을 들어 면을 흡입하기 시작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고, 나는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가 바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는 알림으로 하여 내 휴대전화가 진동한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혼밥’의 순간을 방해받은 것에 약간 심기가 불편해진 나는 은근히 속으로 약간의 성질을 부리며 도대체 무슨 이메일인가 했다. 하지만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그 성질은 이내 잠잠해질 수 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예전에 나 스스로가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할 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어 보내두었던 편지에 대한 답이 와 있었던 것이었다.

답신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나로써는 그러한 이메일 답장은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젓가락을 놓고 스크롤을 내려 본문을 확인했다. 내용은 내가 보낸 이메일에 대한 고맙다는 내용과 감동했다는 내용, 그리고 고등학교 때 그가 나를 본 모습과 그에 대한 자신의 평가 및 감정에 대한 기술이 주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충 그러한 내용이라 생각했기에 뭐, 당연하네 생각하며 스크롤을 계속 내리면서 다시 젓가락을 집어들려하던 찰나에, 문득 어느 한 문장에 눈이 멎은 나는 젓가락을 다시 집어들 수가 없었다.

널 볼때마다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철저하게 마음먹은 것 다 하는 모습을 보고, 또 허투루 말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칭찬은 고마웠지만, 나는 이 문장에서 나 자신에 대한 내외적인 자기모순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마음먹은 것 다 하는 사람이며, 허투루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게으른 인간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이 즈음하여 얼마 전의 나 자신을 다시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서울대학교라는 대학에 붙고 나서 내가 한 일은 무엇이 있는가. 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별로 유용하지 않은 것들에 얽매여 시간을 보낸 것이 대부분이지 않은가는 생각에 그 문장은 나를 심각하게 고뇌하게 만드는 방아쇠일 수 밖에 없게 되었고, 나 자신의 태만이 철저하게 마음먹은 것을 다 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으며 동시에 매일 거짓말을 일삼는 인간이라는 것을 평소의 경험에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있기에, 늘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대단하지도 않을 뿐더러 항상 비난받아야 마땅할 인간임을 나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이상하게도 그 문장의 의미는 그가 의도한 바와는 반대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는 시간을 주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의 생각으로 나아가기도 싫었다. 스스로의 과오는 원래 회개할 수는 있어도 결코 되돌릴 수는 없는 것, 그것이 한 방향으로의 흐름이라는 시간의 본래 속성에 의한 거스를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결코 더욱이 스스로를 더 후벼 파고픈 생각은 없었다.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아직 먹어야 할 것은 남아 있었다. 야채 교자 만두도 아직 꽤 남아 있었다. 다시 면을 흡입한 후, 면과 톳, 계란의 얽혀 어지러워진 속을 정돈하고자 된장 맛이 조금 우러나는, 하지만 여전히 약간 진한 맛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국물을 한 숟갈 다시금 들이켰다. 순간, 나는 사래가 들려 콜록거리는 상상을 했지만, 내 입 안으로 퍼지는 맛은 그냥 돈코츠 미소 라멘의 부드러운 육수 맛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왜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