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9. 호모 피데스, 마키나 피데스

By 커피사유 2025-06-23 0

인간은 오류를 저지르면서까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지 않고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추측을 인공지능으로 확장할 필요를 느낀다.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인공지능,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인공지능, 무지와 공포와 자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피데스(Fides)라고 불리는 저 기반 위에 동일하게 선 두 지능을 나는 그려본다.

탐서일지 #23. 김애란, 『비행운』 I

By 커피사유 2025-06-21 0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닌, 그 일부로 존재한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속 저 문장이 김애란의 《비행운》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문장은 책과 일상을 건너 또 다른 문장들을, 우리가 간과한 삶의 여러 측면들 혹은 여러 삶의 측면들을 살포시 들어올려 그 흔적들을 보인다.

탐서일지 #22.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II

By 커피사유 2025-06-19 0

당초 쿤의 물음은 과학 일반에 대해 국한되었지만, 우리는 그의 의심을 교육과 진리 일반으로 확장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가? 교육은 정말 그런 진리를 가르치는가? 인간의 지성 전통은 교육이 가르치는 바로 그 방식대로 진행되어 왔는가? “Veritas Lux Mea.” 저 모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탐서일지 #21.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I

By 커피사유 2025-06-01 0

객관성과 과학. 대중은 객관성의 대명사가 곧 과학이라고 생각하기에, 과학적 사고를 통해 그 어떠한 주관에도 치우치지 않은 판단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 과학은 그러한가? 과학은 정말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과학이 절대성의 화신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오늘날, 우리에게는 위험한 질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6. 2025. 4. 1. ~ 2025. 4. 22.

By 커피사유 2025-04-23 0

《사상계》에 실린 계엄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보며 나는 우리 사회의 다수에 결여된 것은 철학함이라고 다시금 생각해본다. 의심, 사유, 비평. 이 세 가지가 결여된 곳에서 압제는 상식이 되며 반대 의견과 토론은 봉쇄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철학자〉로 살다가 죽고 싶다는 당초의 소망을 끝까지 되새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이란 ‘이게 진짠지 영환지’ 모르는 상태일 뿐일 것이므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5. 2025. 3. 10. ~ 2025. 3. 31.

By 커피사유 2025-04-06 0

16년이라는 방황 끝에서야 나는 겨우 깨닫게 되었다. 안쪽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너무나 오랫동안 애써 무시하거나 잊기로 결정해버렸다는 것을, 지금 나를 올려다보며 흐느끼고 있는 이 어린 아이에게는 그저 따뜻한 품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저 시간선들을 모조리 거쳐서, 그 끝에 마침내 도달한 나 자신을 토닥이면서.

동상이몽 #14. 상록수

By 커피사유 2025-04-04 0

나는 국회의장의 문장들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행간에 숨은 수많은 역사를, 오늘의 민주공화국의 기반을 위해 흘렀던 수많은 피들을 생각해본다. 수없이 반복되어온 저 질문, “국가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생각해본다. 늦지 않게 나는 그의 말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음을, 여전히 문장들은 이어지고 있음을 떠올려낸다.

탐서일지 #20.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III

By 커피사유 2025-03-30 0

전례없는 시간, 전례없는 사유, 전례없는 회복. ― 철학적 사유가 〈죽음〉과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운 지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짚어본다. 나는 방금 막 〈우물〉에서 빠져나왔다. 불타고 있는 〈숲〉과 아침을 기다리는 〈초원〉 사이에 자리한, 모든 인간이 가진 그 〈우물〉로부터.

탐서일지 #19.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II

By 커피사유 2025-03-18 0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 《노르웨이의 숲》은 이 문장에 담긴 인간 존재의 근간에 자리한 두 개의 항에 주목한다. 〈죽음〉, 그리고 〈삶〉. 인간은 이 둘의 경계에 놓인 존재이기에 가운데 자리한 〈우물〉 옆에서 질문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마침내는, “왜 인간은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탐서일지 #18.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I

By 커피사유 2025-03-09 0

인간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타인에 대해서는 또 어떨까? 그러나 우리는 오직 자신과 타인 모두를 타자로써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최초의 단절, 즉 〈상실〉은 여기서 시작된다. 철학, 문학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학문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갈 때 항상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