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일지 #40.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II
2026-06-29추파(秋波). 가을 추(秋)에 물결 파(波). 김애란은 《두근두근 내 인생》 작가의 말에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두 계절 사이에 물들어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결 위에서, 나는 감히 써본다. “당신께 / 당신의 문장을 / 돌려드린다”라고.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커피와 사유(思惟)가 있는 공간.
추파(秋波). 가을 추(秋)에 물결 파(波). 김애란은 《두근두근 내 인생》 작가의 말에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두 계절 사이에 물들어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결 위에서, 나는 감히 써본다. “당신께 / 당신의 문장을 / 돌려드린다”라고.
서사적 비평과 철학적 비평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사람들에게 비정상적, 반사회적, 정신병적인 인물로 조롱되는 ‘단소 살인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단소 살인마〉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몰상식한 인간 이하의 존재의 난동극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단소 살인마〉는 저항하는 인간의 비극이거나, 우리에게 가장 외밀하기에 인간적인 작품일지도 모른다.
문장들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는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비극이 그려내야 할 인간의 본질을 매우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설레어하다, 초조해하다, 우울해하다, 나중엔 지금 나가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그냥 거기 그대로 있게” 되는 장롱 속 인간 말이다.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면 승패가 있는 경기를 벌이게 된다. 그 결과가 내게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잘못 짚거나 빗나갔다고 여겨지는 것만 챙겨 듣고, 내가 동의할 수도 있는 부분들은 애써 무시해버린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완고함을 부각시키면서 나의 우월한 해결책을 주장한다. […]
‘지나칠 정도로 파아란 하늘로 모든 곳이 남김 없이 뒤덮여 있다’는 말을 라캉 철학의 용어들을 빌려와 바꾼다면 아마 다음의 번역문이 탄생할 것이다: ‘실재계가 상징계로 지나칠 정도로 남김없이 뒤덮여 있다’. 증상(Symptôme)의 가장자리는 일상의 평범한 시선을 비트는 때만 비로소 눈에 드러난다. 《자몽살구클럽》은 그 전형적인 예시다.
캔버스가 지나치게 많은 물감으로 뒤덮여 그 배후에 숨은 회색빛 바탕을 아예 덮어버린다면, 그건 실패한 채색이다. 《자몽살구클럽》은 ‘자살의 문제’라는 첫 약속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도 단순한 채색을 가진다. 모든 초상들이 너무나도 파아랗다. 지나칠 정도로 파아란 하늘로 모든 곳이 남김 없이 뒤덮여 있다.
글쓰기는 몸쓰기라고 믿는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데는 상상의 가공이 불가피하지만 그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몸의 경험에서 나온다. 좋은 글에는 근육의 수고로움과 몸이 흘린 땀방울, 몸에 연결된 감정과 기분의 골이 낱낱이 드러난다. 몸이 결락되어 있는 글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로 써라! […]
아무리 그래도, 색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BL 장르의 입문작, 《동급생》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중의적이다. 이 작품이 인기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나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원인도 동시에 지적하니까. 나는 이 문장 앞에 등장하는 ‘똑같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모양으로 다시 묶는 것도 재미있잖아.’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미뤄두었던 꿈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우리의 삶들이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닿을 수 있다면?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를 오늘날 실현해볼 수 있다면? ‘거대한 아고라’는 어쩌면 너무 지나치게 추상적인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작해보지도 않고서 포기할 수는 없다. 목표는 정해졌고, 준비는 완료되었다. 오직 남은 것은 딱 하나. En Marche!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이건 어렵다.” 《인간실격》의 독자는 이 질문을 따라가며 죄의 반의어들을 만나게 된다. 법도 아니고, 선도 아니며, 신도 아니고 꿀과 콩과 공복도 아니다. 그렇다면 죄의 반의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요조가 말하지 않는 대답이야말로 그와 오사무의 병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