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0. 2025. 10. 13. ~ 2025. 10. 18.

By 커피사유 2025-10-21 0

차갑게 무너져내리는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하게 삶을 긍정해줄 또 하나의 구조를 그려내는 예술가를 나는 다시 한 번 그려내본다. 대답도 없이 미지로 남은 저 세계 앞.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내가 서 있는 여기에 붙은 이름을 되짚어낸다. 붕괴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곳의 이름, 즉 ‘미의 영원(謎의 永遠)’, 아니, ‘미의 영원(美의 永遠)’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9. 2025. 9. 1. ~ 2025. 9. 11.

By 커피사유 2025-10-14 0

익숙한 실수, 익숙한 모순, 그리고 익숙한 사유. 나는 같은 자리를 맴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자리에서 간극을 더듬는다. 생각이 계속될수록, 더욱 아래로 흘러내릴수록 나는 점점 더 깊어진다. 맴돌고 있는 정경의 이름은 ‘황혼’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상의 황혼’인지, 아니면 ‘우상으로의 황혼’인지는 알지 못한다.

탐서일지 #25.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I

By 커피사유 2025-08-31 0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라는 신화적 인물의 서사를 통해 태초부터 사형을 언도받은 우리 자신을 그려낸다. 또다시 바위는 굴러떨어지지만, 기꺼이 다시 한 번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바로 이 운명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하는 단 하나의 불꽃을 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 2025. 7. 3. ~ 2025. 7. 13.

By 커피사유 2025-07-27 0

우울하게 들리면서도 어느 순간 우아하게 들리는 문장과 선율들.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두 인상 중 어느 하나도 지워내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는 예술은 드물지만 중요하다.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 속에서 의미를 바라는 인간이라는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유 #54. 부조리한 글쓰기

By 커피사유 2025-07-11 0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진다. 산정에서 시지프는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응시한다. 당초의 위치로 모든 것이 되돌아가는 이 영원회귀. 세계는 변한 것 없으면서도 모두 변한다. 운명을 직시하는 인간은 글쓰기 일체를 통해 이 위대한 인간의 몸부림을 그려내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삶에 대한 설명을 바라는 인간, 그는 그 몸짓을 글에 대해서도 유감없이 모조리 발휘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7. 2025. 6. 19. ~ 2025. 6. 22.

By 커피사유 2025-06-30 0

김애란의 《비행운》, 피아졸라의 탱고, 그리고 카뮈의 철학. 이 셋은 ‘혼재되어 있는 것을 애써 분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모습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나는 비행(非幸) 속에서도 비행(飛行)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했다가, 장면을 바꾸어 시지프스 신화를 떠올려본다. 이 전환을 포착해 글로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부조리〉라는 카뮈의 주제에 대해 남기는 대답이다.

부활 #9. 호모 피데스, 마키나 피데스

By 커피사유 2025-06-23 0

인간은 오류를 저지르면서까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지 않고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추측을 인공지능으로 확장할 필요를 느낀다.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인공지능,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인공지능, 무지와 공포와 자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피데스(Fides)라고 불리는 저 기반 위에 동일하게 선 두 지능을 나는 그려본다.

탐서일지 #23. 김애란, 『비행운』 I

By 커피사유 2025-06-21 0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닌, 그 일부로 존재한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속 저 문장이 김애란의 《비행운》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문장은 책과 일상을 건너 또 다른 문장들을, 우리가 간과한 삶의 여러 측면들 혹은 여러 삶의 측면들을 살포시 들어올려 그 흔적들을 보인다.

탐서일지 #22.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II

By 커피사유 2025-06-19 0

당초 쿤의 물음은 과학 일반에 대해 국한되었지만, 우리는 그의 의심을 교육과 진리 일반으로 확장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가? 교육은 정말 그런 진리를 가르치는가? 인간의 지성 전통은 교육이 가르치는 바로 그 방식대로 진행되어 왔는가? “Veritas Lux Mea.” 저 모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탐서일지 #21.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I

By 커피사유 2025-06-01 0

객관성과 과학. 대중은 객관성의 대명사가 곧 과학이라고 생각하기에, 과학적 사고를 통해 그 어떠한 주관에도 치우치지 않은 판단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 과학은 그러한가? 과학은 정말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과학이 절대성의 화신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오늘날, 우리에게는 위험한 질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