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es

Quotes

예전부터 나는 책이나 노래 가사 등을 살피던 중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들을 뽑아서 About 페이지에 정리해왔다. 그런데 문득 오늘 페이지를 살펴 보니 마음에 드는 문구가 너무 많아 보이길래, 아무래도 나 자신이 따로 정리해두고 싶은 문구들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을 만든 뒤 About 페이지에는 진짜 좋아하는 2 ~ 3개 정도만 남기고 여기로 이동해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들은 모두 이쪽으로 모아 기록해두기로 한다.

2022. 1. 2. 처음 Quotes를 만들며. 카페지기 커피사유.

어느 순간부터 해 오던 일이지만, 단순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들을 모아 기록해두는’ 일에서 더 나아가 그 문장들로부터 격발된 나의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있다. 재미없는 이유는 무단전재 혹은 배포에 따른 법적 책임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이유 또한 있다. 읽는다는 것과 쓴다는 것이 점차 타자 내지는 세계와 스스로의 대면이라는 점을 지각해 감에 따라, 나는 자신이 이 문구들을 ‘본 것’이 아니라 ‘읽었다는 것’을 표시해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존에는 메인 페이지에는 표시되지 않던 이 카테고리의 글들을 표시되도록 변경해둔다. 이 공간은 언제나 나의 사유(思惟)가 머무르고 쓰이는 장이니까.

2026. 1. 13. Quotes 형식과 표시 방법을 수정하며. 카페지기 커피사유.

  • 다수결 이전에 대한 충실성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면 승패가 있는 경기를 벌이게 된다. 그 결과가 내게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잘못 짚거나 빗나갔다고 여겨지는 것만 챙겨 듣고, 내가 동의할 수도 있는 부분들은 애써 무시해버린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완고함을 부각시키면서 나의 우월한 해결책을 주장한다. […]
  • 몸이 결락되어 있는 글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글쓰기는 몸쓰기라고 믿는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데는 상상의 가공이 불가피하지만 그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몸의 경험에서 나온다. 좋은 글에는 근육의 수고로움과 몸이 흘린 땀방울, 몸에 연결된 감정과 기분의 골이 낱낱이 드러난다. 몸이 결락되어 있는 글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로 써라! […]
  • 1984, 1942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거예요? 어차피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뉴스는 온통 거짓말투성이인데요.” 기록국에서 저지르는 뻔뻔스러운 날조 행위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 거짓이 진실이 된다고 해서 자기 발밑에 무서운 함정이 생긴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존스와 아론슨과 러더퍼드, 그리고 언젠가 잠깐 쥐었던 종이쪽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
  • 읽는다는 것
    요컨대 문헌학은 지극히 섬세하고 신중한 작업을 수행해야 하고 천천히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말Wort의 금 세공술’이자 ‘말에 정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으로서 문헌학은 다음의 한 가지 사항, 즉 그것의 숭배자들에게 우회해서 가고 여유를 갖고 조용해지고 느려지는 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도 요구하는 저 존중할만한 기술이다. 바로 이 때문에 문헌학은 지금까지보다 오늘날 더 필요하다. […]
  • 寡學
    그대들은 실로 신학적 천문학의 패배가 금욕주의적 이상의 패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신학적 천문학의 패배 이래로 사물들의 가시적인 질서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더욱더 임의적이고, 하잘것없고, 쓸모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존재의 수수께끼에 대한 피안적인 해결을 덜 필요로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코페르니쿠스 이래로 인간의 왜소화와 아울러 왜소화를 향한 의지는 끊임없이 증대해온 것이 아닐까? […]
  • Απάτη
    누구든 남이 비난을 퍼붓거나 화를 낼 때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저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끔직한 동물의 본성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어떤 순간에, 예컨대 소가 풀밭에서 느긋하게 자고 있다가 갑자기 꼬리로 배에 앉은 쇠등에를 탁 쳐서 죽이듯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정체를 노여움이라는 형태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언제나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
  • 향수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홍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오로촌이 멧돝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것도쏠 […]
  • 삶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경우
    #1. 다수성은 더 이상 ‘일자’의 관할에 속하지 않으며, 생성도 더 이상 ‘존재’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와 ‘일자’는 단순히 그것들의 의미를 잃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제 ‘일자’는 다수성으로서의 다수성(여러 파편 혹은 단편)으로서 파악되는 것이고, ‘존재’란 생성으로서의 생성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니체적인 전도란 이와 같은 것이며, 이것이 가치전환의 제3의 형태가 된다. […]
  • 예술이 삶을 구원하는 경우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폴론적 문화의 저 정교한 건축물을, 말하자면 돌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해체함으로써 그것이 세워져 있는 토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경우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이 건축물의 합각머리 위에 서 있는 올림포스 신들의 장려한 모습이다. 그들의 행동은 멀리까지 빛나는 부조(浮彫)에 묘사되어 이 건축물의 돌림띠(Friese)를 장식하고 있다. […]
  • 대인판단의 깊이(기피)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心想)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이철의 역, 문학동네,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