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Critics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비평’들을 모은 공간입니다.

사유 #53. 하얀 문

By 커피사유 2025-02-28 0

자신의 심연으로 뛰어든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문이 하나 있다. 인간 정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이 문 앞에 선 모든 사람들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무엇을 하든 그 자리에 장엄하게 서 있는 저 잔인한 문에게 나는 〈하얀 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문을 들여다보며 나는 다시금 묻는다. “문을 열 것인가, 열지 않을 것인가?”

경화수월 #5. 《OMORI》, 제4주차 ‘하루 전’ 모임 질문지

By 커피사유 2025-02-23 0

지난 시간의 물음은 여전히 이어진다. 맨 처음부터 묻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자의적으로 그어진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반대편을 알게 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말의 의미에 전율하게 된다. 문 앞에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인간의 운명은 영원하다. 그러나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인간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된다.

경화수월 #4. 《OMORI》, 제3주차 ‘이틀 전’ 모임 질문지

By 커피사유 2025-02-22 0

“인간은 영원히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불가해한 단절, ‘문’이 있다. 심연이 그를 들여다봄에도 인간은 닿을 수 없는 것을 탐한다. 그렇기에《OMORI》는 우리를 문 앞에 세운다. 문고리를 움켜쥐며 나는 망설인다. 가장 치명적인 물음이 울려퍼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마침내 심연이 나에게 묻는다…. “문을 열 것인가?”

경화수월 #3. 《OMORI》, 제2주차 ‘사흘 전’ 모임 질문지

By 커피사유 2025-02-18 0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근대 이후의 철학과 예술 모두는 바로 이 부분과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사이의 공존에 주목해왔다. 《OMORI》는 이 가장 흥미로운 모순적 지탱을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느끼게 한다. 우리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따라가고 있다. 카뮈의 ‘부조리’는 분명 그 핵심에 있다.

경화수월 #2. 《OMORI》, 제1주차 ‘서장’ 모임 질문지

By 커피사유 2025-02-11 0

《OMORI》는 의도적으로 침묵함으로써 말한다. 그러한 시도들은 과학과 논리, 이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저 장엄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반대의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그렇다, 《OMORI》가 그러하듯, 나 역시 의도적으로 침묵하고자 한다.

경화수월 #1. 《OMORI》, 모임 계획서

By 커피사유 2025-02-04 0

비록 작은 창 속에 펼쳐진 여러 층위의 세계였지만 나는 기꺼이 뛰어들었고, 주인공을 따라 위와 아래를 넘나들며 다시 한 번 인간 정신의 취약성을 깊게 음미했다. 게임 《OMORI》를 통해 내 정신이 어떻게 ‘심연’을 돌아다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낸 조각들, 이들을 이제 하나씩 풀어낼 때가 되었다.

탐서일지 #17. 데버라 캐머런, 『페미니즘』 II

By 커피사유 2025-01-30 0

오늘날 우리는 도처에서 금지에 대한 이의가 제기됨을 목격한다. 아래로 내려가서 보았을 때, 이것은 ‘문을 열고 나가는’ 과정이며 스스로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만나는 과정이다. 〈페미니즘〉은 금지가 목표하는 일원성과 맞서 싸운다. 그리고 이 철학은 바로 이 방법에 의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활 #8. 격동기 속에서

By 커피사유 2025-01-27 0

결국 덕수궁 속에서 발견된 것이란 모두 격동기였던 것이다. 고종의 격동기, 그리고 나의 격동기.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려다보기 힘든 눈보라 속에서 나아가는 존재. 그 눈보라에 때로는 쓰러지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일어나기도 하면서, 비틀거리지만 천천히 걸어나가는 존재. 삶이 그런 것이다. 인간이 그런 것이다.

탐서일지 #16. 데버라 캐머런, 『페미니즘』 I

By 커피사유 2025-01-25 0

니체가 도덕의 절대성에, 마르크스는 경제질서의 절대성에, 프로이트가 이성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졌다면, 페미니즘은 ‘젠더(gender)’의 절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으로 평가할 수 있어 보인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의심없이 전제해왔던 명제들에 대한 재고를 권유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페미니즘의 담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

동상이몽 #13. 우상의 황혼, 그리고 민주주의

By 커피사유 2025-01-15 2

아무리 이해할 수 없더라도 또 동의할 수 없더라도, 우리는 그들에 대한 반목을 거두어야 하며 의견을 듣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운명에 있다. 밀란 쿤데라의 문장은 여기서 그 진가를 온전히 발휘한다. “우리가 아무리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