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이전에 대한 충실성
2026-06-08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면 승패가 있는 경기를 벌이게 된다. 그 결과가 내게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잘못 짚거나 빗나갔다고 여겨지는 것만 챙겨 듣고, 내가 동의할 수도 있는 부분들은 애써 무시해버린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완고함을 부각시키면서 나의 우월한 해결책을 주장한다. […]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커피와 사유(思惟)가 있는 공간.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마음에 든 문구들을 모아두는 작은 도서관.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면 승패가 있는 경기를 벌이게 된다. 그 결과가 내게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잘못 짚거나 빗나갔다고 여겨지는 것만 챙겨 듣고, 내가 동의할 수도 있는 부분들은 애써 무시해버린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완고함을 부각시키면서 나의 우월한 해결책을 주장한다. […]
글쓰기는 몸쓰기라고 믿는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마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데는 상상의 가공이 불가피하지만 그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몸의 경험에서 나온다. 좋은 글에는 근육의 수고로움과 몸이 흘린 땀방울, 몸에 연결된 감정과 기분의 골이 낱낱이 드러난다. 몸이 결락되어 있는 글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로 써라! […]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거예요? 어차피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뉴스는 온통 거짓말투성이인데요.” 기록국에서 저지르는 뻔뻔스러운 날조 행위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 거짓이 진실이 된다고 해서 자기 발밑에 무서운 함정이 생긴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존스와 아론슨과 러더퍼드, 그리고 언젠가 잠깐 쥐었던 종이쪽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
#1. 다수성은 더 이상 ‘일자’의 관할에 속하지 않으며, 생성도 더 이상 ‘존재’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와 ‘일자’는 단순히 그것들의 의미를 잃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제 ‘일자’는 다수성으로서의 다수성(여러 파편 혹은 단편)으로서 파악되는 것이고, ‘존재’란 생성으로서의 생성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니체적인 전도란 이와 같은 것이며, 이것이 가치전환의 제3의 형태가 된다. […]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폴론적 문화의 저 정교한 건축물을, 말하자면 돌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해체함으로써 그것이 세워져 있는 토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경우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이 건축물의 합각머리 위에 서 있는 올림포스 신들의 장려한 모습이다. 그들의 행동은 멀리까지 빛나는 부조(浮彫)에 묘사되어 이 건축물의 돌림띠(Friese)를 장식하고 있다. […]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心想)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이철의 역, 문학동네,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