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Books & Texts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읽은 책과 관련된 이야기 및 생각들을 모은 공간.

탐서일지 #40.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II

By 커피사유 2026-06-29 0

추파(秋波). 가을 추(秋)에 물결 파(波). 김애란은 《두근두근 내 인생》 작가의 말에 “이 노래가 씨앗이 될지, 휘파람이 될지, 모르는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오래전 부르고 싶어한 이름과 닮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두 계절 사이에 물들어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결 위에서, 나는 감히 써본다. “당신께 / 당신의 문장을 / 돌려드린다”라고.

탐서일지 #39.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I

By 커피사유 2026-06-20 0

문장들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는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비극이 그려내야 할 인간의 본질을 매우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설레어하다, 초조해하다, 우울해하다, 나중엔 지금 나가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그냥 거기 그대로 있게” 되는 장롱 속 인간 말이다.

탐서일지 #38. 한로로, 『자몽살구클럽』 II

By 커피사유 2026-06-08 0

‘지나칠 정도로 파아란 하늘로 모든 곳이 남김 없이 뒤덮여 있다’는 말을 라캉 철학의 용어들을 빌려와 바꾼다면 아마 다음의 번역문이 탄생할 것이다: ‘실재계가 상징계로 지나칠 정도로 남김없이 뒤덮여 있다’. 증상(Symptôme)의 가장자리는 일상의 평범한 시선을 비트는 때만 비로소 눈에 드러난다. 《자몽살구클럽》은 그 전형적인 예시다.

탐서일지 #37. 한로로, 『자몽살구클럽』 I

By 커피사유 2026-05-31 0

캔버스가 지나치게 많은 물감으로 뒤덮여 그 배후에 숨은 회색빛 바탕을 아예 덮어버린다면, 그건 실패한 채색이다. 《자몽살구클럽》은 ‘자살의 문제’라는 첫 약속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도 단순한 채색을 가진다. 모든 초상들이 너무나도 파아랗다. 지나칠 정도로 파아란 하늘로 모든 곳이 남김 없이 뒤덮여 있다.

탐서일지 #36. 나카무라 아스미코, 『동급생』

By 커피사유 2026-04-15 0

아무리 그래도, 색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BL 장르의 입문작, 《동급생》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중의적이다. 이 작품이 인기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나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원인도 동시에 지적하니까. 나는 이 문장 앞에 등장하는 ‘똑같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모양으로 다시 묶는 것도 재미있잖아.’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탐서일지 #34.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II

By 커피사유 2026-02-25 0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이건 어렵다.” 《인간실격》의 독자는 이 질문을 따라가며 죄의 반의어들을 만나게 된다. 법도 아니고, 선도 아니며, 신도 아니고 꿀과 콩과 공복도 아니다. 그렇다면 죄의 반의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요조가 말하지 않는 대답이야말로 그와 오사무의 병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이다.

탐서일지 #33.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I

By 커피사유 2026-02-19 0

《인간실격》의 화자 오바 요조의 면모는 병리적이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라 진술한다. 그러나 단언은 두 세계의 분리를, 분리는 두 가지의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발견하는 인물의 초상이란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죄하면서도 그 단죄 행위 자체를 자신의 상승을 기도하는데 역이용하는 자다.

탐서일지 #32.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직소』 I

By 커피사유 2026-02-13 0

죄, 죄의 반의어는 뭘까.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는데는 언제나 이 질문이 ‘나침반’이 된다. 나는 죄의 반의어를 찾아 떠나는 배에 올라타 돛을 올린다. 기도, 회개, 그리고 고백. 이 모든 것이 반의어가 아닌 유의어로서 가라앉아버리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가라앉지 않는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우리에게 첫 번째로 어울리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Bon Voyage!

탐서일지 #30.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I

By 커피사유 2026-02-04 0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셰익스피어의 저 유명한 문장은 양귀자의 소설에서도 예외없이 변형되어 반복된다. 모든 문학의 중심이 되는 저 문장에 대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어떻게 대답하는가? 독자에게 요구되는 미덕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탐서일지 #27.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I

By 커피사유 2025-08-31 0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라는 신화적 인물의 서사를 통해 태초부터 사형을 언도받은 우리 자신을 그려낸다. 또다시 바위는 굴러떨어지지만, 기꺼이 다시 한 번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바로 이 운명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하는 단 하나의 불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