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20. 레이먼드 커버, 대성당.

잠시, 멈춤 #20. 레이먼드 커버, 대성당.

2021-05-31 0 By 커피사유

잠시, 멈춤 시리즈는 필자가 읽은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일부, 혹은 전부 인용하고, 필요에 따라 주석을 곁들이는 등, 커피, 사유의 글 모음집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로 포스팅되는 모든 글의 경우, 필자가 쓴 글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의 출처는 ‘본문’ 단락 가장 밑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본문

이 포스트에서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중 필자가 인상깊게 읽었던 몇몇 부분만을 발췌하여 인용하고 있음을 서두에 밝힙니다.

#1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맹인이 우리집에 잠을 자기 위해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랑 같이 볼링이나 치러 갈까?”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싱크대 앞에 서서 스캘럽 포테이토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날 사랑한다면,” 그녀가 말했다. “이쯤은 날 위해서 해줄 수 있겠지.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아. 하지만 어떤 친구든 당신한테도 친구가 있다면 말이야, 그래서 그 친구가 방문한다면 난 편안하게 해줄 거야.”

그녀는 행주에 두 손을 닦았다.

“난 맹인 친구가 한 명도 없다구.” 나는 말했다.

“당신 친구가 한 명도 없겠지.” 그녀가 말했다. “이상 끝. 게다가”라고 그녀가 말했다. “도대체가, 그 사람은 이제 막 상처했다구! 그게 이해가 안 돼? 그 사람 아내가 죽었다구!”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맹인의 아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이름은 뷰라였다. 뷰라! 유색인종의 이름이다.

“그 사람 아내가 니그로였어?” 내가 물었다.

“미쳤어?” 아내가 말했다. “지금 돌아버린 거야, 뭐야?” 그녀는 감자 하나를 집었다. 나는 그 감자가 바닥을 때린 뒤 레인지 아래로 굴러가는 것을 봤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술 마셨어?”

“그냥 물어보는 것뿐이야.” 나는 말했다.

그러자 즉시 아내는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한 일들까지 시시콜콜 내게 새겨넣기 시작했다. 나는 술 한 잔을 가져와 식탁에 앉아서 들었다. 토막 이야기들이 앞뒤가 맞춰지기 시작했다.

뷰라는 아내가 일을 그만둔 그해 여름부터 그 맹인을 위해 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뷰라와 그 맹인은 교회에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조촐한 결혼식으로 – 무엇보다 그런 결혼식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그 둘 외에는 목사와 목사 부인이 참석했다. 어쨌든 교회 결혼식이었다. 뷰라가 원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뷰라의 임파선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팔년 동안 찰떡같이 붙어다닌 뒤 – 찰떡같이란 아내의 표현이다 – 뷰라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 맹인이 병상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동안, 시애틀의 한 병실에서 그녀는 숨졌다. 그들은 결혼했고, 함께 일하며 살아갔고, 함께 잠잤는데 – 물론 섹스도 했는데 – 이제 그 맹인이 그녀를 묻어야만 했다. 그 박복한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채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이야기였다. 여기까지 듣게 되자, 그 맹인이 약간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살았을 삶의 행로가 얼마나 가엾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 비친 자신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여인을 상상해보라. 사랑하는 남자에게 지나가는 말이라도 예쁘다는 칭찬을 듣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야만 하는 여자. 그게 참담한 표정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좀 나은 표정인지, 아내의 안색을 전혀 살필 수 없는 남편을 둔 여자, 화장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게 그 사람에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원한다면 한쪽 눈 주위에 초록색 아이섀도를 하고 콧구멍에는 핀을 꽃은 채 노란색 슬랙스에 자줏빛 신발을 신고 다닐 수도 있겠으나 그래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다가 죽음 속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 그녀의 손 위엔 그의 손이, 그의 먼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을 테니 –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 그녀의 마지막 생각은 이랬을 테지.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나는 무덤으로 직행하고 있다고. 로버트에게 남은 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의 보험증권과 이십 페소짜리 멕시코 동전 반쪽이었다. 나머지 반쪽은 그녀의 관 속으로 들어갔다. 딱한 얘기.

#2

“이 사람아, 다 괜찮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

#3

카메라는 리스본 근교에 있는 대성당으로 옮겨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대성당과 비교해 포르투갈의 대성당은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래도 차이는 있었다. 주로 내부 장식들이. 그때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아시느냐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누가 대성당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지 개념이 잡히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대성당이 침례고회 건물과 어떻게 다른지 아시느냐는 거죠.”

그는 입 밖으로 연기를 조금씩 내뿜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짓는다는 건 알겠어.” 그가 말했다. “물론 저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거야. 한 집안이 대대로 대성당 하나에 매달린다는 것도 알겠어. 이것도 방금 저 사람에게 들은 거고. 대성당을 짓는 데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그 작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더군. 그런 식이라면 이보게,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눈꺼풀이 다시 쳐졌다. 그의 머리가 까닥거렸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 같았다. 포르투갈에 가 있는 상상을 하는지도 몰랐다. … (후략)

#4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성당이라고 해서 나한테는 뭐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대성당들. 이렇게 늦은 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 뿐이죠. 그저 그런 것일 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바로 그때 맹인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더니 목에서 뭔가를 끌어올렸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이해하네, 이 사람아. 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말게.” 그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 부탁 좀 들어주겠나? 좋은 생각이 났어. 좀 두꺼운 종이를 가져오겠나? 펜이랑. 우리 뭘 좀 해야겠네. 같이 하나 그려보자구. 펜하고 좀 두꺼운 종이만 있으면 된다네. 자, 이 사람아, 어서 가져오게나.”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기운이 다 빠진 것처럼 다리에 힘이 없었다. 마치 달리기를 하고 난 뒤의 느낌 같았다. 나는 아내의 방을 둘러봤다. 아내 책상 위 작은 바구니에 볼펜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하는 종류의 종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내려고 애를 썼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에서 바닥에 양파 껍질이 깔린 쇼핑백을 찾아냈다. 나는 내용물을 비우고 쇼핑백을 흔들었다. 그걸 들고 거실로 가서 그의 다리 근처에 앉았다. 나는 물건들을 치우고 쇼핑백의 주름을 편 뒤, 다탁 위에 그 종이를 펼쳤다.

맹인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카펫 위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한번 훑었다. 그는 쇼핑백의 양쪽 면을 위아래로 만져봤다. 심지어 모서리까지. 그는 구석구석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좋아, 같이 한번 해보자구.”

그는 내 손, 펜을 쥔 손을 찾았다. 그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시작하게나, 이 사람아. 그려봐.” 그가 말했다. “그려봐. 뭘 하자는 건지 알게 될 거야. 내가 자네 손을 따라 움직이겠네. 괜찮아. 내가 말한 대로 시작해보게나.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그려봐.” 맹인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집처럼 생긴 네모를 하나 그렸다. 그건 내가 사는 집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위에 지붕을 얹었다. 지붕의 양쪽 끝에다가 나는 첨탑을 그렸다. 바보짓.

“멋지군.” 그가 말했다. “끝내줘. 정말 잘하고 있어.” 그가 말했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나는 아치 모양 창문들을 그렸다. 나는 버팀도리를 그렸다. 나는 큰 문들도 만들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TV 방송은 끝났다. 나는 볼펜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쥐었다가 폈다. 맹인은 종이 위를 더듬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위, 내가 그려놓은 것을 죄다 만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는군.” 맹인이 말했다.

나는 다시 볼펜을 잡고, 그는 내 손을 찾았다. 나는 끈덕지게 그렸다. 나는 그림 실력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묵묵히 계속 그렸다.

아내가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실내복 자락이 젖혀진 채로 몸을 일으키고 소파에 바로 앉았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가르쳐줘요, 나도 알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맹인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대성당을 그리고 있어. 나하고 이 사람이 함께 만들고 있어. 더 세게 누르게나.” 그가 내게 말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그는 말했다. “좋아. 이 사람, 이제 아는구먼. 진짜야. 자네가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이젠 순풍에 돛을 단 격이네.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조금만 더 하면 우리가 여기에 뭔가를 진짜 만들게 되는 거야. 팔은 아프지 않은가?” 그가 말했다. “이제 거기에 사람들을 그려보게나. 사람들이 없는 대성당이라는 게 말이 되겠어?”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로버트?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아내가 물었다.

“괜찮아.”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눈을 감아보게나.” 맹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았다.

“감았나?” 그는 말했다. “속여선 안 돼.”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계속 눈은 감고.” 그가 말했다. “이제 멈추지 말고. 그려.”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그는 말했다.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물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출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119.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저 / 김연수 역. 문학동네(2014). 中.

주석

이 글도 서울대학교 강우성 교수님의 <문학과 철학의 대화> 수업에서 다룬 텍스트이다. 해당 텍스트에 관한 수업이 아직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내가 이 텍스트에 대해 감히 주석을 다는 것은 상당한 일이겠지만, 몇 가지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이 있어 메모해두기로 한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주석을 달자면, 나는 이 소설을 처음 기말 시험을 치기 위하여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처음 읽고 든 생각이란 이 소설이 적어도 두 종류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 소설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이는 맹인 로버트, 그리고 그의 사별한 아내 뷰라 두 사람이다. 뷰라는 유색인종, 그리고 로버트는 맹인으로 ‘나’ 자신이 두 사람에 대한 약간의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느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아무도 가고자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나’가 정말 치밀하게 맹인 로버트를 시험하는 각종 모습 – 이를테면 식사를 할 때는 어떨까 하는 짗궂은 호기심, TV에 나오는 대성당의 모습을 정확히 아는지에 대한 질문 등 – 에서 그의 차별적 시선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 속의 ‘나’의 차별적 시선은 말미에 가서 극적으로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무의식중이라도 ‘나’가 무언가 보지 못하니 아는 것이 적고 (어쩌면) 하등하다고 생각했던 맹인 로버트와 함께 대성당을 그리는 과정을 통하여, 그는 눈을 뜨지 않고 대성당을 보는 경험을 체득하기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물의 측면을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몇 가지의 논쟁은 남아 있지만, 어쩌면 나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짧은, 나의 이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나머지 인상은 수업이 끝난 뒤에 보충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