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타성(他星)을 바라볼 때, 그 새벽의 우울
지나간 추억은 가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가리지 않고. 이러한 추억들이 지나가는 순간은, 마치 내가 어릴 적 추석이나 설날 무렵에 시골의 외할머니 댁에 있을 때, 명절 당일의 밤에 주위에는 불빛이라 찾아볼 수 없어, 그들만이 고독하게 빛나고 있는 별무리를 보던 순간의 느낌과 비슷하다. 특히, 그 고독한 무리들 중, 특별히 고독한 어느 하나가 스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상상할 때, 나는 무언가 황홀한 느낌을 그로부터 받기보다는 이상한 동질성을 느낀다. 그리고 그 동질성은 기괴하게도 떨어진 하나의 별이 무언가 고독하게 빛나고 있는 아득한 별무리에 대하여 비난할 자격이라도 부여하는 듯하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상 생활 속에서 종종 발굴되는 이러한 추억이라는 나의 떨어진 별들, 즉 낙성(落星)들은 가끔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는 것들, 사회적으로 아주 당연시되는 어떠한 의사소통의 규약, 혹은 도덕적으로 강제되는 규범 사이의 어떤 영역에서 발견되곤 한다. 나는 어떤 깜깜한 밤에 어디인지도 모르는 장소를 하염없이 거닐다가 그러한 별을 발견할 때면,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은 그 별들을 집어들어 귀를 가까이 대어 보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들에게서 일련의 고동, 혹은 동질성으로 매개되는 일련의 공명은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낙성(落星)들을 힘껏 하늘 높이 던져서 다시금 그들이 자리하고 있던 고독한 밤하늘의 별무리의 자리로 되돌려놓고 싶어진다. 하지만 낙성(落星)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주 자연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그런 경우이면 나는 특히 그 낙성(落星)으로 빙의되어, 밤하늘에 아직도 여전히 그들대로 빛나고 있는 별무리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또한 노려보게 된다. 하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타성(他星)이라는 이름의 그들 무리들을 노려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행위는 낙성(落星)에 대한 결례이자 아직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는 한 인간의 허물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노려보는 것을 중지(中止)할 수 없는 일련의 굴레에 여전히 속박되어 있는 모양이다. 손에 집어들고 있는 낙성(落星)들을 나는 들리지 않을 그 공명을 다시 기대하면서, 가슴으로 가까이 가져가 끌어 안고 만다. 하지만 식어버린 별이라서 그런지 그 죽은 별들로부터는 그 어떠한 온기도 느낄 수 없고, 다만 나의 온기가 그들로 빠져나가, 그리고 다시 차가운 밤하늘의 공기 속으로 비산(飛散)하는 것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아련하게 그 온기를 되뇌면서 타성(他星)을 올려다보곤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 온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것이 나의 낙성(落星)들에 대한 최선의 변명일 것이다.
※ 오늘은 특별하게 글에 사주를 하나 달기로 한다.
낙성(落星)에 대한 나의 변명에 하나를 덧붙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인디 음악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지만, YonKaGor라는 활동명의 싱어송라이터의 “Mr. Sunfish”라는 곡. 나의 낙성(落星)을 바라보는 모든 순간, 그리고 타성(他星)을 올려다보는 모든 순간에 대하여 이 곡을 헌정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