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호소성과 계몽
요즘 들어 계몽이라는 어떤 한 가지 행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지 잠깐씩 공상이라도 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책, 글과 같은 몇 가지의 방식을 떠올려보았지만, 언어라고 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이지 않고 너무 다르며, 또한 문화 자체도 제각각이므로 전혀 효과적이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관심을 돌리게 된 다른 방법은 바로 예술에 있었는데, 미술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중독성이 장난 아닌 음악이라는 어떤 한 가지의 요소에 집중하게 되었다. 음악과 미술과 같은 것들은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대중들은 비슷한 인상을 같은 그림에서 받아가며, 이러한 예술로 매개되는 어떤 전달이라는 것은 언어와 국가의 장벽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람들은 뭐라는지 모르는 타국의 언어로 부른 음악이라도 멜로디와 리듬에 설득되어 그 음악을 듣고 나눈다.
그렇다면 음악은, 가사가 아닌 멜로디와 화성, 그리고 리듬이라는 이 음악의 3요소는 국가와 민족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호소성을 가지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공통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어 음악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을 보편적 메세지의 호소 및 전달체로 사용하기에는 그 전달할 수 있는 주제가 심각하게 추상적이라는 것에 있다. 흔히 말하는 ‘언어’의 형태로 표현한 메세지에 비하면 음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주제는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검토해볼 때 어떤 정서나 느낌일 뿐이지,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떠한 가사를 통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만약 음악에서 이러한 정서만을 전달할 수 있는 추상적 메세지로만의 호소성을 뛰어넘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떤 언어의 세계를 마주하게 될까? 나의 공상이지만, 이 경우 이제 사람들은 만국 공용어라는 것을 지정해서 대화하기보다는, 서로가 음악으로 대화하는 시기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고도로 추상화된, 혹은 고도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므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모든 사람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것을 공통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적어도 지금 언어가 가지는 보편적 호소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