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이 던지는 인간의 동인(動因)이라는 질문에 대하여
한 개인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되는 요인이란, 즉 동인(動因)이란 무엇일까? 한 개인이 어떠한 행동을 하게 하는 한편, 어떠한 행동은 하지 않게 하는 이른바 ‘끌개’와 ‘밀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 개인은 어떤 이론적 모델로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 개인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공적인 공존을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가?
궁극적으로 한 사회에서의 개인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즉 사회와 개인의 관계는 어떠한가? 개인은 다른 개인과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 사회는 그 유지를 위하여 어떤 수단을 사용하였고 또한 개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가? 종교 · 정치 · 문화는 공동체를 이룩하며 살아온 인간이 정립한 그 모든 산물이었다. 이들 산물은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란 무엇인가? 그러한 동기 유발원을 나는 어떻게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동작할 수 있을 이론적 시스템을 구축해낼 수 있는가? 결코 이러한 시스템은 만들 수 없는 것이 분명한가? 완벽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그 모든 요소를 궁극적으로 분석하고 고찰하여 이를 활용하여 보다 오래 갈 수 있고 잘 동작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계(界)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자연과학을 해야 할 사람이 이상한 것을 묻고 있다고 타박하지 말라.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대상과 대상의 관계, 계 속의 사물과 그 사물이 속한 계 사이의 관계를 물으며 이 분야로 뛰어들었다. 내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므로 나를 타박하지 말라. 너무 넓은 범위가 내 앞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각하고 배우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이 표상한 것만을 만약에 지각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이 자신이 그러한 감각 경험들로부터 범주화하여 얻은 개념과 도식만을 지각할 수 있다고 한다면, 최대한의 표상을 확보하는 것이 세계에 관한 가장 정확한 지각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끝없는 식욕을 발휘하여 –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