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를 쓰는 시간
그래도 적어도 자기소개서를 쓰는 행위 그 자체는 두 가지를 깨닫게 한다.
첫째는 모든 사람은 자소서를 쓰는 시간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가 고등학교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그의 자소서에 그대로 녹아들어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아무리 수정하고 첨삭하더라도 그 상한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가 자소서에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흔하고도 무의미한 내용으로 자신을 표현하던가, 아니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명확히 적어내고 자신의 아픔과 삶 그 자체를 녹여낼 수 있는가, 그것은 본인 스스로에 달려 있는 것이다.
둘째는 Type II형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서 오는 씁쓸함이다. 자소서를 쓰면 적어도 많은 이들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Type I형의 거짓말을 하는 실수는 웬만해서는 저지르지 않는다(적어도 그가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면).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유리하게, 혹은 대학의 인재상에 맞게 드러내는(혹은 맞추는)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무언가 진실을 하나 적어 내려가고도 그것을 다시 농도를 흐리거나 숨기게 된다. 이것이 Type II형의 거짓말이며, 자소서를 쓰는 시간에서 빈번하게 이 거짓말을 쓰게 된다. 글을 쓰는데 있어 진솔함이 생명이건만, Type II형의 진솔하지 않음은 그 진솔함을 흐려 완성되어가는 자소서를 보는 중에도 흐뭇함 한 구석 씁쓸함을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