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8.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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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기가 된 은어는 바다에서 강의 상류로 거친 물살을 헤치며 올라간다. 자신의 고향을 가기 위해서 은어는 목숨을 걸고 오랜 기간 헤엄을 쳐야만 한다. 물살을 타고 바다로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물살을 거스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매우 쉽고 자연스럽게 탈주체화 된다. 탈주체화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우리가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은어와 같이 목숨을 걸 정도의 강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러한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지하 집단이 ‘은어낚시모임’ 이다.
‘은어낚시통신’에 등장하는 ‘나’는 과거 헤어졌던 연인 ‘김청미’에게 은어낚시모임의 초대장을 받는다. ‘나’와 김청미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김청미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바랐으며 그와 만난다면 세상에 의해 잃었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둘 사이의 관계는 금새 형식적이고 세속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었고 이에 실망한 김청미는 ‘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렇게 헤어진 두 명이 다시 은어낚시모임에서 만난다. 김청미는 계속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라고 말하며 ‘나’가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이끈다.
예술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광고 사진을 찍게 된 ‘나’는 자신이 탈주체화 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김청미는 ‘상처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깨닫기 못한다. 그런 그에게 도착한 호피인디언 엽서는 매우 상징적이다. 호피인디언은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난 인디언이다. 커티스의 ‘호피인디언’은 호피인디언들이 석영과 함께 저물어가는 부족의 쓸쓸한 뒷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껍데기뿐인 삶을 살지만 자신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이에게 적합한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호피인디언과 같이 쫓겨난 삶을 사는 ‘나’에게 호피인디언 엽서에 적힌 초대장은 아마 ‘나’가 초대에 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가 초대에 응한 뒤 어떤 여자의 차를 타고 모임 장소까지 이동하면서 들은 은어낚시모임의 헌법은 은어낚시모임이 어떠한 집단인지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제1조 1항 엘루아르의 시 자유, 2항 슈바이거의 책 깨어나 슬픔을 보라, 3항 짐 자무시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 4항 모차르트, 5항 고흐와 뭉크, 제2조 1항 마리화나, 2항 카메라와 프리섹스, 3항 우주비행선, 4항 인도와 티베트 …….’ 불법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이 혼재되어 히피적인 성향마저 띄고 있는 이 헌법은 마치 은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세상의 기준과는 맞지 않더라도 나름의 방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시원을 찾기 위해 헤엄쳐 올라가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마리화나와 프리섹스가 있다는 것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 다시 만난 김청미와 마주 앉아 울피천을 넘어 자신의 시원으로 회귀하고자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김청미가 없었더라면 아마 평생 하지 않았을 그 헤엄을 김청미는 찬찬히 바라보며 이끈다. ‘나’가 존재의 본질을 결국 찾더라도 정체성을 잃도록 만든 세상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가. 비록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있지만 ‘나’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즉 살아가는 이유를 되찾았다. 그렇기에 은어낚시모임 회원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헤엄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헤엄을 방해하는 물살까지 생각하기에는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헤엄 – [은어낚시통신]을 읽고’. 김시원. 고전의 숲 과학의 길. 경남과학고등학교(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