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所懷)
2021년, 대학(大學)의 모든 두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이제 내일 오후 버스 편으로 하여 본가로 내려가려고 하는 찰나, 관악사의 고요한 오후를 하늘에서 날린 눈발이 조용히 덮었다.
계속 영남 지방서만 지내온 나 자신이기에 겨울에 눈이 날리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의식중에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고야 말았다. 지난 1년의 일부를 지낸 기숙사, 나의 작은 방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땅과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새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겨울에 눈이 오면 많은 이들이 젖어들곤 하는 바로 그 종류의 감정에 순간 젖어들게 되었다.
소회(所懷).
한 시기를 무사히 넘겼구나 하는 안도감이기도 하고, 조금 더 노력했으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기도 하며, 다가올 불확실한 다음 해에 대한 불안감이기도 한, 마음에 품고 있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
늘 모든 일과 시기에 존재하는 끝이지만 나라는 이는 항상 그 끝 앞에서 서성이며 다음으로 넘어가기를 항상 두려워했었는데, 올해도 예외가 없는 것 같았다. 끝이 다가올수록, 기존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는 직감이 점차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 자신이 주어지는 새로운 환경에 다시 알맞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곤 했는데 흩날리는 눈발이 나는 아직도 변하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땅은 새하얀 눈으로 조용히 덮여가며 흑과 백의 두 색의 변증법을 노래하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소회로 덮였기에 흑과 백의 두 색이 변증법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기보다는 어중간한 회색으로 섞여 이 겨울, 이 땅의 온도만큼이나 차갑게 얼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선 대학(大學)이라는 지식의 보고에서 알고자 하는 욕구에 충실하였을 수는 있어도, 과연 나라는 사람은 정작 마음 속에서 소리치는 자아(ego)의 욕구에는 충실하였는가.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사이에서 소회는 눈과 함께 천천히 땅을 백으로 물들여갔다. 나는 그 백색으로 물든 것이 땅만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가 자성(自省)을 통하여 마음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판단 중지의 영역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