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Hell We Live, Lament
요즘 들어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예전만큼 정신이 맑고 뚜렷하지 못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이 맑고 뚜렷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 대수인가 할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그 맑고 뚜렷하지 못한 정신 때문에 나는 스스로의 목표에 이르는 길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데다가, 이러한 불안감이 오히려 역으로 맑고 뚜렷하지 못한 정신이 더욱이 악화되도록 만드는 양의 피드백 과정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예전부터 나는 지속적으로 나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보았다. 물론 심리학과나 의학계에서 정의하는 정신적 질병의 수준까지는 아닐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정의하는 ‘정신적 문제’란 내가 목표 · 지향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실제 나 자신의 거리감, 그리고 이로부터 근원하는 각종 자기 비판적인 내면들을 일컫기 때문에 의심이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도대체 나의 이러한 성격은 어디에서 근원하는지는 조사 또는 연구의 대상에 머무르고 있지만,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체 다시금 성찰하기 시작하면 나는 이성이 명령하는 규율된 자아와 그에 합치되지 못하는 현실적인 자아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심각하게 지각하게끔 된다. 아마도 이러한 갈등의 모습은 다소 문학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언어학적 표현에서는 더없이 유용할 수 없을 프로이트(Sigmund Frued)의 인간의 정신에 대한 접근을 차용하여 설명하자면, 초자아(superego)와 본능(id) 사이의 갈등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항상 이성이 정도(正道)라고 명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하여 본능(id)을 억누르려고 시도하는 힘겨운 싸움이 오늘날 더욱이 격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욕심이 너무 많거나 심각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삶에서 무언가 하나는 제대로 된 성취를 이루어내고 싶은 욕구가 자아 안에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과도한 욕심’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만 같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변형된 하나의 양태가 아닐까 싶기도 한 과도한 욕심. 바로 이 욕심이 죽음과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이 정신적 문제의 근원 중 하나를 떨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 것인지는 충분한 귀납적 관찰을 수행하지 못했으므로 추론할 수 없는 영역이라 판단을 중지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 관한 한은 죽음 앞에 나의 생각이 미칠 때마다 나는 문득 나 자신이 언젠가는 생물학적으로 사망하여 더 이상 세상을 지각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되뇌이곤 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생물이 태생적으로 아마도 부여받았을 죽음에 대한 선천적인 공포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공포가 아니다. 나는 ‘죽음 앞에서의 공포’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살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줄곧 해 왔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이미 충분히 절망적이지 않은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종의 수고와 노력, 즉 ‘노동’이라 불리우는 작업을 행하지 않으면 결코 사회적이든 경제적이든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은 그 자체가 주장하는 인본주의와 근본부터 모순이었다. 모든 이의 생명의 가치는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세상은 생명에 서로 다른 값어치를 매겼고, 역사적으로 부유한 자는 대체로 오래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스러져 잊혀진 것이 내가 지금까지 알게 된 사회의 실상이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나는 끝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자칫하면 살아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세상은 살기 힘들고 수많은 명(命)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순간의 죽음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한 때 나도 그러한 순간적인 몸의 던짐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그러한 비관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몸을 던지는 대신 지금 여기에 있기는 하다. 던지기 직전에 나는 겨우 이 같은 세상 속에서도 계속 살아남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들은 왜 삶을 지속하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계속 살게 하는가?
시간이 지나고 점차 한 때 나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생각들로부터 점차 벗어남에 따라, 그리고 나의 경험이 시간이 지나면서 누적됨에 따라 나는 한 가지 괜찮은 설명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바로 그 결론이란, “왜 그들은 계속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가 증명하고 싶기 때문에 계속 살아간다.”이지 않을까 – 하는 짐작으로 진술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동기는 아마도 ‘세상 속에 던져진’ 인간 그 자신이 처한 그 상황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런 감각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인지 그 어떠한 정확한 출처도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스스로의 삶의 의미 자체를 모르는 인간이기에 오히려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와 그 주변을 둘러싼 세계에 대하여 추상적 영역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은 결국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여기 지금 내가 서 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존재 이유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할 때 가능한 대답은 사실상 무궁무진할 것이다. 많은 종교가 그리하였듯이 다른 실체가 스스로를 창조하였다고 믿을 수도 있고, 과학의 대답을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은 무(無)로 부치고 그 존재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해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 이유를 발견해나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그 주변을 둘러싼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항상 그 대상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유발했다는 역사적 기록의 진위성을 믿는 나로서는, 올바른 이해 없는 존재 이유의 발견 · 창조란 불가능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존재는 유한하다는 사실은 또 한편으로는 바로 그 올바른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떤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방식은 귀납적으로 사실들을 관찰하여 이로부터 추론을 이끌어내거나, 하나의 명제의 진위성으로부터 다른 명제의 진위성을 이끌어내는 연역적 방식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연역적 방식은 출발점을 항상 요구한다는 점에서 결국 세상에 대한 이해의 출발은 귀납적 추론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귀납적 추론의 확실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요소를 전수조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간은 나의 육신,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크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출발점은 성립할 수 없고, 올바른 이해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분명 절망적이지만, 하지만 시도라도 해볼 가치는 있다.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이해하고 탐색하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여정에 뛰어들 수는 있다. 아니지, 뛰어들어야만 한다. 이 여정에 뛰어들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이 계속 살아가야 할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한 탐구는 중지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한정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여정을 위하여 서둘리 움직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심하게 더없이 귀중한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정신적 문제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맑지 못한 정신과 이성과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 명령하는 이상적인 자아에 따르지 못하는 현실 속의 자아를 한없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이것 이외에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눈 앞의 유혹은 일순간 동안의 지속일 뿐임을 경험을 통하여 나는 충분히 습득하였으며, 쉬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쉼 자체가 시간이 없다는 스스로의 의식을 계속 되살릴 뿐이기 때문에 진정한 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지 않던가.
나는 정신을 맑고 뚜렷하게 다시 일으켜야 한다. 이 흐리멍텅한 눈으로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결국 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해답에도 다가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상실시키는 것이며, 나 자신이 계속 살아가야 할 당위를 없애버린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맑지 못한 정신은 자살 행위와 다름 없다. 나에게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정신과 마음새를 다듬어 정도(正道)에 정진(正進)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를 어찌 한심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겠는가!
추신
오늘 이 괴상한 글의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늘 들은 (점차 취향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고 있는) 인디 밴드인 Mili의 동명의 곡을 듣고 거기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보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 곡의 제목과 이 글의 내용이 얼추 들어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의 제목을 정하는데 크게 기여한 그 곡을 여기에 달아 두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Lyrics
I walked down a path
Leading to the past
Stole from the tree’s hands
A regretter’s friend – the forbidden fruitI bite off the skin
Chewing on its tender flesh
Quaff down its lukewarm pus
You became the “me” who you despisedWe swallowed the time
Let us rewindLament
If you wanted me to speak
If you wanted me to think
If you wanted me to carry on our dreamsEach loop we live though
(Each loop we live through)
The standards inside me
The line I drew for me
Lowers to the earthLament
Why’d you make my voice sutter?
Why’d you curse me with
“you’re a natural born genius”?Endless inferno
(Inferno)
Counter-clock we rose
Counter-clock we reloadTick tick tock
Replayed throughts
Forget me not
I’m inside the empathic lightI bite off your skin
Exposing the angels on your ribs
They stare at us
Hello, how may I help you today?
Please, a one-way ticket to heavenBuckled up on velvet seats
Sceneries were passing by
Not so different from our hell
Not so different from our homeThen I realized
Someone’s heaven could be
the source of my torment
Life is allowing yourself
Allowing yourself to step on fire
(Life is to consume)
(Life is to become food for each other)Shed tears on bloodied routes
(No matter evil or good)
(Life is fairness, life is inequality)
Eternally in hell
(Life is in the motion)
We live by defaultLament (Nell)
If you wanted me to live (Inferna)
If you want me to forgive
If you want us to pretend
like we’re civilized humansEach loop we die through
(Ques te anim?)
(Each loop we die through)
(Ques sej mentalle?)The justice inside me
The ego fending me
(Ques io fuocca?)
Rationalize my sin
(Ques qui Diavola?)Lament
Why do deaths end my torture?
(Cossa non naturha)
Why can’t anyone feel my hurt?
(Via si violenzalle)
Why’d you crown the most
violent to be champions?
(Bruschia sej diva, verha ignisa)In this inferno (Inferno)
(A! Lamenta, lamenta)
We build for ourselves (Cis senza)
Reviving each other in this hell
(Lamenta, lamenta, lamenta)L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