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투쟁은 항상 지는 싸움인가
요즘 들어서 세대 갈등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나는 다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름이 아닌, 〈변화를 위한 투쟁은 항상 지는 싸움인가〉라는 질문이다.
사실 변화를 위한 투쟁은 변화를 주장하는 쪽이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대체로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현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강력히 원하므로, 일단 투쟁의 무대 자체가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공정한 숙의의 장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입증 책임은 현행 유지를 논하는 사람들이 아닌 변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행을 유지하는 것은 현재와 유사하기 때문에 비슷한 미래를 예상하고 사람들로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현행과 다른 어떤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그 결과로 미래에 일어날 주요한 변화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예측하여, 장점이 단점보다 큼을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므로 만약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느 토론장에서 격돌한다면, 그 투쟁에서 질 확률이 높은 쪽은 아마도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해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항상 지는 싸움〉일수도 있는 이 투쟁은 그렇다면 의미가 있는가. 이기면 이득을 얻고 지면 손해를 입는 냉혹한 현실 세계에서 〈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또는 〈지게 되는〉 싸움이란 개인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투쟁이란 무엇을 쟁의자에게 남겨 주는 것인가.
나는 변화를 위한 투쟁이란 대체로 쟁의자에게 있어 거의 대체로 단기적인 손해를 유발한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변화를 위한 설득에 나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충분한 근거와 자료들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자본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하여 행해야 하는 행동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쟁의자에게는 당연히 더 적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투쟁은 내 생각으로는 쟁의자, 그리고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에 장기적인 이익을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어떠한 사회도 정적일 수는 없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태동하고 죽는 중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는 동적이다. 동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제도와 관습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변화를 위한 투쟁은 결국 시대와 사람이 변화함에 따라, 그리고 기술과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개인과 그 주변인이 살아갈 환경을 알맞게 조절하는,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변화를 위한 투쟁은 항상 지는 싸움인가〉에 대한 대답을 내자. 그와 같은 주장은 승부의 이기고 지는 것을 개인과 개인의 경쟁 관계로 이해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닌가. 나와 주변인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함께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보지 않고 스스로만을 챙기기에 바쁜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해당 질문이 아닌가.
변화를 위한 투쟁은 항상 지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투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