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2022-04-06 Off By 커피사유

#1.

…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다름아닌 ‘열등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2.

〈호기심〉, 그리고 또 무엇이냐 ― 바람직하다고 부르는 그 모든 추동적 ‘가치’들 ― 이것들 모두는 ‘열등감’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닐까. 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인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히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외적 요건들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 그것들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도덕을 논하는가?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 사회의 모든 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데 무슨 사회에 이바지를 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제대로 관리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 무슨 어떤 있지도 않은 훌륭한 방법을 써서 사회를 관리하거나 또는 변혁시키겠다는 것인가. 도덕을 논의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기만인 셈이다 ― 스스로를 혼자 만의 힘으로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을 빌리려고 하는 바로 그것으로서의.


#3.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이제 나가 아닌 것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나가 아닌 것에 좌우되거나 이들을 목격하면서 스스로의 무능이나 무지를 목격한다. 그것들은 를 강력히 추동한다. 나아가야 한다 ― 이것이 그들의 강력한, 그리고 단 하나의 요구이다.


#4.

무능과 무지 앞에서 는 왜 추동되는가? 왜 나는 나아가거나 나아가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유약함에 대한 반동이다. 할 수 없음의 반대에는 할 수 있음이 있다. 알 수 없음의 반대에는 알 수 있음이 있다. 나는 추동으로서 스스로를 없음에서 있음의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과 이것이 같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나의 이러한 사상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묘하게 닮아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다.


#5.

열등감은 무능과 무지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감, 즉 자신보다 강한 것들이 자신을 좌우한다는 것에 대한 인간 본연, 반동이다. 나는 그것들을 정복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독립해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무덤까지도 이들에게 끌려다니고야 말 것이다. 나는 주체적인 인간이고 싶다.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은 것이다. 설령 그 주체자유라는 것이 나에게 주는 것이 끝없는 심연과 공포,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으며 확실한 것도 없다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라고 할지라도.


#6.

그러니까 나를 움직이는 것은 열등감인 셈이다. 나는 나 자신을 좌우시키는 것, 나 자신보다 더 뛰어나거나, 탁월하거나, 강하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항하거나 도전하고 싶어 한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힘에의 의지에 추동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전에 나는 이러한 힘에의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그것 ― 생존 의지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변화를 갈망하는 것이고, 또한 그 변화로서 스스로가 정의되는 것이기에, 앞으로 달려 나가는 모든 것 ― 적어도 시체나 썩은 것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은 살아있음이라는 그 자신의 속성으로 인하여 힘에의 의지를 갈망하는 것이다. 나 또한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7.

나는 살아있어야 한다. 나는 ‘죽어있는 정신’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나는 힘에의 의지를 있는 힘껏 갈망하며 또한 발휘하려고 한다. 그것이 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