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나에게는 괴랄한 고집이 하나 있다.
그 고집이란 그 유도 과정이나 논리적 전개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는 이론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고집이다. 어떤 새로운 사실이나 내용, 이론을 접하게 되면 반드시 나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들에 비추어 나 자신을 설득해야만 나는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나 자신이 새로이 알게 된 내용에 대해 스스로를 납득시키는데 실패하면 ― 즉 배운 내용들과 개념들, 지식들과 연결짓지 못한 내용은 나는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다른 수많은 똑똑한 이들과는 달리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그래서 매번 모든 이론들은 기초부터 하나하나씩 유도해내서 다시 떠올리곤 한다. 이것은 개념 사이의 연관관계를 보는 데에는 몹시 좋은 태도이긴 하지만, 문제는 학습의 효율이 아주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나 내용을 배우면 그것을 소화시키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1시간 짜리 강의도 3시간 이상의 시간을 들여 복습해야 하고, 하나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으면 조교와 교수에게 질문을 쉴새없이 던지고, 그리하여 새로 알게 된 참고자료들을 일일이 뒤적거리고 그걸 또 나의 언어로 정리하고 스스로의 지식의 범주 내에서 자신을 설득시키는 작업을 해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시간이 모자라고, 결국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면서 점차 피곤해진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집중하면서 공부에 쏟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어떤 경우는 생각의 포화가 와 잠시 쉬어주어야 하기에. 그래서 시간은 모자라고 나는 급박해지며 결국 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건강을 포기하면서 약과 철학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것이다.
… 이것이 올바른 삶인가? 이것이 올바른 학문으로 가는 길인가? 나는 크게 고통받고 있으며, 크게 비틀거리면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집스러운 태도가 나는 여전히 느리더라도 고통받은 만큼의 결과물을 선사하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희망 속에서 나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희망도 없다면 호기심을 따라가는 인간이 삶을 지속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