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
학기를 마무리 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이란 오래전부터 이미 단 하나 뿐이었다. 홀가분하다는 느낌은 분명히 아니다. 아직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바로 그 사실에 대한 통렬한 직감, 바로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느끼는 것이다.
무능과 무지. 나의 대학에서의 불굴의 투쟁의 대상. 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또한 나아갔다. 사람들은 이러한 의지란 대단한 것이고 또한 성실함의 대명사라 일컫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스스로가 모른다는 그 뼈저린 통찰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윤동주, 다자이 오사무, 니체의 공통점을 명확히 알 것만 같다. 그들은 모두 이 뼈저린 통찰을, 때로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로 대표되기도 하고 ‘이율배반’이라는 단어로 대표되기도 하며, 때로는 ‘역겨움’이라는 단어로 대표되기도 하는 스스로의 일관성 없음을 마주한 순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직시하기로 한 것이다. 나름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또한 알리고자 한 것이다. 무언가 ‘된다’라거나 무언가를 ‘바란다’거나 무언가를 ‘남기겠다’라거나와 같은 그 거창한 목적론이 아닌, 오직 현재의 그 순간,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학기가 끝났고 이제 방학이 시작되지만 바뀔 것은 없다. 배움은 멈출 수 없고 나의 학문 또한 그러하다. 무지와 무능은 학기든 방학이든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나의 삶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 끝나게 될 것임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