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총서 #7. 나의 인생 사운드트랙

연구총서 #7. 나의 인생 사운드트랙

2024-07-17 0 By 커피사유

연구총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작성한 레포트 · 연구 기록 · 소논문 등 학술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공간으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분석을 여러 방면에서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이 글은 2024학년도 1학기, 필자가 수강한 서울대학교 이서현 교수님의 〈음악과 사회〉 강좌의 과제로 작성된 중간 레포트임을 밝혀둡니다.

또, 제출한 레포트 원본에는 각 음악에 대한 링크가 달려있지 않지만, 본 포스트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각 음악에 상응하는 Youtube 영상 링크를 첨부하였습니다.



I. 들어가는 말

음악이란 무엇이어야 하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음악은 혁신이거나 표현이어야 한다.” 혹자는 음악을 사랑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보기도 하고, 인간 감정에 대한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음악이 표현하는 대상이 굳이 사랑과 같은 사람의 감정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음악은 감정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각종 상황과 대립들을 혁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가치를 확립할 수 있다.

내가 음악을 바라보는 이러한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정립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들어왔던 음악들, 그리고 그 각각이 제공해준 특별한 경험과 감상들이 스스로의 삶과 상호작용한 결과로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어떠한 음악을 지금까지 들어왔으며, 그로써 음악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추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삶에서 들어온 음악들이 나와 어떤 식으로 관계되어 있는지를 되새기는 것은 단순히 음악적 취향의 변천사를 파악하는 것에서 그 효용이 그친다기보다는, 음악이 삶의 각 장면에서 어떠한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일이므로 음악에 대한 나의 사상과 관점의 근원을 밝히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하다.


II. 선정한 곡 목록

본고에서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가치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거나, 혹은 스스로의 삶에서 중요한 상징이 되는 음악들을 다음과 같이 ‘인생 사운드트랙’으로서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에는 각각의 음반들이 수록된 앨범과 연도를 명시하였으며, 오리지널 음반이 아닌 리메이크나 다른 연주자에 의해 연주된 음반을 선정한 경우 그 정보를 별도로 명시하였다.

  • 김광석 – 거리에서 (김광석 다시부르기 1, 1993)
  • F.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I. Allegro Molto Appassionato (1981 Deutshce Grammophon;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Anne-Sophie Mutter at Violin)
  • Astor Piazzolla – Historie du Tango: III. Nightclub 1960 (Arr. For Cello and Guitar, Jan Vogler, 2019)
  • Chick Corea – Spain (Light As A Feather, 1973)
  • Daft Punk – Veridis Quo (Discovery, 2001)
  • J.E.B – Cho by Yongpil (feat. Cho Yongpil) (2015)

III. 곡에 대한 소개와 분석

III.1. 김광석 – 거리에서 (김광석 다시부르기 1집, 1993)

김광석 – 거리에서 (김광석 다시부르기 1집, 1993)
III.1.1. 곡 소개

 “문명이 발달해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누군가 반드시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되었으면 해요.”1김동하. “라이브 가수 김광석 – 노래는 삶의 상처를 감싸주는 것”. 월간 샘터. (1995).

김광석, 1984년 민중노래 서클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공연활동을 시작한 뒤 1988년 그룹 ‘동물원’을 거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전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전 세대에 걸쳐서 그의 음악이 아직도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김광석의 곡 특유의 ‘위로’격 감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춘이 처하는 마음의 경계에 주목하여, 도시인에게 삶의 전회의 계기로서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시간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김소희2김소희. “김광석의 음악세계에 새겨지는 껴안는 문화적 분위기로의 환기: 도시인의 숨겨진 내러티브 발견과 감각파장을 중심으로”. 문화산업연구 16.4. (2016). pp.147-165.의 평가부터,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휘어잡는 잔잔한 울림과 함께 노래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흡인력이 있다”는 김동하3김동하. op.cit.의 평가까지, 김광석의 음악은 그의 말대로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는’ 감성과 가사들로 채워져 있다.

김광석의 정신이 가장 잘 대표될 수 있는 곡이 바로 1988년 〈동물원〉의 1집에 수록된 곡 〈거리에서〉 이다. A단조 조성의 잔잔히 깔리는 스트링 위로 울리는 나지막한 통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곡은 김광석 목소리가 덧입혀지며 특유의 애절하고 쓸쓸한 감성이 극대화된다. 김창기가 쓴 곡의 가사는 거리에서 날이 저무는 모습,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리고 떨어진 낙엽의 모습들을 화자가 보고서 떠나버린 그리운 사람을 추억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지만, 특별한 기교 없이 담담하게 노래하는 김광석의 음색이 가사에 입혀지면 단순히 그리운 사람을 추억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마치 지나간 모든 아픔과 고독을 노래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김광석의 음악은 신디사이저의 음향이 도입되면서 발라드에서부터 락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 각종 실험적인 음반들이 쏟아져나오는 와중에도 통기타와 하모니카만으로도 대중들을 사로잡았다는 면에서도 기념할만하다. 물론 〈거리에서〉는 실연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곡이라는 점에서 1980년대와 90년대를 휩쓴 소위 ‘사랑 타령’이나 ‘탈인간적 기계적 리듬’의 범람에서 완전히 벗어난 곡이라고 할 수 없지만, 강헌4강헌. “추모/김광석이 보고 싶다 – 우리를 떠난 일상의 시정과 통기타의 비판정신”. 월간말. (1996).이 지적헸듯 ‘그의 노래는 일상적 구체성과 상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명징한 이미지를 구축하여 천편일률적인 사랑 타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던 주류 대중음악의 대안’이 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기억될만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I.1.2. 곡의 선정 이유와 감상

대한민국 특유의 경쟁이 심한 교육 환경 속, 하루하루 심신이 갈려나가는 고등학생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곡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곡이 아닐까? 나에게 있어 고등학교 생활을 상징하는 곡이 된 김광석의 〈거리에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한 영원한 가객 김광석을 내가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곡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궁지에 몰리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심적으로 절감하게 된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교우 관계나 개인적 여가 활동을 모두 포기하고 쓸 수 있는 모든 시간과 자원을 오로지 학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생활은, 쉽사리 오르지 않는 성적과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함께 생활하는 동반자이기도 한 급우들의 이중적 성격과 함께 나를 극심한 멜랑꼴리에 시달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랑꼴리를 이겨내고 고등학교의 그 힘겨운 여정을 넘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야간자율학습 시간 사이에 주어지는 20분이라는 짧은 간식 시간 동안 기숙사로 돌아와서 김광석의 음악을 듣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른 즈음에〉나 〈일어나〉와 같은 곡들도 좋아했지만 김광석의 음악 중에서 내가 각별히 자주 들었던 음악은 이 곡 〈거리에서〉인데, 가사에서 노래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쓸쓸하게 혼자 걷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고등학교에서 나 자신이 처한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고 느낀 덕에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위로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 속의 우울함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털어버릴 수 있다는 대중의 평가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절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리에서〉가 가진 매력은 비단 가사의 내용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곡 맨 앞의 8마디 기타 독주와 김광석의 목소리 또한 그의 다른 곡들보다도 이 곡을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를 제공했다. 기타 독주는 곡을 들을 때마다 매번 귀에 다르게 들렸는데, 스스로에 대한 위로로 들린 날도 있는 한편 후회나 불안함을 고백할 때처럼 떨리는 사운드로 들리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기타 퉁기는 소리가 어떠한 의미로 들리든지와 무관히, 그 위에 김광석의 목소리가 잔잔히 노래하면 항상 그가 마치 나 자신의 삶을 대신 노래해주는 가수인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즉 〈거리에서〉는 고등학교의 힘겨운 생활 그 자체를 상징하는 곡으로서 오늘날까지 나 자신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 삶의 주요한 순간 중 하나였던 고등학교 때를 대표하는 김광석의 이 곡을 인생 사운드트랙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III.2. F.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I. Allegro Molto Appassionato (Deutsche Grammophon,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Herbert von Karajan · Anne Sophine Mutter, 1981)

F.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I. Allegro Molto Appassionato (Deutsche Grammophon,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Herbert von Karajan · Anne Sophine Mutter, 1981)
II.2.1. 곡 소개

클래식에서 바이올린 3대 협주곡을 꼽을 땐 베토벤과 브람스의 작품이 당연히 포함되곤 하지만,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빼 놓을 수 없다. 이상범5이상범. “인품까지 갖춘 천재의 조화로운 삶과 음악: 페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 64”. 기독교사상. (2003). pp.206-211.에 의하면, 그는 불과 12세의 나이에 〈피아노 4중주〉의 첫 작품을 쓰고, 17세가 되던 해에는 오늘날에도 널리 연주되는 〈한여름 밤의 꿈〉을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신동이었다. 경제 관념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모차르트나 어린 시절에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가난에 시달렸으며 귓병으로 청력까지 거의 상실했던 베토벤 등과는 달리 멘델스존은 음악가로서 아주 좋은 팔자를 누린 인물이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필적할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불행한 가족사도 없었으며, 성숙한 인간미와 성실함, 경제 관념 그리고 원만한 결혼 생활까지 모두 갖추었던 멘델스존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생에 결점이 있다면 그의 수명이 그다지 길지 못했다는 점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오늘날 관현악단에서 즐겨 연주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레파토리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이 곡,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균형 잡힌 세련된 형식, 부드럽게 청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멜로디가 일품이라 할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은 당초 1838년에 멘델스존이 그가 지휘하고 있던 게트반하우스 관현악단의 악장 페르디난트 다빗(Herr Ferdinand David)에게 작곡을 약속했지만, 6년 뒤인 1844년에야 완성되어서 1845년에 게트반하우스에서 초연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6George Grove. “Mendelssohn’s Violin Concerto.”. The Musical Times. 47.763. (1906). pp.611-615. 이 협주곡은 ‘빠름-느림-빠름’ 구조라는 보편적인 협주곡의 특징을 따르고 있지만, 당시의 대다수의 협주곡은 바이올린 독주 이전 오케스트라가 도입부를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1 · 2 · 3악장이 모두 다른 주제를 담고 있어 별도의 곡처럼 느껴지던 것과는 달리, 이 곡은 1악장의 초입부부터 현악부 8분박 펼침화음 위의 바이올린의 구슬픈 독주로 강렬하게 시작하여 3악장의 전 악장에 걸쳐 악장 간의 ‘간극’ 없이 모든 곡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훌륭한 완성도를 보인다.

III.2.2. 곡의 선정 이유와 감상

오늘날 내가 가장 즐겨 듣는 두 장르, 재즈와 클래식 중에서 후자, 즉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 대학 1학년 2학기의 개강일, 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렀던 제58회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SNUPO) 정기 연주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클래식을 듣고 싶어서 직접 찾아서 갔다기보다는 무료 공연이었다는 점이 발걸음을 옮기게 한 주요한 이유이기는 했지만, 당일 공연만큼 음악적 취향을 뒤흔든 경험은 전무후무하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나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밟으며 학교의 급우들과 지낼 수 있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대학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크게 억눌려 있었다. 물론 고등학교의 끔찍했던 경험들을 회상했을 때는 빠르게 대학에 진학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지만, 처음으로 선생님이나 부모님 없이 스스로의 삶의 모든 부분을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을 때, 그리고 동시에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대학에서는 보다 자유롭다’라는 말 자체가 거짓말임을 절실히 체득하게 되었을 때는 일련의 배신감마저 느끼기도 했었다. 정리하자면 사회로 처음 나아가기 시작하는 대학의 문 아래에서 내가 과연 이 세상에서 홀로 잘 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감과 불안함에 시달리고 있었던 때, 그날의 연주가 열렸던 대강당의 의자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배경 하에서 첫 번째 곡으로 멘델스존의 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1악장이 연주되었을 때 느꼈던 그 복잡미묘한 카타르시스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잘못된 해석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마치 바이올린의 독주와 오케스트라 합주의 대립 구도가 나 자신과 주변 세상의 대립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독주자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구슬픈 E단조 독주 선율은 마치 울부짖고 있는 것만 같았고, 오케스트라는 울부짖음 가운데에도 피할 수 없이 떨어지는 사건들, 즉 소위 말하는 ‘운명’과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중 · 고등학교 때의 음악 수업이나 신문 기사를 통해 협연곡에서의 독주와 합주의 대립 구도는 갈등의 전개와 해결을 표현하는 음악에서 전형적인 기법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전까지는 이론적 사실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직접 체감하게 된 것은 그 당시가 처음이었다. 4분 경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독주와 오케스트라 협주가 선율을 교대로 연주하는 부분은 마치 내가 세상을 향해서 ‘내가 홀로 설 수 있는가’를 묻고 세상이 이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사건으로 대답하는 장면과 동형으로 느껴졌고, 7분경의 바이올린의 화려하고 감정적인 독주부는 마치 내 불안한 마음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8분경 바이올린 독주자가 화려하게 펼침화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고 오케스트라가 주제 선율을 연주하는 부분은 독주 바이올린이 주제 선율을 연주했던 곡의 시작 부분과 대비되면서 마치 나의 불안함에 대해서 세상이 공감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즉, 이 곡은 클래식 음악이 가지는 여러 요소들이 다면적이고 복잡한 사람의 정서나 상황을 대변해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절실하게 알려준 곡이기도 하며, 심리적으로 복잡했던 대학의 첫 해를 가장 따뜻하게 위로해준 곡이기도 하다. 대학 4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의 ‘홀로서기’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인 버팀목이자 스스로를 대변하는 곡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이 곡을 인생 사운드트랙에서 빼는 것은 따라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III.3. Astor Piazzolla – Historie du Tango: III Nightclub 1960 (Arr. For Cello and Guitar, Jan Vogler, 2019)

Astor Piazzolla – Historie du Tango: III Nightclub 1960 (Arr. For Cello and Guitar, Jan Vogler, 2019)
III.3.1. 곡 소개

‘누에보 탱고(Nuevo Tango)’. 클래식과 재즈, 탱고의 기막힌 새로운 조합. 전통적인 탱고와 다르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대중들에게 크게 거부받았지만 탱고를 오늘날 전 세계에서 즐기는 음악으로 올려다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개척자. 바로 아스트로 피아졸라(Astor Piazolla)다. 1921년 3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살았다. 홍승찬7홍승찬. “피아졸라의 삶과 음악”. 트랜스라틴 22. (2012). pp.38-47.에 의하면 그의 음악 인생을 바꾸어놓은 것은 열 살 때 아버지를 통해 접한 반도네온이었는데, 아코디언을 닮았지만 주름 상자의 양 끝에 오른손 고음역 38개, 왼손 저음역 33개의 단추식 건반이 달려 있어 연주법이 복잡한 이 악기는 피아졸라와 평생에 걸쳐 떼러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구축했다. 1937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피아졸라는 반도네온 연주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관심은 탱고보다는 오히려 뉴욕에서 접한 클래식과 재즈에 있었다. 루빈스타인,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등 아르헨티나의 클래식 음악가들을 거쳐 그는 파리의 나디아 블랑제 문하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나디아가 피아졸라의 작품에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라벨 등의 다른 작곡가의 스타일은 묻어있지만, 정작 피아졸라 자신만의 개성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피아졸라 자신의 모습은 다름아닌 그의 반도네온 연주에 있다고 조언한 것은 피아졸라가 클래식과 재즈를 바탕으로 ‘춤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으로서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 ‘누에보 탱고’를 구축하는데 있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피아졸라의 음악은 아르헨티나 대중들에게 철저히 배척당했다. ‘정통 탱고’에 익숙한 아르헨티나인들에게 그의 ‘새로운 탱고’는 너무 색다른 것이었다. 그는 비난은 물론이고 택시 승차를 거부당하는 것에서부터 주먹 싸움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 대한 대중의 싸늘한 반응에 아버지의 죽음까지 겹친 이중고 속에서도 〈Adiós Nonino〉를 시작으로 그의 ‘누에보 탱고’를 끊임없이 추구해나갔다. 서은희8서은희. “[공연비평] 여름 한가운데의 탱고 – 「아디오스, 피아졸라」”. 트랜스라틴 34. (2016). pp.93-102.가 부언했듯 탱고는 가난한 이민자 사이에서 추던 춤곡을 시작으로 발전한 음악에서 기원한 기본 정서인 ‘서러움’과 강세가 일반적인 규칙을 벗어난 곳에 떨어지며 박자를 밀고 당기는 당김음이 구축하는 예측불허의 ‘긴장감’ 사이에 있는 음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이러한 모습은 탱고 그 자체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이 세상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할 무렵인 1986년에 발표된 《탱고의 역사 Histoire Du Tango》 4모음곡 중 제3곡 〈Nightclub 1960〉은 이러한 배경을 가진 그였기에 가능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국민 정서나 다름없었던 탱고 음악이 경제적 어려움과 록의 유입으로 변한 대중의 음악적 기호 변화에 따라 혁신을 모색하던 1960년대, 전통적인 탱고 요소에 재즈와 클래식 · 팝 등 다른 음악 장르를 모두 끌어안은 이 곡은 그가 추구한 ‘누에보 탱고’의 진수란 무엇인지를 가감없이 모두 보여주고 있다. 당김박의 예측불허한 전개가 마치 댄스 플로어 위에서 두 남녀가 정열적으로 춤을 추며 구두가 부닥치는 소리처럼 느껴지는 도입부가 시나브로 부드러운 클래식풍의 선율로 전환되는 전이부는 탱고 음악이 왜 아스트로 피아졸라 이후에 전 세계로 퍼져서 사랑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III.3.2. 곡의 선정 이유와 감상

아스트로 피아졸라라는 인물은 물론이거니와, 라틴 음악은 클래식과 전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피아졸라를 알게 된 것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에서 열렸던 ‘제43회 작은음악회’였었다. 저녁 무렵 대학원 기숙사 식당의 바로 앞 뜰에서 열린 이 음악회는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의한 거리두기 정책 때문에 청중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을 한참 떨어뜨려놓은 형태였는데, 중간고사가 끝난 시즌이라 심신이 허했던 나는 가장 맨 앞자리에 앉아서 음악대학 사람들의 연주를 들었었다.

당시의 연주는 첼로 한 대와 기타 한 대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처음 몇 소절을 들었을 때 상당한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통해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던 시기라 멘델스존과 생상스,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여러 클래식 작곡가들의 교향곡부터 협주곡, 그리고 실내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곡들을 들어오던 때였지만, 라틴 특유의 긴장감 있는 박자와 어딘지 모르게 애달픈 이 곡같은 분위기의 클래식 작품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틴 음악이라면 살사와 같이 정열적인 춤곡이라고만 생각했었기에 클래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 차이코프스키의 부드럽고 평안한 선율과 라틴풍의 박자 사이를 오가는 듯한 이 곡은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스트로 피아졸라 퀸텟(Quintet)의 원곡이 있음에도 Jan Vogler의 변주 버전을 인생 플레이리스트에 포함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드러운 클래식의 선율과 라틴 음악 사이의 공간에서도 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탁월성에는 원곡의 따뜻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사운드를 따라갈 연주가 없겠지만, 라틴 음악과 클래식 음악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던 것은 원곡이 아니라 Jan Vogler의 버전처럼 단순히 첼로 한 대와 기타 한 대만으로 이루어진 당시의 연주였기 때문이다. 기타 특유의 라틴스러운 퉁김 위에 첼로가 부드러운 선율을 입히는 이 곡의 도입부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음악이 대학 초창기 나 자신의 편협한 음악 세계의 확장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가를 상기하게 되는데, 아마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음악을 인생 사운드트랙에 포함시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III.4. Chick Corea – Spain (Light As A Feather, 1973)

Chick Corea – Spain (Light As A Feather, 1973)
III.4.1. 곡 소개

재즈 애호가를 임의로 한 명 붙잡고서2020년에 생을 마감한 재즈 피아노의 거장 칙 코리아(Chick Corea)의 대표곡을 꼽으라고 한다면 〈Spain〉 이외의 곡을 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중에게 가장 친근하면서도 유명한 곡인 이 곡은 쿨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밴드를 거친 그가1970년대 전자 음악의 부흥 속에서 전통적인 재즈에 전자 사운드를 가미하여 보여준 퓨전 재즈(Fusion Jazz)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칙 코리아가 결성한 그룹 ‘Return to Forever’의 두 번째 앨범 《Light as a Feather》(1973)에 처음 수록된 이 곡은 오현우9오현우. “[이 아침의 피아니스트] 미국 뉴에이지 선도한 ‘재즈 뮤지션’ 칙 코리아”.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21599001. 15 Feb 2023. Accessed on 25 Apr 2024.가 부언했듯 1971년 그가 스페인의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에는 라틴 음악의 향기가 듬뿍 묻어있는 것과는 달리 칙 코리아는 스페인과 특별한 관계는 없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후손이었고, 음악 명문 줄리아드에 입학했다가 보수적인 교육에 실망한 나머지 학교를 곧바로 중퇴, 60년대 초부터 직업적 연주를 시작한 실용주의적 음악가였을 뿐이다.10“이제 전설로 남은 칙 코리아의 재즈 스탠더드 ‘스페인’”. INDIEPOST. https://www.indiepost.co.kr/post/14797. 21 Feb 2021. Accessed on 25 Apr 2024. 그가 라틴 음악에 빠져든 것은 직업적 연주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했던 여러 재즈 거장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보사노바(Bossa Nova)의 거장이었던 스탄 게츠(Stan Getz)의 사이드맨으로 연주 생활을 시작한 뒤, 쿨 재즈의 전설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일하면서 라틴 음악과 연계된 앨범들을 작업했기 때문이다.

기타로 연주하는 ‘아랑훼즈 협주곡’의 인트로가 전자 키보드의 음색을 통해 흘러나오는 곡의 초반부는 트럼펫, 색소폰 그리고 코넷 등의 금관악기의 날카로운 소리로 대표되는 뉴올리언스 재즈 이후부터 하드 비밥에 이르기까지의 재즈의 보편적인 악기 구성을 과감히 벗어나는 퓨전 재즈 정신을 정확하게 담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곡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전자 키보드와 플루트, 보컬, 퍼커션과 베이스에 의해 전개되어 나간다. 퍼커션이 흥겨운 브라질리안 삼바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나머지 세션들이 플라멩코풍으로 연주하는 상승감을 담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올림조 화성 진행, 수시로 들어오는 유니즌 라인과 킥 타임은 왜 이 곡이 오늘날까지 퓨전 재즈의 명곡으로 기억되면서 알 재로(Al Jarreau) 등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불리고 연주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III.4.2. 곡의 선정 이유와 감상

처음으로 이 곡을 접하게 된 것은 코로나-19의 유행기, 인플루언서 차밍조(Charming Jo)의 온라인 싱크룸(Syncroom) 합주를 통해서였다. 비록 칙 코리아의 원곡은 아니었고 알 재로(Al Jarreau)가 가사를 붙인 버전이었지만, 재즈 음악이란 끈적거리는 색소폰이라던가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있는 음악이다는 스테리오타입에 갇혀 있던 나에게 남미 느낌이 나는 복잡한 리듬은 큰 충격이었다. 이전까지 생각해오던 재즈에 대한 관념이 아주 편협한 사고였다는 것을 밝혀준 이 곡은 라틴 음악과 각종 재즈 음악들, 그리고 여러 연주자들이 즉석에서 모여서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특유의 잼(Jam)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알 재로의 버전이 아닌 칙 코리아의 원곡을 사운드트랙에 선정한 이유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첫 해 JIVE 재즈 감상 모임에서 들었던 원곡이 재즈에 관한 두 번째 충격을 안겨주었던 경험에 있다. 알 재로 버전은 재즈에 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재즈곡들을 즐겨 듣게 만들었지만, 재즈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던 나에게 익숙한 재즈 음악이란 색소폰 사운드나 잼 세션 위주의 커버곡들이었다. 따라서 주로 피아노와 드럼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경우에 따라서는 색소폰 등의 전형적인 쿨 재즈나 비밥 위주의 재즈 사운드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칙 코리아의 원곡의 전자피아노를 이용한 몽환적인 사운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겨오는 플라멩고의 향기는 재즈 사운드에 대한 시야를 크게 넓혀주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즉 이 곡은 오늘날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그들의 곡들, 그리고 재즈 특유의 감성과 사운드에 완전히 푹 빠져버린 스스로의 음악적 취향이 형성된 계기를 설명함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재즈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환기시킨 곡이자, 재즈 음악에 대한 스테리오 타입을 두 번에 걸쳐 깨부순 곡을 인생 사운드트랙으로 등재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III.5. Daft Punk – Veridis Quo (Discovery, 2001)

Daft Punk – Veridis Quo (Discovery, 2001)
III.5.1. 곡 소개

‘일렉트로닉(Electronic) 음악’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쉼없이 몰아치는 드럼의 ‘킥(Kick)’으로 대표되는, 마치 유흥가에서 정신없이 춤추기 좋을 시끄러운 음악들을 떠올리곤 한다. 오늘날 EDM이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장르에서 대중성과 상업성을 앞세워 비슷한 리듬과 구조, 비슷한 가사나 조성들로 발표되는 소위 ‘양산형’ 음악들을 고려하면 이러한 스테리오타입을 마냥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Veridis Quo〉는 일렉트로닉 음악은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다프트 펑크 (Daft Punk) 는 이대화11이대화. “일렉트로닉 뮤지엄 #10 – 다프트 펑크(Daft Punk)”. Genie. https://www.genie.co.kr/magazine/subMain?ctid=21&mgz_seq=5517. Accessed on 25 Apr 2024.가 논했듯,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어온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인정하는 뮤지션이다. 이들은 토마스 방갈테르(Thomas Bangalter)와 기 마누엘 드 오맹 크리스토(Guy-Manuel de Homem-Christo)의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2인조 그룹으로, 사람들에게는 ‘로봇 모양의 헬멧’을 쓴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비록 2021년에 해체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하우스 EDM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Pop의 면모를 끌어안으며 당대의 다른 EDM들과 차별점을 둔 탁월한 음악 그룹이었다. 그들은 둔탁한 드럼 머신과 신디사이저의 Acid 효과를 화려하게 섞은 첫 번째 앨범, 《Da Funk》에서부터 마이클 잭슨의 앨범  《Thriller》를 패러디한 자켓으로 유명한 네 번째 앨범 《Random Access Memory》에 이르기까지 하우스, 누 디스코, 테크노, 펑크 락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들을 행했다.

〈Veridis Quo〉는 다프트 펑크의 앨범 중 최고로 꼽히는 2집 《Discovery》에 수록된 곡이다. 이 앨범은 〈One More Time〉,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와 같은 다프트 펑크하면 떠오르는 대표곡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으며, 곡들이 이미 발표된 다른 음악가들의 곡들을 샘플링하여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표절 논란에 휘말렸음에도 그 샘플링의 음악적 탁월성 때문에 역으로 높이 평가받은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나 〈One More Time〉이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등은 펑키한 전자음이나 신나는 리듬으로 사람들을 댄스 플로어로 이끌어내는 곡인 반면 〈Veridis Quo〉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위주의 곡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곡은 전자 파이프 오르간 소리로 시작해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로 끝난다. 중간에 신디사이저나 드럼, 전자 음향 효과들이 조금씩 섞여 들어오기도 하지만, 곡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전자 파이프 오르간 사운드 특유의 미묘한 엄숙함이다. 곡의 전반에서 ‘성스러움’의 감각까지 느껴지는 것은 김연수12김연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빛의 소리를 듣는 일 –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과 다프트펑크의 〈Veridis Quo〉”. 채널예스. https://ch.yes24.com/Article/View/31587. Accessed on 29 Apr 2024.가 지적했듯 이 곡의 제목이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쿠오 바디스(Quo Vadis)’, 즉 ‘(주님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애너그램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곡의 제목인 ‘Veridis Quo’는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Very Disco’가 되고, 단어의 순서를 뒤집으면 ‘Discovery’로 앨범의 제목이 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두근되는 심장을 표현하듯 규칙적으로 뛰는 킥(Kick) 위에서 울려퍼지는 이들의 음악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가 감독을 맡은 《Discovery》의 뮤직비디오들에서 이 음악에 상응하는 부분은 주인공 일행이 숨겨졌던 진실을 발견하는 대목이라는 점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상업적 수요에 맞추어 끊임없이 ‘찍어내는’ 오늘날의 EDM 음악계에 다프트 펑크의 이 곡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II.5.2. 곡의 선정 이유와 감상

고등학교 때의 김광석, 그리고 대학 1학년 초창기까지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 위주로 듣던 나의 음악적 관심사는 1학년 가을 이 곡을 계기로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넓어졌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일렉트로닉 음악이란 너무 시끄럽고 지나치게 ‘흔한’ 음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음악이란 독창적이어서 새로운 영감을 주던가, 아니면 일상에 지친 사람의 심신을 위로하고 삶을 노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클럽 등에서 사람들이 춤추기 좋도록 빠른 비트와 단순한 멜로디로 대표되는 일렉트로닉 장르란 마치 돈을 벌기 위해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양산되는 ‘상업성’과 ‘대중성’에 물든 하나의 타락한 음악 장르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1년 Daft Punk 그룹이 해체되었다는 인터넷 뉴스 신문 기사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도대체 어떤 그룹이었길래 이 외국 그룹의 해체 소식이 이슈가 되었는가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조사가 결국 Daft Punk의 창의적인 음악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Daft Punk의 음악이 나에게 크게 충격을 준 부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들의 탁월한 샘플링 실력이었고, 둘째는 그들의 음악 세계에는 반드시 사람들을 댄스 플로어로 이끌어내는 아주 신나는 ‘광란’의 분위기, 즉 내가 격렬하게 거부했던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곡들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전에 발표된 곡들에서 일부분의 사운드만을 가져와서 이들을 재배열, 변조하거나 여러 음향적 장치를 통해 완전히 색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구성하는 그들의 샘플링 실력은 일렉트로닉 음악이란 전혀 예술적인 음악이 아니라는 나의 기존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Discovery 앨범의 모든 곡이 이 기막힌 샘플링을 통해 만들어진 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로부터 몇 주 동안에 걸쳐 이 앨범의 모든 곡을 듣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Face to Face〉의 기가 막힌 샘플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일 앨범의 〈Something About Us〉나 〈Voyager〉와 같은 곡들은 일렉트로닉 음악에는 사람들이 춤을 추도록 하는 EDM 외에도 여러 방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대표적인 곡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곡들을 차치하고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진가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던 〈Veridis Quo〉야말로 앨범에서 가장 훌륭한 곡이었다. 처음에는 곡의 제목에 대한 의미에 대한 고찰보다는 EDM에서 고음역이 Filter-out된 전자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어간 것이 흥미로웠기에 듣기 시작했고, 대학 시험의 높은 중압감 중에도 특유의 두근거리는 듯한 킥(Kick) 소리가 마음에 들었기에 자주 들었던 곡이었지만 채널 예스에서 소설가 김연수의 칼럼13Ibid.을 보게 된 것이 이 곡을 인생 사운드트랙에 포함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해당 칼럼에서 〈Veridis Quo〉란 기독교에서 라틴어로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에 대한 말장난이며, 또한 ‘Discovery’, 혹은 ‘Very Disco’에 대한 말장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이 곡에 해당하는 뮤직 비디오를 다시 감상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뮤직 비디오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들이 한 성 안에 도착해서 자신들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단순한 장면이 아니고 ‘Quo Vadis’에 상응하는 장면임을 깨달았을 때, 어쩌면 일렉트로닉 음악도 종종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지기도 하는 삶을 담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포크 음악과 같이 비교적 잔잔하거나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에서야만 이러한 삶에 대한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Veridis Quo〉 는 따라서 하나의 충격이었음은 물론, 듣기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음악에 대한 통념을 뒤엎은 하나의 혁신과 다름없었다. 이 곡이 인생 사운드트랙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분명 그것은 지금 내가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의 중요한 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III.6. J.E.B. – Cho by Yongpil (feat. Cho Yongpil) (2015)

J.E.B. – Cho by Yongpil (feat. Cho Yongpil) (2015)
III.6.1. 곡 소개

DJ 겸 프로듀서인 Johann Electric Bach(aka. J.E.B)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능청스럽게 하나로 빚어내는 ‘매쉬업(Mashup)’ 전문 일렉트로닉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강진구14강진구. “미국 팝과 송해가 만났다? 요즘 뜨는 DJ J.E.B”.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6301210393242?did=kk. 1 Jul 2019. Accessed on 25 Apr 2024.가 평가했듯, 그가 두 곡을 하나로 이어붙인 작품을 듣고 나면 원곡들이 오히려 심심하게 들릴 정도라 그에게는 ‘원곡 파괴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마추어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가 대중에게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은 ‘전국 노래자랑’ 오프닝 사운드와 Fitz and The Tantrums의 곡 ‘Handclap’을 절묘하게 섞은 〈전국 Handclap 자랑〉이라는 곡을 통해서였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곡은 당연히 바로 이 곡이지만, 그가 2015년에 발매한 앨범 《Sitze Paris》에 수록된 이 곡, 〈Cho by Yongpil〉은 그 곡의 내막을 알고 들었을 때 그 음악적 가치를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는 하나의 걸작이라 할만하다.

이 곡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조용필의 〈모나리자〉와 Daft Punk의 〈Giorgio by Moroder〉를 절묘하게 섞은 매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원곡은Daft Punk가 4집 《Random Access Memories》에서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Georgeo Moroder)가 고백한 그의 어린 시절 음악에 얽힌 추억들을 나레이션으로 두면서도 클래식에서부터 재즈, 라틴 그리고 락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음악의 장르들로 선율의 스타일을 계속 바꾸어나가며 그의 음악적 기여를 추대하는 작품인데, 이 곡은 조르지오 모로더의 자리를 명실상부한 한국 대중음악의 대부 조용필로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음은 물론,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모나리자〉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프트 펑크의 곡이 섞였을 때 탄생하는 파괴적인 신선함으로 듣는 이를 압도하는 곡이다. 훌륭히 다프트 펑크의 음악적 의도를 담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적인 정서를 성공적으로 가미하여 원곡보다 더 풍부한 사운드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곡에서 원곡 〈Giorgio by Moroder〉의 나레이션 독백이 끝난 직후의 브레이크 다음, 원래 들어와야 할 것 같은 A단조의 루프 멜로디 대신 〈모나리자〉의 멜로디가 들어오는 부분이 생각 외로 잘 어울린다는 수준을 넘어 거의 원곡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III.6.2. 곡의 선정 이유와 감상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트로트를 자주 들어왔던 나에게 조용필의 곡 ‘모나리자’는 익숙한 곡이었다. 물론 김광석과 같이 더 잔잔한 곡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딱히 직접 즐겨 듣는 곡은 아니었지만, 가끔 라디오나 길거리 상점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때 친숙함을 느끼는 곡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나 친숙했던 곡이었던 만큼 조용필의 이 곡이 Daft Punk의 〈Giorgio by Moroder〉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따라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곡과 매쉬업된 결과물인 J.E.B의 이 곡 〈Cho by Yongpil〉은 음악적으로 하나의 충격이었다. 이미 이전에 J.E.B를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격 작품 〈전국 Handclap 자랑〉을 들어본 적도 있었지만,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한국적이지 않을 것 같은 정서와 혼합하는 그의 솜씨에서 예술성을 발견하게 해 준 것은 바로 이 곡이었다.

곡을 들었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모나리자〉의 시그니처나 다름 없는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 부분이 A단조의 기본 선율을 위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다프트 펑크의 사운드와 동시에 등장하는 약 1분 50초 경의 부분이었다. 이 매쉬업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사운드를 국외의 여러 사운드와 성공적으로 혼합하는 수준을 넘어 두 곡의 ‘정서’ 혹은 ‘주제’까지 성공적으로 혼합하는 메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전국 Handclap 자랑〉이나 〈Pierre Cardin〉, 〈Sae-maul Undo〉 그리고 〈Gukmin Erase〉와 같은 곡들에서는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두 곡의 주요한 선율들과 전개를 탁월하게 이어붙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이 곡에서는 전설적인 음악가와 그의 음악 세계를 되돌아보고 추모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사운드’를 어울리도록 혼합하는 것을 통해 더 극대화하는데 성공한 듯 했다.

Daft Punk의 음악이 나에게 일렉트로닉 음악의 예술성을 증명했다면, J.E.B의 음악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통일성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샘플링이나 매쉬업 기법은 단순히 ‘어울릴 수 있는’ 두 사운드를 잘 섞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음악이더라도 그 속에서 공통된 우리 삶의 정서나 메시지를 공통적으로 추출,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그들을 원곡이 보여주는 것보다도 더 극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J.E.B의 음악이 비록 오늘날 대중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으나, 그의 음악이 내가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Cho by Yongpil〉은 인생 사운드트랙에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한다.


IV. 맺음말

고등학교 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김광석의 음악부터, 대학 입학 이후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거쳐 Daft Punk와 J.E.B의 일렉트로닉 음악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내 삶의 각 장면에는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음악은 인간의 영혼에 가장 가까운 예술이다”라고 말할 때 그 진의는 내 삶과 음악이 동시공간속에 자리하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음악은 감정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각종 상황과 대립들을 혁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가치를 확립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들으면 처음으로 독립의 진의를 체감하던 대학 1학년 힘겨운 홀로서기의 여정을 회상하며 선율에 빠져들듯,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마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에는 음악이 개인의 경험 또는 삶을 효과적으로 대입할 수 있도록 탁월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때로는 새로운 사운드로 신선함까지 가져준다는 사실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음악은 사랑을 전달해주는 매개체이다, 감정에 대한 표현이다라는 말은 음악의 한 속성은 정확히 포착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삶과 음악이 가지는 관계를 조망하는 표현은 아니다. 따라서 음악이란 무엇이어야 하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여전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음악은 혁신이거나, 표현이어야 한다.”

주석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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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김동하. op.ci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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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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