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8. 2024. 3. 17. ~ 2024. 7. 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일상 속에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짧게 노트에 휘갈긴 것을 그대로 옮겨두는 공간입니다.
#0.
“수필 쓰기를 계속하며”
- 기존에 써 오던 공책은 종이의 재질이 만년필의 필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오늘 고향에 잠깐 갔다가 올라오는 김에 새로운 공책을 사서 여기로 옮겨 계속하기로 하였다.
- 잉크는 마르지 않아야 하고, 글도 마르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 만년필과 한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주기적으로 쓰고 표현하고 흐르게 하지 않으면 굳어서 어딘가가 막혀버린다는 점일 것이다.
#1.
지난 주말 동안 잠시 본가에 내려갔다가 왔다. 통상 월말에 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금 학기의 경우 과목 하나가 시험을 세 번에 나누어 치는지라 4월 첫 주에 중간고사가 있게 되어, 3월 마지막 주에는 내려가는 것이 조금 그러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대면으로 보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카카오톡이나 영상 통화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도 있고, 나아가 서로의 목소리만이 아닌 모습과 표정까지도 볼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전파가 실어 담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오는 유대감, 그것 외에도 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기술이 제 아무리 발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담지 못하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그 직감이다.
개강하고 어느덧 3주차로 접어 들고 있다. 이제 월요일이 되었고 나는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서울에서의 대학의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어머니와의 시간을 보냈던 지난 이틀 동안 나는 이제 자식들을 모두 서울로 올려보내고 제2의 삶을 사시게 된 어머니의 곁에서 걷기도 하고 눕기도 했고, 또 말하기도 했고 함께 남해로 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반백에 가까워지고 계셨고, 젊을 때 그 모습이 조금씩 남아있긴 하더라도 자식들 뒷바라지 하신 세월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작고 노을이 바로 잘 보이는 바닷가의 카페에서 나는 어머니와 동생부터 세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어머니가 겪으신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대화와는 별개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연로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그 기억 그대로 그곳에 계셨고, 여전히 나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시면서 거기 계시는 어머니셨다.
대학 4학년이 된 지금 나는 어머니를 추억해본다. 몇 시간 전 손을 흔들며 헤어졌지만 그래도 곁에 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함이 야속하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는 법이고, 우리 모두는 따라서 나이드는 법이지 않던가.
#2.
줄곧 4시간에 걸쳐 〈이산수학〉을 풀고 정리한 뒤에 여기에 다시 글을 쓰려 하니 손이 상당히 아프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는 선 안에서라면, 즉 나의 손이 잠시의 수고를 이기지 못하고서 바스라져 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만족한다. 스스로가 학문의 최전선을 향한 여정에 제대로 동참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러한 신호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내가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학문의 경계는 넓고 또한 깊어서, 마치 대항해시대 때 미지의 대륙과 사람들을 마주하던 항해사들과 선원들처럼 나 또한 매 순간마다 새로운 학문의 이론 · 논증 그리고 주장들을 만나기에 하루 종일 공부에 시간을 쏟는다고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사실이었다.
신대륙의 말과 풍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시대의 탐험가들처럼, 대학에서 다양한 학문 세계를 탐험하는 나 역시 새롭게 만나는 모든 것을 곧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채우려고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물음표는 감자 한 덩이를 꺼내면 연결된 다른 알맹이들이 줄줄이 끌려 올라오듯이 새로운 의문과 미지의 세계로의 문이 수없이 따라나오기에, 모든 것을 한정된 시간 안에는 이해할 수 없는 24시간 속의 나라는 운명상, 어디까지 이해하려고 시도할지 매번 계획하고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시간을 핑계로 그저 넘기기에는 욕심이 많은 나로서는 전혀 만족스러운 행위가 아닌지라, 나는 대체로 배운 것을 당일에 최대한으로, 가급적이면 강의 내용에서 더 나아가 교재와 다른 문헌들에서 얻는 종합 정보들까지 참고하여 정리하고자 하는 강력한 추동에 시달린다. 그러나 시간은 늘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오늘처럼 교수에게 긴 질의도 하며 때론 그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교수가 곧바로는 답변하지 못하는 질문도 던지며 어떻게든 무지와 이해되지 않음의 영역에서 가능한 빠르고 또한 정확하게, 내가 아는 이론과 논리의 형식체계의 세계로 대상들을 환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장시간의, 그리고 꾸준한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당연히 때때로 힘들고 피로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난 학기의 경험에서 이처럼 학문하는 특유의 〈명민함〉을 유지하지 않을 때 내가 얼마나 시체에 가까워지는지 알게 되었다. 피곤하면 1시간 정도 눈을 붙이는 등 잠시 쉬어갈 수는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이리저리 시도해보고 생각해보는 학문함의 정신을 나는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금일은 무언가 학문함에 쫓기지는 않았던가 되돌아보게 되는 하루가 아닐까 싶다.
새벽에는 기숙사 룸메이트 24학번과 함께 짧은 게임을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점심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는 이제 어느새 스물이 되어 대학의 새내기 생활을 스스로 감내하게 된 동생과 여의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한강 공원을 거닐었는데, 이틀 전의 비구름과 빗줄기로 우중충했던 하늘과는 달리, 날도 풀리고 기분 좋게 청천이 펼쳐져 있었다. 동생은 서울에서만 4년 가까이 지낸 내가 이렇게 바깥도 좀 돌아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대학은 학문하기 위하여 온 것이지 놀러 온 것이 아니라고 답하는 것으로 일갈했지만, 실은 이번 학기에 약간의 여유를 주면서라도 내가 찾고자 했던 그것, 내가 학문함을 논하며 앞으로 브레이크 고장난 기차마냥 돌진하는 와중에 내가 잃어버렸기에 뭔가 허전하다 싶었던 것이 그런 함께 하는 시간, ‘일상 아닌 일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며칠 전부터 피곤하다는 핑계, 니체와 또 목을 뼜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복습을 게을리 했던 터라, 그리고 학문에서의 완벽, 가장 밑바닥부터의 이해를 선호하는 나 자신의 특성상 그런 “빠뜨린 것”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학문적 이상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솔직히 고하건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한 철학으로써 여전히 의문이 남기는 한다. 그러나 같이 대학에 올라왔던 친구들은 이제 하나 둘 군대 혹은 자신의 다른 진로로 향하기 시작하고, 수업을 혼자 듣고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일상들이 반복되는 오늘날, 분명 동생과의 대략 6시간의 시간 보냄과 함께 공간을 나누었다는 사실로부터 일종의 안도감이나 편안함이 온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며칠 사이의 일들로 복습할 것들은 밀렸고, 내가 추가로 채워나가기를 원하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은 분명 〈이산수학〉의 시험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라도 결코 후회막심한 것이 된다기보다는, 어쩌면 미묘하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내게 알려준 시절로 추억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4.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가 심히 걱정스럽다.
조국 전 수석이 이끄는 〈조국혁신당〉이 제3지대의 강자로 떠올라서 양당 구조의 오랜 폐습을 흔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주장이 너무 급진적이며, 타자를 악마화하는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모두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마치 의대 증원을 둘러싼 현 정부와 의사 단체들의 갈등처럼, 양측은 모두 타협할 줄을 몰라 연신 최후통첩을 날려댄다. 그러나 모든 피해는 일반 국민들이 본다. 갈등은 조정되어야 할 본질의 사안이며 정치의 존재 의의는 바로 그것, 모두가 설령 만족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표성 있는 이들이 위임받은 의사권으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정치임에도 계속 자신들의 당의 기득권, 의석을 유지시키겠다는 그 더러운 목표 덕에 국민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기보다는 강성 지지층들의 극단적인 주장들만이 서로를 죽일 듯 대립하는 오늘, 중간이 없는 오늘 덕에 표류하는 나라에 내가 있다.
얼마 전 스물이 지난 청년으로서 걱정되는 것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연금 개혁은 대안이랍시고 여러 안들이 나왔지만 그냥 그것들은 호흡기를 잠깐 붙인 것이지, 인구 감소라는 고정된 상수 앞에서 근본적인 대책도 아니다. 모두의 눈치를 보고, 정권과 양당은 자신들의 세력을 지키느라 옹졸하게 있는 끝에 결국 오늘의 우리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유권자들이 극단에 너무 치우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다. 정치 견해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나 확증 편향에 쉽게 빠진다. 그러나 대학에서 내가 알게 되는바 ― 세상은 너무나 넓고 우리 자신은 너무 작은 존재여서, 내가 몇 해를 이 세계에서 보냈든 내가 사회적 지위가 어떻고 또 소득이 어떻든, 전문가이든 아니든 여전히 내가 모르는 무지의 바다는 줄어들 생각도 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법이다. 우매함의 봉우리에 대중이 올라서 확신하기 시작할 때, 나 자신 외의 답은 없다는 그 안일하고도 부실한 유일성에 매달릴 때 사회는 공멸하는 것임을 나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결국 유권자가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사회도, 정치도, 그리고 난파선도.
#5.
“꽤 오랜만에 다시 쓴다!”
거의 3개월만에 다시 본가로 내려오는 버스. 4시간 동안의 사색이 은근히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준 것 같다. 바로 그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좀 나은 것 같다.
사색의 시간 동안 나는 두 가지를 새로 배웠고 두 가지 주요한 질문에 대하여 숙고했다. 새로 배운 두 가지야 TLS의 3-way handshaking 그리고 RSA 알고리즘의 기본 원리이므로 이만 줄이도록 하고, 여기서는 내가 오랜 시간 생각한 질문들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질문은 두 가지. 전자는 금일 오후 블로그에 짧게 휘갈긴 본질적인 의심에 관한 것이었다. 즉 ― 대학 신입 때부터 고집해온 그 완벽함, ‘자기 자신에 대한 극복’, 세상 탓 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기라는 그 가치추구가 사실은 나 자신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바로 그 의심. 사실 이 의문이란 얼마 전 독서회에서 읽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에서 싹튼 것이었고, 그 책에서 제시된 독일 교육 시스템의 긍정적 면들을 통해 어쩌면 고등학교에서 처절하게 체험했던 그 ‘살인적 경쟁 원리’로부터 그렇게 벗어나고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에서도 여전히 그 영향력에 지배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이른바 철학적 〈소외〉에 생각이 이른 것이었다.
나는 바로 독일 교육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다. 모든 정보 출처가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여튼 독일 교육 제도에 대한 주독일한국교육원의 설명이나 독일 유학 ·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글에 의하면 김누리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독일 · 유럽의 교육이 이른바 〈유토피아〉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 보인다. 독일 교육도 대학 진학을 위한 중 · 고등학교라 할 수 있는 김나지움에서의 경쟁이 치열하고,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교사가 학생의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하게 된다는 비판, 그리고 독일 교육은 ‘집안 계층 그대로 따라가는 교육’에 가깝다는 ― 즉 사회 계층 이동 기회가 보다 부족한 시스템이라는 단점이 있음을 (내가 찾아본 정보가 모두 옳다는 가정 아래)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독일 교육의 난점에도 불구하고 경쟁 스트레스가 적은 시험과 입시 · 교육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정성〉이라는 그 빌어먹을 기준 하에서 정해진 지식을 누가 잘 달달 외우고 거의 있는 그대로 정확히 되풀이하는지를 대학까지 쭉 묻어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정해진 주제에 대한 평가와 자신의 식견을 개진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도 납득할 만한 공정성을 갖는 평가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과가 아닌 원리를, 모두를 위한 교육을 중시하는 독일 교육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국민 정신건강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의 계속 반복되는 무기력증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많게는 거의 기여하는 외부적 요인의 정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즉, 결국 나 자신조차도 어쩌면 당초의 의심대로 우리 사회 전체의 광신적 이데올로기인 〈경쟁을 통한 쟁취와 그 정당성〉에 심히, 교육 시스템에서 중독되어, 즉 매 학기마다 교수들이 미친 듯이 쏴 대는 지식들을 (나 자신은 일일이 재검하면서 최대한 비판적으로 수용하려고 애쓴 것 같기는 하지만) 달달이 외우고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 뱉어내야 두 번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그 숨겨진, 그러나 ‘오염된’ 욕망에 휩싸였기에 정적 나 자신이 멈추어 생각할 시간, 사색할 시간 없이 엄청난 외우기에 시달리다가 지친 나머지 별 생각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상이나 게임으로 그 열받음을 풀어내면서 생각이 죽어버린 끝에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애초부터 자기주도학습이라 말하지만 ‘자기주도’에 어울릴 리 없는 가장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 인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정작 대학원에서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요구하는 이 모순적인 시스템에 내가 너무 극심히 시달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대학의 문을 들어오던 당시의 나는 분명 니체의 ‘경쟁’ 긍정을 마음의 어느 한 켠에서는 ‘건강한 경쟁’으로 분명히 이해한 모양이지만, 그로부터 스스로를 좀먹어온 내면의 〈착취자〉를 발견하고 추방하는 것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학기의 교육에 숨이 막혀 ‘야만적인 경쟁’으로 그 사상 인식이 비틀렸던 것은 아닐까.
이 즈음 되어 나는 사색함, 독서함이 그 구체적 방법이자 독일 교육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철학〉적 교육 ·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낮에 내가 수정한 독서 모임 ―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의 계보〉 모임 계획서 서문에 삽입한 새 문단의 다음 문구: 「철학은 ‘성역 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일상적인 것들을 다시 한 번 낯설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참으로 옳은 것이다. 체계 속의 인간은 그 체계의 기형성을 온전히 ·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낯설게 만나는 일상’ 즉 철학의 결여, 내면 성찰의 결여, 다른 생각의 결여, 다양성과 풍부한 논의와 사고의 결여가 내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고, 4시간의 사색 끝에 그 숨통이 마침내 트인 것이다. 철학이 없어졌다는 사실, 내가 〈철학함〉, 그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무기력에 빠진 지난 수 개월 동안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직 3회의 학기와 끔찍한 교육 시스템이 남아 있고, 그 시스템에 순종하는 것이 장학회와 기숙사라는 상당히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순종은 다시 한 번 나 자신의 정신을 마비시킬 우려, 즉 체제의 〈부조리〉를 향한 불꽃과 그 시야를 다시 한 번 나에게서 앗아갈 위험이 있다. 교육의 ‘사회화’라는 폭력의 잠식성은 실로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다. 정답이야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저항책을 갈구하지 않을 수 없다. 회색빛이 아닌 실로 진정한, 내가 처음에 이해하고 실천하려 했던 그 〈니체〉의 건강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신을 유지할 그리하여 물러서지 않을 바로 그 방책을 나는 다시 한 번 절실히 찾아내지 않아서는 안 된다.
정신적 자살로의 위기는 지금까지로 족하다. 이제는 다가오는 마수가 내 영혼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뒤틀린 교육에 어떻게 항거하면서도 최대한 나의 피해를 줄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