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의 숲

2025-03-27 0 By 커피사유

조금 전, 대략 6년 전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들을 톺아보러 올라온(또는, ‘끌려온’) 경남과학고등학교 학생들과 대면하고 왔다. 그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15분 남짓으로 길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설 수 있게 된 것에는 총 5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나는 알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씁쓸했다. 5 ~ 6년이 지나서 그렇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1사회를 보던 선생님이 내가 있던 당시 새로 들어오신 물리 선생님이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연단에 도열했던2나는 이 표현을 끔찍하리만치 싫어하지만 이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학생들은 대부분 새내기거나 이제 막 2년차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나는 마치 아스라이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공간에서 혼자 외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각오하고 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니까 내가 대학을 졸업할 시기에 진입함과 동시에 고등학교도 이제 낯설어질 시기에 진입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머무르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은 수가 학교를 떠났고, 친구들3유감스럽게도 고등학교 당시 그들에 대해 나는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말 그다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터지게 경쟁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때려 쓰러뜨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질서, 그것이 고등학교였다는 저 메스꺼운 사실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도 자신만의 길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기억 속의 고등학교는 이제 없다. 그것은 이제 내 오래된 과거,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새겨져 있는 저 상처들에만 끈적하게 달라붙어 흘러내리고 있다.

나는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의 선율 속에서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덮은 《노르웨이의 숲》을 생각한다. 나오코가 숲에서 스스로 목을 맨 뒤 레이코 씨와 ‘나’가 쓸쓸했던 그녀의 장례식을 잊기 위해, 그러나 그녀만큼은 잊지 않고 추억하기 위해 연주했던 수많은 곡들을 생각한다. 「디어 하트」에서 시작해서 「풀 온 더 힐(The Fool on the Hill)」, 「앤드 아이 러브 허(And I Love Her)」와 중심을 잡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를 거쳐, 「비에 젖어도(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뒤에 이어진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바흐의 푸가에 이르기까지를. 나는 이 모든 곡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절실히 느낀다. 레이코 씨와 ‘나’가 공유하게 된 저 공허, 한때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갔기에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으로 남게 된 마음 속의 어떤 이름 모를 곳. 이 소설이 한 때 불렸던 이름대로 나는 《상실의 시대》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체험하고 있다.

나오코는 죽었다. 고등학교도 죽었다. 나는 오늘 직면한 이 두 개의 〈죽음〉을 곱씹어본다. 나오코와 함께 내가 겪었던, 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등학교의 기억들도 떠났다. 차가운 계곡에서 돌풍이 휭 불어오고 무성하게 뻗어버린 나뭇가지와 잎들에 가려 햇살도 거의 들어오지도 못하는 저 숲 한가운데 걸린 저 밧줄, 그것 뒤로 나는 세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본다. 더는 외롭지 않기를 그리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던 나, 가정이 영원히 평안했기를 바랐던 나, 그리고 마침내 나오코 이 셋이 검고도 굵직굵직하게 그어진 단절 사이로 희끗하게 보이는, 결국 저물어가는 태양으로 붉게 달아오른 지평선을 뒤로 하고서 서 있음을 본다. 나는 손을 뻗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저 형체들을 붙잡으려 시도해본다. 하지만 속절없이 그것들은 사라진다. 그래, 이제 이 세상에는 나오코가, 고등학교의 나 자신이 없다. 그것은 오직 기억 속 단편으로만 숨쉬면서 가끔씩 바람이 불 때 저것들이 떠나면서 남겨버린 자리를 다시금 보여줄 뿐이다.

《노르웨이의 숲》이 그 종결점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난 4년의 대학 생활. 나는 이 시간들을, 그 도중에 만난 모든 〈죽음〉들을 이제는 조용히 받아들일 작별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안다. 레이코 씨와는 달리 기타를 잘 치지 못하는 나는 펜을 들어 나만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쓴다. 이것은 모두 숲의 이야기.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내가 줄곧 방황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숲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별하고자 하는 저 숲의 이름은 《고등학교의 숲》이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기억은 어김없이 멀어져 가고, 벌써 나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문장을 쓰다 보면 때때로 격한 불안에 빠지고 만다. 불현듯, 혹시 내가 가장 중요한 기억의 한 부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몸속 어딘가에 기억의 변경이라 할 만한 어두운 장소가 있어 소중한 기억이 모두 거기에 쌓여 부드러운 진흙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지금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이미 희미해져 버린, 그리고 지금도 희미해져 가는 불완전한 기억들을 꼬옥 가슴에 품은 채 뼈라도 씹는 기분으로 나는 이 글을 쓴다. 나오코와 나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젊고 그 기억이 더욱 선명했을 때, 나는 몇 번이나 나오코에 대해 글을 쓰려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처음 한 줄이라도 나와만 준다면 그다음에는 물 흐르듯 쓰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 한 줄이 아무리 애써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도 선명해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지나치게 자세한 지도가 자세함이 지나치다는 그 이유 때문에 때로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결국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생각뿐이다. 그리고 나오코에 대한 기억이 내 속에서 희미해질수록 나는 더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민음사. 2024. pp. 23-24.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 19a). London Symphony Orchestra, 1986.

주석 및 참고문헌

  • 1
    사회를 보던 선생님이 내가 있던 당시 새로 들어오신 물리 선생님이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 2
    나는 이 표현을 끔찍하리만치 싫어하지만 이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 3
    유감스럽게도 고등학교 당시 그들에 대해 나는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말 그다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터지게 경쟁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때려 쓰러뜨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질서, 그것이 고등학교였다는 저 메스꺼운 사실을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