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상스(Jouissance)

2025-03-30 0 By 커피사유

나는 그녀가 비 오는 날 아침에 노란 비옷을 입고 새장을 청소하고 모이 봉지를 나르는 정경을 떠올렸다. 반쯤 무너진 생일 케이크와 그날 밤 나의 셔츠를 적셨던 나오코의 눈물 감촉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날 밤도 비가 내렸다. 겨울에 그녀는 캐멀색 오버코트를 입고 내 곁을 걸었다. 그녀는 늘 머리핀을 꽂고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맑고 투명한 눈으로 늘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파란 가운을 입고 소파 위에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턱을 올렸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가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와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 갔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죽은 자와 함께 살았다. 거기에서는 나오코가 살아서 나와 말을 나누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했다. 그 장소에서는 죽음이 삶을 정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거기에서는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는 죽음을 머금은 채 거기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냥 죽음이야. 마음에 두지 마.” 하고.

그곳에서 나는 슬픔이란 걸 느끼지 못했다. 죽음은 죽음이고 나오코는 나오코였기 때문이다. 괜찮다니까, 나 여기 있잖아? 나오코는 수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처럼 자그만 몸짓이 내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죽음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맞아, 죽는다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야, 하고 나오코는 말했다. 죽음이란 건 그냥 죽음일 뿐이야. 게다가 나 여기 있으니까 아주 편안해. 어두움 파도 소리 사이로 나오코는 말했다.

그러나 이윽고 물이 빠져나가고 나는 혼자 백사장에 남았다. 나는 무력하고 어디 갈 곳도 없었다. 슬픔이 깊은 어둠이 되어 나를 감쌌다. 그런 때, 나는 혼자 울었다. 우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마치 땀처럼 저절로 뚝뚝 떨어졌다.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체념하듯 몸에 익혔다. 또는 체념했다고 믿었다. 그건 바로 이런 것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오로지 홀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하루 그것만 붙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위스키 몇 병을 비우고 빵을 씹고 수통의 물을 마시고 머리카락에 모래를 묻히며 배낭을 맨 채 초가을 해안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민음사. 2024. pp. 528-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