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이야기의 종말
쇼츠와 ‘사상-계’1이하의 글에서 밑줄은 원문 중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그어둔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유튜브 콘텐츠 형식으로서 ‘쇼츠’라는 현상으로 압축된다. 쇼츠 세계는 0과 1만이 존재하는 디지털 정보성의 실체가 극적으로 드러난 모호로비치 불연속면(Mohorovičić 不連續面)이다. 상품사회와 현대적 미디어가 야기한 사물-세계 상실, 이야기성의 상실이 드디어 여기에서 완전히 끝나고 완성된다. 쇼츠가 공간상의 거리 소거를 넘어 시간성을 삭제하기 때문이다. 쇼츠는 이야기의 압축이 아니라 이야기의 휘발이다. 극단적으로 평평해진 이 2차원 디지털 정보 면에는 정보의 잉여는 물론이거니와 결핍도 없다. 쇼츠를 시간적으로 짧다거나 공간적으로 압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순간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앞뒤의 시간이 없다. ‘지속’이 없다(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순간을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에드문트 후설에 의하면 시간은 ‘시간의식’이다. 시간으로서의 순간은 현재에 과거를 다시 당기고(retention), 미래를 미리 당기면서(pretention) 순간을 통합적 현재로 구성한다. 구성된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통합-공속하면서 시간이 된다. 통합-공속적(共屬的) 시간이 바로 의식-인식이다. 의식-인식은 일종에 이야기성이다. 맥락을 구성하는 앞뒤가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현재 누구인지, 내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의식하는 정체성을 구성한다. 나-사물-세계의 연관성을 의식하는 이 시간적 맥락성, 경험의 지속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지성의 본질이다.
그러나 쇼츠의 순간에는 앞뒤가 없다. 의식을 구성하지도 못하며, 경험을 구성하지도 못하며 맥락을 구성하지도 못한다. 쇼츠의 순간에는 어떠한 이야기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역설적으로 이미지의 이 과격한 절단면은 이러한 과격성으로 인해 언제나 삭제하고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무한 돌려보기가 가능하다. 이 돌려보기는 경험이라는 ‘지속’과는 무관하다. 지속의 경험은 과거의 추체험이 현재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창조적 구성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경험은 매번 달리 지속되는 새로움을 보유한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의식이 경험한다는 것은 유일한 사물-세계를 매번 다르게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갱신을 통해 새롭게 의식되고 구성되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0대에 읽었던 『어린 왕자』의 의미를 20대와 30대와 40대의 나는 다르게 경험하고 다르게 의미화할 수 있다. 이 의미화가 곧 사물-세계의 이야기성이다. 이야기성은 ‘스토리’의 무한반복이 아니라 의미의 갱신을 통한 주체의 성장이, 의식의 성장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삶의 개방성과 사물-세계의 무한성을 뜻한다. 해석의 무한성, 삶의 신비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 (후략) …
함돈균, 「이야기의 끝과 새로운 ‘사상-계’」, 《사상계》 창간 72주년 특별기념호(2025년 봄). pp. 95-96.
주석
저자가 앞쪽 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이야기의 중요한 특성들에는 ‘무기원성’, ‘무확정성’ 그리고 ‘미지성’이 있다. ‘시간’은 세 특성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자신의 맥락에 맞게 이야기를 말하고 편집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재정립했기에 (즉,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야기’했기에) 이야기는 기원을 명확하게 찾기 어렵고 그 의미를 명쾌하게 자를 수도 없으며 알지도 못하기에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은 계속해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간극의 저편으로 건너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곱씹어볼 수조차 없게, 길어야 1 ~ 2분의 시간 안에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끝나버리는 장면들은 이야기의 핵심에 부합하지 않는다. 글쓴이의 지적대로 문제는 ‘지속의 경험’에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부분들에 주목하며 사물과 주체의 관계를 다르게 배치해보는 것이 이야기 속에서의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핵심이다. 주체와 의식의 성장은, 한 인간의 성장은 결국 끊임없는 다시-덩이짓기, 다시-배치하기로써 일어나기에 ‘쇼츠’는 이야기가 아닌 그것의 종말이다.
주석 및 참고문헌
- 1이하의 글에서 밑줄은 원문 중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그어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