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서 꾸미고, 애써 자격이 있다 생각하기
소비는 내가 현재 대도시의 왕성한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나 역시 그 신진대사에 속해 있다는 느낌. 그리하여 뭔가 지불할 때, 나는 더 잘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언론사 시험에 몇 번 떨어졌다. 공중파 방송국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는데 오래 공부할 용기가 안 나 재빨리 외국계 제약회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직장에 다닌 지 3년. 많은 돈을 모으진 못했지만 얼굴은 예전보다 맑아졌다. 그건 단순히 깨끗한 피부가 아닌 그 사람의 환경, 영양 상태, 심리적 안정감, 여가, 자신감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드러나는 ‘총체적인 안색’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그런 낯빛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예인 혹은 명사들의 얼굴이 그랬다. 나는 그 빛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론 언짢아했다. 건강하기보다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인상을 받아서였다. 그래도 나는 내 또래 여자들의 유행과 문법을 잘 따라가는 편이었다. 입사한 뒤 은행에서 직장인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제일 먼저 방을 옮겼다. 서울 변두리에 자리한 그저 그런 원룸이었지만 그간 세를 산 집 중 가장 넓고 쾌적한 데였다. 처음에는 안도가 그다음엔 욕심이 찾아왔다. 정착의 느낌을 재생반복하기 위해 자꾸 이것저것을 사들이고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월급날에 대한 확신과 기대는 조금 더 예쁜 것, 조금 더 세련된 것, 조금 더 안전한 것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그러니까 딱 한 뼘만…… 9센티미터만큼이라도 삶의 질이 향상되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많은 물건 중 내게 ‘딱 맞는 한 뼘’은 없었다는 거다. 모든 건 늘 반 뼘 모자라거나 한 뼘 초과됐다. 본디 이 세계의 가격은 욕망의 크기와 딱 맞게 매겨지지 않았다는 듯. 아직 젊고, 벌 날이 많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나는 늘 한 뼘 더 초과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했다.
김애란, 〈큐티클〉.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pp. 213-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