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2025-06-29 0 By 커피사유

합숙소에 들어간 뒤 휴대전화를 압수당했어요. 그러곤 제가 아는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를 털어놔야 했지요. 조금 알건, 적당히 알건, 꽤 잘 알건, 모르면 조사해서라도 파일을 만들어야 했어요. 그 사람 나이, 성별, 거주지는 물론 학력, 콤플렉스, 종교, 건강 상태, 군필 여부, 타지 생활 경험 유무에 이르기까지요.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지만 인정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거기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을 그냥 저도 따르고 싶었거든요. 저처럼 머리 굵은 아가씨도 그랬는데, 이제 갓 스물, 스물하나 된 친구들은 오죽했겠어요. 특히 제가 있었던 곳은요, 언니. 사당에서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꽤 오랫동안 방치돼 슬럼가처럼 흉흉해진 동네였어요. 거기서 저처럼 공동생활을 하며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는 젊은이들이 꽤 많았어요. 처음엔 저도 한 5백? 아니 천 명쯤 돼나? 싶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만 명 가까이 된다 하더라고요. 전국 단위도 아니고 단지 그 동네에 있는 애들만 꼽아봐도 말이에요. ‘칼밥’ 먹고 ‘칼잠’ 자고 최악의 환경에서 지내는 애들이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말쑥하니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 변신을 하고 나왔어요. 그러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우르르 파도처럼 한 도시로 쏟아져 나오는데 그 모습이 가위 장관을 이룰 정도였어요. 그쯤 되니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게 이상한 일일 리 없다’는 자기암시를 걸게 되더라고요.

… (중략) …

그런데, 그런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팔고 있는 게 물건이 아니었더라고요. 제가 팔고 있던 건 사람이었어요, 언니. 그런데도 저는 끝까지 그 일이 결국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려 애썼어요. 하부 판매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모든 판매원들에게 득이 되는 일. 그러니까 나 역시 그 순환에 기여하고 그 구조를 받쳐주면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커진다고 착각했던 거죠. 그리고 제가 그렇게 단순한 논리에 매료된 건, 피라미드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내가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거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요.

김애란, 〈서른〉.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pp. 304-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