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4
낙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쓰고 있는 글의 일부를 살짝 들추어보는 공간입니다.
약간의 서문
고등학교 친우들과 함께하고 있는 ‘날적이’ 독서 모임에서, 9월의 도서로 읽고 있는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1읽고 싶어지는 독자를 위해 부언해두자면, 정가 39,000원을 주고 살 정도의 책은 분명히 아니다. 반값 이하의 가격에 중고로 구해서 읽거나, 빌리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다.에 대해 오늘 쓴 독서 노트의 총평이 나쁘지 않게 완성된 것 같아서, 슬쩍 공개해두는 것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읽은 도서를 이전에 읽었던 도서와 연결짓는 시도가 미학적으로 꽤 괜찮은 결과를 낸 것 같다. 나중에 정식으로 ‘탐서일지’ 시리즈에 공개할 때는 조금 다듬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 맞다. 글의 제목을 만약 따로 붙인다고 한다면,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conscience”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쓰고 있는 글의 일부
의식은 단계적인 것이며, 데카르트가 말한 것과 같은 “여기까지가 무의식이며 여기부터 의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확실한 범위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만물에 의식이 있다”는 몽테뉴의 설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의식은 모든 것에 똑같은 정도로 들어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원자와 세포, 지렁이, 그 밖에 지구상에 있는 여러 존재의 신경계 의식 수준을 동일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첼로 마시미니 · 줄리오 토노니,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 한언, p. 250.
지난 독서 노트에서 나는 이 책이 의식의 유무/수준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 중 하나인 ‘정보 통합 이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전문가적 수준이 아닌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세 내용을 생략하고 가벼운 사고 실험, 조금 무리가 있는 비유들을 활용해 내용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추상화된 내용이 독자들로 하여금 자세한 이해를 불가하게 하기에 꼼꼼한 독자에게는 책이 답답하거나 불친절하게 읽힐 수 있을 여지가 있음도 그러했으며, 이런 읽는 이들을 위해서는 미주 · 각주로 보론이나 참고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책의 편의성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책이 목표한 가볍게 읽기를 원하는 독자는 물론 사려 깊은 독자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책의 나머지 절반을 읽은 뒤에도 이러한 총체적인 평론을 바꿀 여지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에서 제시된 내용이 표면적으로는 책의 제목과 배치된다는 점은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책의 말미가 제목과 완전히 무관한 잡담으로 빠진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상 · 피질계가 그러하듯 책은 불가분이며 상호가 긴밀하게 엮인 9개의 장들로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의 관심사인 의식이라는 문제에서 정신계와 물질계의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인용한 바와 같이 도서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시스템에 대해 ‘의식 수준’을 매긴다고 했을 때, ‘의식이 발발하는 어떤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즉 ‘의식은 단계적인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분명히 책의 제목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 의문문은 ‘의식은 어느 시점 / 수준에서 분명히 발생하기 때문에 의식 있음과 의식 없음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를 그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무의식이며 여기부터 의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확실한 범위는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이 믿음을 정면으로 파쇄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들은 이 표면적 모순을 비록 본문에서 강조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이 이율배반이 독자에게 있어 또 하나의 가치를 이 책에 부여할 여지를 열어둔다고 생각한다. 이 모순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 존재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함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책의 전반부에 등장한 여러 임상적 사례들, 이를테면 락드인(Locked-In) 증후군 환자 · 최소의식상태의 환자 등을 보고 짐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시적인 이 구절의 존재의 효과는 강력하다. 독자는 제목과 문장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이 간극이 왜 불편하게 느껴졌는지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그 숙고의 끝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봤다면 손쉽게 ‘의식’은 있다/없다의 문제로 기술할 수 없는 스펙트럼 상의 것임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편하게 이분법적 태도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익숙하게 느껴졌던 책의 제목이 실은 잘뭇되었음을 알게 된 우리는 평소의 질문들도 모조리 바꾸어야 함을 느낀다. “개에게는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세련되지 못하다. 대신 우리는 “개에게는 얼만큼의 의식이 있는가?”라거나 “개에게는 어느 수준의 의식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했던 것이다. 새로운 인식 위에서 변하는 것은 우리의 질문만은 아니다.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 변함에 따라 데카르트가 인간 외의 모든 것들에게 대해 내렸던 선고도 부당한 언도였음이 밝혀진다. 우리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한 다음의 구절을 되새겨본다. “인간은 소유자이자 주인인 반면, 동물은 자동인형, 움직이는 기계, 즉 Machina Animata에 불과하다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동물이 신음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소연이 아니라 작동 상태가 나쁜 장치의 삐걱거림에 불과한 것이다. […] 동물의 신음 소리는 이런 식으로 해석되어야만 하고 실험실에서 산 채로 조각나는 개 때문에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2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역. 민음사, 2018. p. 475. 전제(専制)가 무너진 공간 위에서 우리는 이 말들도 조각조각 비산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그 조각들이 가라앉은 공간에서 우리는 몇 페이지 뒤의 대목을 떠올려본다. 분명 밀란 쿤데라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 눈 앞에는 여전히 나무 둥치에 앉아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류의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테레자가 있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토리노의 눈 앞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 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바로 그런 니체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테레자는 죽을병에 걸린 개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쓰다듬는 테레자다. 나는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이들 두 사람은 인류,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행진을 계속하는 길로부터 벗어나 있다.”3밀란 쿤데라, op. cit., p. 478-479.
뇌과학적 · 생물학적 기둥이 시야에 들어옴에 따라 우리는 이 대목들이 그저 문학적 · 철학적 계보에 의해 뒷받침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어쩌면 우리에게도 니체의 ‘광기’, 그의 ‘인류’와의 결별,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부터의 결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가 암묵적으로 믿어왔던 우월성이라는 산봉우리에서 저 아래로 뛰어내린다. 솔직히 견디기 힘들다. 스스로에게 부여해왔던 가치, 그 믿음이 붕괴하는 순간은 처음으로 인류가 ‘창백한 푸른 점’을 마주한 순간과 마찬가지로 어지러움을 동반한다. 이제 책의 제목과 말미의 문장들 사이를 찢고 나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겠다. 그것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교훈, 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이었다.
주석 및 참고문헌
- 1읽고 싶어지는 독자를 위해 부언해두자면, 정가 39,000원을 주고 살 정도의 책은 분명히 아니다. 반값 이하의 가격에 중고로 구해서 읽거나, 빌리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 2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역. 민음사, 2018. p. 475.
- 3밀란 쿤데라, op. cit., p. 478-4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