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삶을 구원하는 경우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폴론적 문화의 저 정교한 건축물을, 말하자면 돌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해체함으로써 그것이 세워져 있는 토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경우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이 건축물의 합각머리 위에 서 있는 올림포스 신들의 장려한 모습이다.1(역주) 니체는 여기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멀리까지 빛나는 부조(浮彫)에 묘사되어 이 건축물의 돌림띠(Friese)를 장식하고 있다. 비록 아폴론은 이 신들 중의 하나로 존재하면서 다른 신들과 나란히 서 있을 뿐 최고의 지위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사실로 인해 우리는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폴론 속에 구체화된 그 충동이야말로 저 올림포스 세계 전체를 낳았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폴론을 올림포스 세계의 아버지로 간주해도 된다. 그처럼 찬란한 올림포스 신들의 사회가 비롯된 저 거대한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종교를 신봉하면서 이 올림포스 신들에게 다가가 이들에게서 윤리적인 고상함, 즉 성스러움, 비육체적인 정신화(Vergeistigung), 자비롭기 그지없는 사랑의 눈길을 찾는 자는 불쾌감과 환멸을 느끼면서 그들에게서 바로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금욕, 정신성 그리고 의무를 상기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서는 오직 거만하며 아니 승리감에 차 의기양양하기까지 한 존재만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을 뿐이며, 이 존재 속에서 모든 것은 그것이 선한지 악한지에 상관없이 신격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환상적인 삶의 충일(充溢) 앞에 충격을 받으면서 이렇게 자문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마법의 술을 마셨기에 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들은 그들이 어디로 눈길을 돌리든 그들 자신의 존재의 이상적인 모습인 헬레네가 ‘달콤한 관능 속에 떠돌면서’2(역주) 『파우스트』 제1부 2603행에 나오는 말.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모습을 볼 정도로 삶을 즐길 수 있었을까라고. 그러나 이미 그렇게 생각하면서 등을 돌린 이 관찰자에게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만 한다. “잠깐 멈춰서라. 여기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명랑하게 그대 앞에 펼쳐져 있는 이 동일한 삶에 대해서 그리스인들의 민족적 지혜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먼저 들어보라.” 미다스 왕이3(역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부자(富者)로 유명했던 프리기아의 왕. 디오니소스를 양육했던 실레노스가 길을 잃었을 때 그를 후대한 답례로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다. 미다스는 자기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이야기했는데, 이 소원이 이루어지면서 먹는 음식까지도 황금으로 변하게 되었다. 미다스는 자기의 소원을 철회했고, 디오니소스의 명령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의 동반자인 현자(賢者) 실레노스(Silen)를4(역주) 상반신은 말의 귀를 가진 인간으로, 하반신은 말(馬)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수염이 더부룩한 노인으로 대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혜가 많은 요정으로 그를 붙잡기만 하면 그가 가진 지혜를 빼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다스 왕이 실레노스를 술에 취하게 하여 붙잡았을 때, 실레노스는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지혜를 전했다.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를 길렀으며, 그의 술친구였다고도 전해진다. 오랫동안 숲 속에서 붙잡지는 못한 채로 쫓아다녔다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왕이 마침내 그를 수중에 넣었을 때 왕은 인간에게 가장 좋고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이 마신(魔神, Dämon)은 꼼짝도 하지 않고 굳어진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이 강요하자 마침내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살이 같은 가련한 족속이여, 우연과 고난의 자식들이여, 그대는 왜 듣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이로운 것을 나에게 말하도록 강요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그대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찍 죽는 것이다.”5(역주) 소포클레스의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1224행 이하 참조.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는 이 민족적 지혜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그것은 고문을 받는 순교자의 황홀한 환상이 그의 고통에 대해서 갖는 관계와 같다.
이제 올림포스의 이른바 마의 산(Zauberberg)이 우리에게 자신을 열면서 자신의 근원을 보여준다. 그리스인은 존재의 공포와 끔찍함을 알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다. 즉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라도, 그리스인은 그러한 공포와 끔찍함에 대해서 올림포스라는 찬란한 꿈의 산물을 내세워야만 했다. 자연의 거인적인 힘에 대한 저 엄청난 불신, 모든 인식 위에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저 운명의 여신 모이라(Moira), 인간의 위대한 벗인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저 독수리, 현명한 오이디푸스가 맞은 저 무서운 운명, 오레스테스로 하여금 어머니를 살해하도록 강요하는 아트레우스 가문에6(역주) 아트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아가멤논의 아버지이다. 이 가문에 내린 저주의 발단이었던 탄탈로스의 손자뻘이다. 그는 배다른 동생을 죽이고 미케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도망쳤다가 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아트레우스의 동생인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인 아에로페를 유혹하여 왕위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추방되었는데, 이에 대한 복수로 자기 아들로 키웠던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보내 아버지를 죽이려 하였으나 도리어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죽고 말았다. 모르고 친아들을 죽인 아트레우스는 화해를 가장하여 티에스테스와 그의 두 아들을 초청, 두 아들을 몰래 죽인 다음 그 살코기로 요리하여 티에스테스의 식탁에 내놓았다. 이러한 패륜으로 인해 신의 저주를 받은 왕국에는 흉년과 기근이 덮쳤고,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를 찾아 나섰다가 자기도 모르게 티에스테스의 딸 펠로피아와 결혼한다. 그때 그녀는 이미 자기 아버지의 씨인 아이기스토스를 뱃속에 갖고 있었는데, 훗날 이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아트레우스는 죽고 만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피의 저주는 이후에도 아트레우스 가문에 계속되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트로이 원정을 나갈 때 대원들이 배에 모두 탔지만 바람이 일지 않아 배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아가멤논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쳐진 수사슴을 죽여서 여신이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아가멤논은 여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쳤다. 이러한 사실에 분노한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트로이에서 귀국한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는 아폴론의 신탁에 따라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情夫)를 살해한다. 그 후 엘렉트라는 쓸쓸히 일생을 마쳤고,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에게 쫓겨 미쳐서 방랑하다가 마침내는 델포이에서 정화되어 신들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저주는 이 가문의 선조 중 하나인 탄탈로스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우스의 아들인 탄탈로스는 신들의 사랑을 받아서 신들의 신탁에 초대되었으나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퍼뜨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신들의 예지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신들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탄탈로스의 속마음을 읽은 신들이 그의 아들을 살려내었고, 탄탈로스는 그 죄로 지옥에 떨어져 갈증과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처참한 형벌을 받았다.
아트레우스 가문에 내린 저주가 몇 세대에 걸쳐 작용하면서 오레스테스로 하여금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스』 3부작의 주제가 되고 있다. 내려진 저 저주, 간단히 말해서 우울한 에트루리아인들을7(역주) 고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살았던 비유럽인들로서, 모든 인간은 죽음 후에는 영혼이 박탈되어 악마들이 들꿇는 암흑 세상을 헤매게 된다는 절망적인 사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신화의 여러 사례들과 함께 파멸에 빠뜨린, 숲의 신이 설파한 저 철학 전체와 그들의 신화 속에 여러 사례는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올림포스 신들이라는 저 예술적인 중간세계를 통해서 끊임없이 극복되었으며, 아무튼 은폐되었고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신들을 가장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원래의 끔찍하기 짝이 없는 거인적인(titanisch) 신들의 질서로부터 저 아폴론적인 아름다움의 충동을 통해서 서서히 올림포스라는 환희에 찬 신들의 질서가 나타나게 되었다.8(역주)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가 결합하여 티탄이라고 불리는 거인신들을 낳았는데,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는데, 가이아의 권고에 따라 우라노스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아 막내아들인 크로노스를 지배자로 삼았다. 이들이 제1세대의 신들이었고, 그 뒤로 새로운 세대의 거인신들인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하데스, 데메테르 등이 나타났다. 이들은 최후의 티탄 족인 크로노스와 여동생 레아가 결합하여 낳은 남신과 여신들로 그들은 힘으로 티탄 신족을 정복하여 올림포스를 차지했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 버렸는데,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는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했기 때문에 제우스는 살아남았으며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되었다. 제우스를 비롯한 새로운 신들과 티탄 신족과의 전투를 ‘티타노마키아’라 부른다. 니체는 이러한 거인신들과 새로운 신들의 투쟁을 ‘무질서하고 잔인한 정신’과 ‘아폴론적인 균형과 절도의 정신’ 사이의 투쟁으로 보는 것이다. 마치 가시덤불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만일 그리스인에게 삶이 보다 높은 영광에 휩싸여서 그의 신들 속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처럼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처럼 욕망이 강렬하며 고뇌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저 민족이 어떻게 삶을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계속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삶의 보완이자 완성으로서의 예술을 낳은 동일한 충동이 올림포스 세계도 탄생시켰다. 이 올림포스의 세계 안에서 그리스인의 ‘의지’는 (자신의 삶을 신적인 것으로) 찬란하게 변용시키는(verklären) 거울을 눈앞에 걸었던 것이다. 이렇게 신들은 스스로 인간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변신론(辯神論)이9(역주) 변신론(Theodizee)이란 라이프니츠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며 신정론(神正論) 혹은 신의론(神義論)이라고도 번역된다. 변신론은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적인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선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어떻게 해서 악이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난문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이론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로서의 신의 정의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을 변호하려고 한다. 아닌가! 그러한 신들의 눈부신 광명 안에서 삶은 그 자체로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 호메로스적인 인간의 본래의 고통은 삶으로부터의 이별, 무엇보다도 머지않아 다가올 이별(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실레노스의 지혜를 거꾸로 해서 그리스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가장 나쁜 일은 머지않아 죽는다는 것이며, 다음에 나쁜 일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 것이다.” 이러한 비탄이 일단 울려 퍼지게 되면, 그것은 단명한 아킬레우스에 대해서도 나뭇잎과 같은 인간종족의 무상함에 대해서도 영웅시대의10(역주) 그리스적인 원래 의미에서 영웅은 부모 중 하나를 신으로 하면서 죽어서는 별이 되어 하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신인(神人)을 의미한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하여 아르고 선(船)에 승선한 주요 인물들과 트로이 전쟁의 주요 인물들이 이러한 의미에서 영웅이다. 몰락에 대해서도 다시 울리게 된다. 비록 날품팔이로라도 더 살고 싶어 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영웅에게도 불명예스런 일이 아니다.11(역주) 『오디세이아』에는 유랑하던 오디세우스가 죽은 자들의 영혼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가 이러한 영혼들의 장수(將帥)로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는데, 이에 대해서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들의 무리 전체를 지배하기보다는 가난한 날품팔이로라도 살아 있는 것이 더 낫다”라고 답한다. 『오디세이아』 11권 489~491. (그리스적) ‘의지’는 아폴론적 단계에서 이렇게 강렬하게 삶을 갈망하며 호메로스적 인간은 삶과 자신이 일체라고 느끼기 때문에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비탄마저도 삶에 대한 찬가가 되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말해 두어야만 할 것이 있다. 근대인이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조화, 즉 인간과 자연의 통일을 실러는 ‘소박함’이라는 예술용어로 지칭했지만, 그러한 조화는 인류의 낙원으로서 모든 문화의 입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극히 단순하고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태가 결코 아니다. 이렇게 믿을 수 있었던 시대는 루소의 에밀마저도 예술가로 간주하려고 했고 호메로스야말로 자연의 품에서 길러진 에밀식의 예술가라고 망상했던 시대뿐이었다. 예술에서 ‘소박한 것’을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이 아폴론적 문화에서 비롯되는 최고의 효과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아폴론적 문화는 항상 먼저 거인왕국을 전복하고 괴물들을 죽여야만 하며 강력한 환영들과 즐거운 환상들을 통해서 (호메로스 이전의 그리스인, 즉 올림포스 신화 이전의 그리스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무서운 깊이와 고뇌에 대한 가장 큰 감수성에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소박함, 즉 가상의 아름다움 속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그러니, 꿈의 예술가 개인이 민족과 자연 전체가 꿈꾸는 능력에 관계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개인으로서 아폴론적인 민족문화에 대해서 관계하고 있는 호메로스야말로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 인물이 아닌가! 호메로스적 소박성이란 오직 아폴론적 환상의 완전한 승리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환상이란 자연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는 환상과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자연의) 진정한 목표는 환상에 의해서 은폐된다. 우리는 이 환상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고, 자연은 우리를 착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목표에 도달한다.12(역주) 사랑에 빠진 남녀가 상대방에 대해서 갖는 환상이야말로 자연이 자신의 영속을 위해서 이용하는 대표적인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상대방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 상대방에게서 보게 되는 아름다움이란 사실은 그들을 근저에서 몰아대는 자연의 생식의지가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환영인 것이다. 그리스인들 속에서 ‘의지’는 예술가(천재)와 예술세계를 통해 (일상적인 현실세계를) 찬란하게 변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직관하려고 했다. ‘의지’의 피조물들이 스스로를 찬양하기 위해서는, 관조된 완벽한 세계가 명령이나 비난으로 작용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들을 찬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껴야만 했고 더 높은 영역에서 서로 재회해야만 했다. 이러한 영역은 그리스인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 즉 올림포스의 신들을 보았던 아름다움의 영역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비친 이 상을 가지고 그리스의 ‘의지’는 예술적 재능과 상관관계에 있는 고뇌에 대한 재능과 고뇌의 지혜에 이르는 재능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이 승리의 기념비로서 호메로스, 즉 소박한 예술가가 우리 앞에 서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박찬국 역, 아카넷. 2007. pp. 70-79.
주석 및 참고문헌
- 1(역주) 니체는 여기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 2(역주) 『파우스트』 제1부 2603행에 나오는 말.
- 3(역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부자(富者)로 유명했던 프리기아의 왕. 디오니소스를 양육했던 실레노스가 길을 잃었을 때 그를 후대한 답례로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다. 미다스는 자기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이야기했는데, 이 소원이 이루어지면서 먹는 음식까지도 황금으로 변하게 되었다. 미다스는 자기의 소원을 철회했고, 디오니소스의 명령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 4(역주) 상반신은 말의 귀를 가진 인간으로, 하반신은 말(馬)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수염이 더부룩한 노인으로 대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혜가 많은 요정으로 그를 붙잡기만 하면 그가 가진 지혜를 빼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다스 왕이 실레노스를 술에 취하게 하여 붙잡았을 때, 실레노스는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지혜를 전했다.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를 길렀으며, 그의 술친구였다고도 전해진다.
- 5(역주) 소포클레스의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1224행 이하 참조.
- 6(역주) 아트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아가멤논의 아버지이다. 이 가문에 내린 저주의 발단이었던 탄탈로스의 손자뻘이다. 그는 배다른 동생을 죽이고 미케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도망쳤다가 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아트레우스의 동생인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인 아에로페를 유혹하여 왕위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추방되었는데, 이에 대한 복수로 자기 아들로 키웠던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보내 아버지를 죽이려 하였으나 도리어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죽고 말았다. 모르고 친아들을 죽인 아트레우스는 화해를 가장하여 티에스테스와 그의 두 아들을 초청, 두 아들을 몰래 죽인 다음 그 살코기로 요리하여 티에스테스의 식탁에 내놓았다. 이러한 패륜으로 인해 신의 저주를 받은 왕국에는 흉년과 기근이 덮쳤고,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를 찾아 나섰다가 자기도 모르게 티에스테스의 딸 펠로피아와 결혼한다. 그때 그녀는 이미 자기 아버지의 씨인 아이기스토스를 뱃속에 갖고 있었는데, 훗날 이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아트레우스는 죽고 만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피의 저주는 이후에도 아트레우스 가문에 계속되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트로이 원정을 나갈 때 대원들이 배에 모두 탔지만 바람이 일지 않아 배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아가멤논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쳐진 수사슴을 죽여서 여신이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아가멤논은 여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쳤다. 이러한 사실에 분노한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트로이에서 귀국한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는 아폴론의 신탁에 따라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情夫)를 살해한다. 그 후 엘렉트라는 쓸쓸히 일생을 마쳤고,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에게 쫓겨 미쳐서 방랑하다가 마침내는 델포이에서 정화되어 신들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저주는 이 가문의 선조 중 하나인 탄탈로스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우스의 아들인 탄탈로스는 신들의 사랑을 받아서 신들의 신탁에 초대되었으나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퍼뜨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신들의 예지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신들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탄탈로스의 속마음을 읽은 신들이 그의 아들을 살려내었고, 탄탈로스는 그 죄로 지옥에 떨어져 갈증과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처참한 형벌을 받았다.
아트레우스 가문에 내린 저주가 몇 세대에 걸쳐 작용하면서 오레스테스로 하여금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스』 3부작의 주제가 되고 있다. - 7(역주) 고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살았던 비유럽인들로서, 모든 인간은 죽음 후에는 영혼이 박탈되어 악마들이 들꿇는 암흑 세상을 헤매게 된다는 절망적인 사후관을 가지고 있었다.
- 8(역주)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가 결합하여 티탄이라고 불리는 거인신들을 낳았는데,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는데, 가이아의 권고에 따라 우라노스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아 막내아들인 크로노스를 지배자로 삼았다. 이들이 제1세대의 신들이었고, 그 뒤로 새로운 세대의 거인신들인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하데스, 데메테르 등이 나타났다. 이들은 최후의 티탄 족인 크로노스와 여동생 레아가 결합하여 낳은 남신과 여신들로 그들은 힘으로 티탄 신족을 정복하여 올림포스를 차지했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 버렸는데,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는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했기 때문에 제우스는 살아남았으며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되었다. 제우스를 비롯한 새로운 신들과 티탄 신족과의 전투를 ‘티타노마키아’라 부른다. 니체는 이러한 거인신들과 새로운 신들의 투쟁을 ‘무질서하고 잔인한 정신’과 ‘아폴론적인 균형과 절도의 정신’ 사이의 투쟁으로 보는 것이다.
- 9(역주) 변신론(Theodizee)이란 라이프니츠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며 신정론(神正論) 혹은 신의론(神義論)이라고도 번역된다. 변신론은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적인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선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어떻게 해서 악이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난문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이론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로서의 신의 정의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을 변호하려고 한다.
- 10(역주) 그리스적인 원래 의미에서 영웅은 부모 중 하나를 신으로 하면서 죽어서는 별이 되어 하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신인(神人)을 의미한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하여 아르고 선(船)에 승선한 주요 인물들과 트로이 전쟁의 주요 인물들이 이러한 의미에서 영웅이다.
- 11(역주) 『오디세이아』에는 유랑하던 오디세우스가 죽은 자들의 영혼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가 이러한 영혼들의 장수(將帥)로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는데, 이에 대해서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들의 무리 전체를 지배하기보다는 가난한 날품팔이로라도 살아 있는 것이 더 낫다”라고 답한다. 『오디세이아』 11권 489~491.
- 12(역주) 사랑에 빠진 남녀가 상대방에 대해서 갖는 환상이야말로 자연이 자신의 영속을 위해서 이용하는 대표적인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상대방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 상대방에게서 보게 되는 아름다움이란 사실은 그들을 근저에서 몰아대는 자연의 생식의지가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환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