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lkboard

Chalkboard

개인적으로 드는 짧은 생각들, 너무 짧아서 블로그 포스트로 올리기는 힘든 생각들을 어디에다가 모아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이를 위한 플러그인을 만들수도 있지만, 그냥 한 페이지를 만들어서 담벼락 마냥 기록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칠판이 되겠지. 생각날 때마다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칠판에 분필 잡고 가루 날려가면서 쓰고, 시간이 지난 뒤 그 분필들의 새김으로 채워진 흔적을 보는 것이……. 그냥 이러고 싶었다. 이런 말이다.

2020. 8. 13. 처음 Chalkboard를 만들며. 카페지기 커피사유.

이 생각들을 모은지 어연 6개월 정도가 경과했고, 그 동안 많은 생각들이 이 거대한 칠판을 조금씩 채워갔다. 즐거운 일이지만, 너무 길어진 것은 분명한 문제였다. 결국은 약간의 변경을 가하여, 최근 10개 생각들만을 표시하기로 하고, 별도의 카테고리로 묶어 표기하되, 메인 페이지에는 표시되지 않도록 했다……. 이제는 좀 보기에 괜찮은 길이가 될련지. 일단은 해 봐야 아는 거니까.

2021. 1. 26. Chalkboard 표시 방법을 수정하며. 카페지기 커피사유.
  • 당신이 말하는 것은 민주공화정의 수호가 아니다
    오늘 아침 여당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적 변곡점에 놓여 있다”, 그리고 “흡사 해방 정국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말이다. 정기국회가 개원하는 오늘 여당의 공개석상에는 “아직도 탄핵 반대를 외치는 국민의힘! 그들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판넬이 등장했다. 요컨대 ‘헌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을 배출한 책임과 반성마저… Continue reading
  • 딜레마, 난장판 그리고 미학
    나 자신의 문학적 취향에 대해 조금 남겨볼까 한다. 한때는 단순히 비극 그러니까 슬프거나 씁쓸한 이야기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 학기부터 곧 끝날 여름 방학에 이르기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부터 김애란의 《비행운》, 마침내는 근래에 유명한 모바일 게임 《트릭컬 리바이브》의 서사 구조에서 내가 무엇에 이끌렸는지를 되짚어보았기 때문이다. 어둡고 가슴 아픈 이야기인지가 충분 조건이 되는 게… Continue reading
  • 흔들리는 민주공화국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예감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황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결국 장 의원이 제1야당의 대표로 최종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이틀 전 후보로 김문수 전 지사와 장동혁 의원이 최종 선출되었다는 비보 뒤에 말이다. 물론 적지 않은 언론사들이 예상하였듯 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8:2의 비율로 반영하여 선출할… Continue reading
  • 포용과 타협이 절실한 시기
    집권 여당 당대표 선거에서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정청래 의원이 당선되었다. 그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당원이 가라는대로 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그의 입장은 당내 의사 반영이라는 원칙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하긴 하지만, 집권 여당의 당대표로서는 그의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과 인식을 두고 볼 때에는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문제 때문에 그가 말하는 ‘국민의… Continue reading
  • 작문을 위한 작문
    근래에는 작문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의 여러 글쓰기를 점검한 결과, 나는 스스로가 카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에서 글로 예술을 빚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는데, 그의 문장들에서 강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문체를 갈고 닦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글과 철학 자체가 일치하는 지경을 갈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글쓰기의… Continue reading
  • 고등학교의 숲
    조금 전, 대략 6년 전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들을 톺아보러 올라온(또는, ‘끌려온’) 경남과학고등학교 학생들과 대면하고 왔다. 그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15분 남짓으로 길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설 수 있게 된 것에는 총 5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나는 알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씁쓸했다. 5 ~ 6년이 지나서 그렇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연단에… Continue reading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민음사. 2024. p. 567. 조금 전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두 문장.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두 문장이 어쩌면 최근 나에게 벌어진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 어떤… Continue reading
  • 나오코와 나, Bill Evans와 Chet Baker
    조금 전 《노르웨이의 숲》의 10장을 모두 읽은 뒤, 제11장으로 넘어가면서 첫 장을 읽은 직후에 내가 직감했던 바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제11장의 첫 마디가 나오코의 〈죽음〉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10장까지만 하더라도 레이코 씨의 편지에서 ‘나오코는 빨리 회복되고 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급격한 반전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이상할 정도로, 평생 ‘적절한… Continue reading
  • 상상력의 결여
    조금 전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것처럼 새벽에 소설을 읽을 때면 문득 처음 내가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상상력의 결여’. 그 당시 나의 이러한 의사의 바탕에 깔린 문제 의식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던 (실제로도 극한을 향해 가고 있었기도 했다) 그 때의 나는 어느 사람을 보든,… Continue reading
  • 낙서 #3
    낙서 시리즈는 커피사유가 쓰고 있는 글의 일부를 살짝 들추어보는 공간입니다. 쓰고 있는 글의 일부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양억관 역, 민음사, 2024, p. 55. 인간은 죽음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생물학적 죽음 뿐만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가능한 모든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죽은 자는 말을 할…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