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원리와 멜랑콜리
이번 학기도 끝나자마자 어김없이 만성적인 우울감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특유의 이 반복되는 멜랑콜리는 번아웃과 완전히 같은 종류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처절하게 느꼈던 사실이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긴 하다. 노력과 결과는 완벽하게 비례하지 않는다는 그 자명하고도 잔인한 법칙. 한때 나는 고등학교 때의 그 살인적인 경쟁 원리란 그나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원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법칙은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이었다. 모두가 공정하다고 신봉하기에, 따라서 그 법칙에 의해서 사실 모든 사람이 상처받거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바로 그 질서는 비단 고등학교 만의 것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당초 나의 학문 앞에서 오로지 서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그 다짐이, 기표는 동일하더라도 이제는 그 기의가 기괴하게 비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분명 처음의 의미는 ‘경쟁에서 벗어난, 나 자신의 발전과 건강함,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따르는’ 것으로서의 다짐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 다짐이 마치 나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낯선 것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가 지적한 바로 그 소외 현상이 지금 나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바로 그 서늘함이 스쳐지나가는 듯하다.
알고 있다. 지나친 집착일 수도 있다. 완벽을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가짐을 조금만 바꾸면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싶다. 사회가 판단하는 그 숫자 놀음의 폭력에 의하여 타인에 비해 쓸모없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 사회적 계층의 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나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란 스스로가 어제에 비해서 나아진 것이 없다는 바로 그 본질적인 ‘죽음의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목표한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열감, 어제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그 믿음 바로 그것들의 결여. 이것들이 조금이라도 희미해지려고 하는 것조차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한다.
나는 나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비타협성의 정체를 이제 밝혀내야만 한다. 스스로를 난도질하고 있다는 모순을 그저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의심해야 한다. 이 ‘완전함에 대한 추구’가 어쩌면 내가 그렇게나 끔찍하게 경멸했던 ‘경쟁 원리’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하고. 고등학교의 악몽에서, 아니 이 나라의 살인적인 경쟁과 그 악랄한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아직도 나의 정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아닌가 다시 확인해야만 한다.
무기력과 함께 몰려온 수많은 번뇌와 내적 갈등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스스로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채워져 있는 바로 이 본질적인 욕망이 과연 나의 것이 맞는지, 따라서 이것은 족쇄인지 아니면 건강함의 증거인지, 그리고 이제 이 욕망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끊임없는 질문의 연쇄 사슬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