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들이어, 질문을 던지시오: “나는 누구인가?”
이 즈음 시간, 즉 그러니까 해마다 돌아오는 입시철(사실 입시와 관련된 현실을 알고 난 이후에야 이런 생각을 하므로, 내가 입시를 치른 작년에 이어서 이번이 나에게 유효하게 다가오는 두 번째 입시철이기는 하다)이면 문득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시달린다. 바로 입시를 앞두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 입시생은 죽은 것과 다름없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문득 이런 질문이 나의 마음 속에서 고동치기 시작할 적이면 작년 이 맘때 즈음의 나 스스로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어렴풋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경쟁과 교육 사회니 뭐니 하는, 어쨌거나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대학 입시라는 것을 바로 앞둔 나 자신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하면서 질문을, 면접을 앞두고 있는 바쁜 일정의 문은 눈 앞에 열려서 서둘러 달릴 것을 재촉하고 있음에도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스스로의 과거, 바로 그 과거를 말이다.
그 때 분명히 누군가는 내가 대입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것이라고 타박했었다. 다른 이들은 죽을 힘을 다하여 달려가고 있으므로, 좁은 저 문을 통과하려면 너도 있는 힘껏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 누군가는 말했었다는 것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회상 속의 나는 계속 문 앞에 (그 누군가가 보기에는) 멍청하게 서 있었고,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그 누군가의 생각과는 달리 생각보다 많은 무게를 지닌 질문이었음을, 아니 그냥 내 인생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질문이 되었음을 나는 대학에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불행히도 이 사실을 고등학교 때에는 깨닫지 못하고 어렴풋이 연상하거나 혹은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가 이제서야 명백히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스스로에 대하여 묻지 않는 독립 혹은 나아감이란 결국은 갈 방향도 모르는 채로 어딘가 홀로 던져진다는 것과 다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됨에 따른 부속 현상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의 선생들은 대학이 마치 인생의 첫 번째 주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설교한다. 비단 한 학생의 부모도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평범한 경우에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생기는 의식이란 ‘좋은 대학에 가자’라고 서술할 수 있을 종류의 어떤 사상인 듯 하다. 이러한 미신적인, 그리고 동시에 (오늘과 같은 나날들에야 겨우 알게 된 것이지만) 광신적이기도 한 이러한 끊임없이 학생, 교사, 학부모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암송의 영원한 고리는, 궁극적으로 학생을 희생자로 삼아 그가 스스로에 대하여 질문할 기회, 그리하여 본연의 스스로를 발견할 기회를 포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나는 이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고, 내가 지금 어느 정도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곧 이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규명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시스템 속에서는 거의 기적과도 가까운 일이었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한 개인이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기꺼이 스스로가 나아갈 것 같은 방향은 어디인지.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이 ‘목표’에 대한 질문에 선행되어야 했거나, 혹은 그 자리를 대체했어야 했는데 내가 통과한 이 교육 시스템에서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질문은 “어느 대학에 갈 것이니?”가 아니고, “너는 어떤 사람이니?”가 되었어야 했다. 그것을 바로 학교가 가르쳐 주어야 했다. 그러나 학교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입시철이 되면 나는 문득 어떤 한 장의 회색 사진을 상상하게 된다. 그 사진은 분명히 대학 입학 시험을 치러 대학의 교문을 들어가는, 혹은 수능을 치는 수험생들의 아침의 그 입실 광경을 담은 모습인데, 이상하게도 이들 모습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희미하며 중첩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 어떤 다채로운 색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흑백의 모순적인 사진 속에서, 나는 그 수험생들의 얼굴이 모두 지워져 있음을 다시금 사진을 연상할 때에 깨닫게 된다. 나는 이윽고 모종의 공포심을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끝없이 속에서 문제 제기를 하게 되며, 또한 그럴 때마다 원인을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원인을 소리 높여 비판하는 것에 앞서서 나는 그러한 회색 사진 속에 놓인 얼굴이 지워진 학생들에게 먼저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올바른 질문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입시생들이어, 질문을 던지시오! 이 회색의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어, 질문을 던지시오!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을 좋아하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 사람인가! 질문을 던지시오, 삶이라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나그네들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