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20대를 물음에 바쳐야 한다
… 나중에 내가 나이를 먹었을 때, 그리하여 나에게 허락되는 날이 별로 남지 않았을 때. 아마도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나의 20대를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물음으로.
다양한 길이 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 자신이 힘겹게라도 나아온 여기에서 생각해볼 때, 나는 아무래도 위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20대를 물음에 바쳤다〉라고.
물음에 삶의 한 순간을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수사적인 위의 문장이 성립되게 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20대를 살아가야 하는가?
대답은 명료하지는 않지만 나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는 것 같다. 가정이라는 보호된 환경을 벗어나 이제 어른이라는 성명 아래에서 수많은 책임과 정보를 알게 되는 때가 청년기, 20대가 아니던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함께 볼 수 밖에 없는 시기, 보호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시기. 그러한 시기에는 내가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귀에 생생하게 들릴 것이므로, 수많은 물음은 나를 괴롭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물음을 해결하는 데에 나는 나의 20대를 바쳐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에 대한 나의 물음이란 사실상 무궁무진할 것이므로 10년으로는 부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30대에도, 40대에도 어쩌면 평생 나의 삶을 ‘물음에 바쳐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 자체가 어쩌면 물음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던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