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로의 회귀
오늘 버스를 타고 올라오면서 며칠 전 내가 홈 서버에 작업해놓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상호 간의 고립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것은 각 개인이 소통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기 보다는 소통이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그러한 직관을 라디오에 관해 생각하다가 얻었는데, 그래도 예전에 라디오를 통해 진행자와 청각, 그리고 아주 느린 편지 등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 시대에는 그래도 현재와 같이 적어도 고독에 관한 문제 제기는 덜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현대 사회의 SNS와 인터넷을 통해 고도로 연결된 사회에서 끝없이 제기되는 고독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그 직관은 더욱 강화되는 듯 하다.
나는 라디오에 관련한 생각을 하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라디오에 대한 나름의 이해관과 가치관을 획득한 이로서 나는 우리 젊은 세대들로 다시금 라디오가 진출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어떤 컨텐츠만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그러니까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어떤 다른 요소를 경험하는 것이 어느 선에서 강제되어야, 적어도 끼리끼리 노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이것은 실질적으로 Youtube와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한 영상끼리 계속 보여준다던가, 사용자 맞춤형과 같은 설정들이 판을 치는 경우는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한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행위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라디오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택의 기회를 결여시킨다는 점에서는 방송의 매체, 혹은 소통의 중간자로서의 기능을 성실히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나름의 라디오에 대한 지나친 로망일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라디오라는 매체는 음악이 지닌 보편적인 감정적 설득력과 그리고 청자와 진행자의 소소한 소통 방식,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과 감정들이 오고 가는 그러한 매체로서 비치기 때문에, 나는 전적으로 우리 세대가 지금 잊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문득 내가 동아리를 만들어 라디오를 젊은 우리 세대들에게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FM이나 AM 등의 전파를 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최근 며칠 동안 나는 흥미 때문에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 대한 몇 가지 실험을 했고, Icecast나 Libretimes, 혹은 Mixxx 등의 소프트웨어를 통한 인터넷 라디오의 가능성을 확인해보았고, 그리고 OBS Studio와 라이브 스트리밍에 대해서도 몇 가지 공부해보면서 어쩌면 인터넷 방송과 라디오를 연결시켜 확연하게 이러한 라디오의 감성을 청년 세대 사이에 보급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방송을 진행하는데 그렇게 큰 세팅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나는 확인했다. 무슨 비싼 앰프나 마이크, 컴퓨터, 그 이외의 어떤 음향 장비들은 필수가 아닌 전적인 선택 사항이었고, 나는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그러한 단점을 전적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전용 마이크도 사지 않고 휴대전화의 마이크와 Equalizer APO를 사용해 음질을 탁월하게 개선하는 방법까지 찾아내고 실험하여,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 대학생의 수준에서 동아리 혹은 개인적 수준에서도 꽤 아이디어만 괜찮다면 좋은 방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최근 방송사들의 라디오가 젊은 세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음성적 청취를 주로 하는 라디오 보다는 시각적 자극까지 동반된 Youtube나 Twitch, 아프리카 TV 등과 같은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인터넷 비디오 방송을 보는 것이 더욱 흐름인 듯 하다. 그러나 시각적 자극이 결여된 음성적 청취의 경우는 오히려 그 정보의 결여로 인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TV의 저편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비추어지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할 수는 없다. 라디오를 통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지는 경우 우리는 책을 읽고 수많은 시각적 심상을 스스로의 속에 품는 것처럼, 그 사람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릴 수 있다. 오히려, 시각적 자극을 주로 밀고 가는 인터넷 방송은 그 자체 때문에 상상력의 자극이라는 요소를 젊은 세대로부터 탈락시키면서 무언가 고립화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즉, 나는 어떤 유대감이나 고독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 자체를 인간의 상상력과 결부시키려고 한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도 상상력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현대 사회로의 발전 과정에서의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다양한 감각 기관을 통해 충분히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청각이었으며, 그 다음에는 청각과 시각, 그리고 최근에는 청각, 시각을 넘어 촉각과 후각, 미각까지 넘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우리가 그 정보가 말하는 바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들고야 말았다. 정보가 말하는 바에 대한 상상력이 존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정보에 대하여 사고를 하게 되고, 그 사고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전이 있어왔는데, 현대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진보의 문제이므로 상상력을 배양하기 위한 문화는 우리 세대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라디오가 젊은 우리 세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플랫폼과 전달 방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 하고 나는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라디오의 젊은 세대로의 도달 부족 자체가 나 자신이 문득 어떤 동아리를 하나 상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부분이다. 나는 문득 대학에서 작은 동아리를 만들어, 굳이 전파의 형태로 전송되는 라디오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라디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을 통한 보이는 라디오(얼굴이 보여도 되고, 혹은 Playlist 느낌으로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를 Youtube, Twitch, Podcast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과 방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게임이나 이상한 어그로 위주인 방송 자체를 라디오 느낌으로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그러한 흐름은 현재 주류가 아니므로, 현대의 흐름에 맞게 실시간 채팅과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라디오 일정 확인과 각종 게시판, 그리고 DJ로의 request와 채팅까지말이다. 그러나 이용자는 여전히 그들의 채널을 바로바로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해야 한다. 그러하므로 각각의 방송을 열어 두는 것이 아닌, 채널 몇 개를 편성하고 그 채널에 시간을 나누어 DJ를 할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DJ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