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과 플라톤의 <모방론>,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 능력>에 대한 메모

2021-06-14 0 By 커피사유

이 메모는 서울대학교 강우성 교수님의 <문학과 철학의 대화>에 대한 기말고사 준비용으로 작성되었음을 서두에 밝혀둔다.

질문

플라톤의 모방론이나 벤야민의 미메시스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고, 이 개념을 통해 수업 시간에 읽은 단편소설들(카프카, 포우, 보르헤스, 김승옥, 멜빌, 카버) 중 하나 이상을 골라 분석해보시오.

I. 플라톤의 <모방론>에 대하여

–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이데아Idea‘를 설명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은 크게 3개의 차원적 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이데아의 영역
  2. 현상의 영역
  3. 인위의 영역

– 플라톤에게, 이 세 개의 영역을 매개하는 어떤 수단이란 바로 <모방>이다. 침대를 예로 들어 그는 이 세 개의 영역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한다. 목수가 만든 침대를 그는 예시로 드는데, 목수가 제작한 침대는 그 모양, 색깔, 크기 등 외형이 모두 제각각이고 동일하지도 않지만, 그 목수의 침대로부터 사람들은 단 하나의 ‘침대’라는 추상을 공통적으로 떠올린다. 또한 목수는 ‘침대’에 대하여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예를 들어, 침대의 다리는 이쪽에 달려서 색상은 어떠하고와 같은 침대에 관한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설명하지 않고도) 침대에 대한 어떤 추상적 이미지를 떠올리고 아마도 침대를 제작할 것이다. (내가 어떤 종이를 제작한다면, 나는 종이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종이를 제작한다. 종이의 집합을 떠올리고 제작하지는 않는다) 이때 침대들은 변하지만, 이 ‘침대’에 관한 추상은 공통적이고 또한 변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침대의 ‘이데아’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목수는 이 침대의 ‘이데아’를 침대를 만들 때마다 떠올리고 그는 이를 모방하여 침대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간주한다.

– 플라톤이 다음으로 드는 예시는 목수가 만든 침대를 보고 화가가 그린 침대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침대는 침대의 모든 모습을 형상화하지는 않는다.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침대의 일부분 – 이를테면 침대의 앞 부분, 침대의 옆 모습 등과 같은 단편적인 모습 – 현실 세계에 대하여 화가라는 <인간>이 조명한 인위적인 일부만이 나타나 있다. 플라톤은 화가의 그림은 <인위의 세계>에 속한다고 하며, 이 그림은 <현상의 세계>에 속하는 목수의 침대를 모방한 것이라고 말한다.

– 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것에 가까운 것, 그리고 가급적이면 사물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 진리에 더욱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수가 만든 침대는 침대에 관한 모든 것을 기술하지는 못한다. 수많은 서로 다른 침대들의 존재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있어 진리는 이데아 쪽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목수의 침대와 화가의 그림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논리 구조로 적용되므로, 마침내 플라톤은 목수의 침대는 진리로부터 2단계 떨어져 있는 <현상의 영역>에 있다고 말하고, 화가의 침대 그림은 진리로부터 3단계 떨어져 있는 <인위의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

– 따라서 플라톤의 <모방론> 일체는 다음의 Diagram으로 요약될 수 있다.

II.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

– 내가 이해하기론 발터 벤야민은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에서 ‘미메시스 능력’은 다음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1. 유사성을 발견하는 능력
  2. 유사성을 창조하는 능력
  3. 유사성을 적용하는 능력

– ‘미메시스 능력’은 모방과 유사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모방’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모방에서 나아간 어떤 것을 더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발터 벤야민은 ‘미메시스 능력’은 단순히 지각적으로 인지되는 자연의 어떤 것을 모방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이것을 통해 어떤 이론이나 어떤 제례, 혹은 문화를 창조하는 것에서 발휘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지각적인 인지 과정에서도, 특히 언어에서 발휘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벤야민은 언어에서 기표와 기의, 심지어는 그 기의가 종합되어 비로소 완성되는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데에는 <미메시스 능력>이 발휘된다고 이야기한다. 즉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라는 과정이 <미메시스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 글을 읽어내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미메시스 능력>은 이 과정 중에 항상 개입함을 확인해볼 수 있다. 종이 위에 있는 것은 사실 어떤 기호들의 특정 배열 혹은 그것들의 연쇄체이다. 우리는 그 연쇄체 중에 특정 패턴이 존재할 때, 그 패턴과 동형 관계에 있는 어떤 이데아적 관념 혹은 개념을 연관짓고, 그 연관지은 개념들을 연쇄체의 나열 순서에 따라 ‘펼쳐놓은’ 후에 그 개념 또는 추상들을 종합하여 이로부터 연상되는 본래 뜻을 찾아간다. 즉 우리는 글에서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을 때에는 다수의 <미메시스 능력> 사용을 시전하는 셈이다.

III.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 (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대하여

– 작 중에 제시되는 바에 의하면, 도서관은 다음의 특징들을 가진다. 이 특징들은 도서관에 대한 후술할 추론 이전에 발견되거나 추론된 것들이다. (귀납적으로 얻어진 것들이다)

  1. 도서관은 무한하다. (거울을 근거로 한 무한함의 필요성을 골자로 한 반박이 있지만, 필자는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위-아래로 층이 무한히 뻗어 있는 구조이다)
  2. 도서관은 영원지속하고 있으며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럴 것이라는 것은 추정이고, 정확한 관찰된 사실은 도서관은 과거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속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화자는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은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도서관 안에 있는 책들은 모두 스물 다섯 글자의 연쇄체로 구성된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규칙이 없어 보인다. 사실상 무작위의 배열체로 보이는 것이다)
  4. 몇몇 도서관의 책 속 연쇄체들은 해석 가능한 패턴을 가진다. (적어도 몇몇 책의 어느 부분에는 말이 되는 구절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 위 특징들로부터 도서관에 대한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들은 도서관에 대하여 다음을 추론했다: “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지식들을 세상의 모든 언어로 담고 있을 것이다.” 이 때 모든 지식에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까지 포함하며, 심지어는 한 사람의 존재 이유에 대한 기술과 그의 미래까지 서술한 ‘변론서’가 포함된다.

– 위 가설이 발표되었을 때, 도서관의 많은 곳에서는 한때 자신의 운명이 적힌 자신만의 변론서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유행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 신성한 여행에 나선 이들은 이윽고 욕을 내뱉고 싸웠으며 신성한 층계참에서 서로를 계단 난간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 이윽고 이 희망이 엄청난 절망으로 전환되자, 도서관에는 다음의 다양한 부류들(혹은 이단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당국은 그들을 가만두지는 않았다.

  1. 어떤 부류는 도서관의 한 서가의 몇몇 책을 펼쳐보고는 그 책들이 모두 무의미한 기호들의 조합이며 따라서 의미 없음을 선언하고는 그 모든 책들을 파괴하려고 했다. (하지만 화자는 그들이 파괴한 책의 대체제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보장이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2. 어떤 부류는 도서관의 책들에 의미가 존재한다는 가정, 혹은 그러한 희망 자체가 틀렸다고 보았다. 그들에게는 책의 무질서한 기호조합으로부터 의미를 찾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으로 이해된다.

– 하지만 도서관의 주류는 여전히 도서관의 수많은 무질서한 책들은 ‘무질서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어도 화자는 그렇게 믿으며, 어딘가에 ‘번역서’의 궁극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또한 도서관의 책들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열병에 걸린 도서관’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공포에 가득차지 않은 음절들은 발음할 수 없다는 점으로 보아 도서관은 어떤 신적 존재가 구성한 진리 체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화자는 여전히 도서관의 책들의 해석 가능성을 믿는 부류이다.

IV. 『바벨의 도서관』의 분석

A. 바벨의 도서관은 모든 시간대의 지식의 총집합체를 상징할 것이다. (신이 만들어놓은 어떤 진리 집합체를 의미할 것, 모든 진리들을 의미할 것이다)

– 도서관은 무한하며, 위와 아래로 무한히 뻗어 있다. 이것은 일단 나에게는 일차원적인 시간의 흐름과 동형성에 있다고 보여진다.

– 도서관은 무한하며, 몇십층을 오가면 언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도서관은 모두 동시간대에 있고 ‘지역’이 무한히 다르며 무한한 공간이 있을 뿐이라고 가정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는 있지만,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시간선과 연계시켜 도서관은 사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 하지만 도서관의 완전성 자체가 이미 도서관은 가장 이상 혹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자극한다. 도서관은 완전한 어떤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한 사서로서의 인간을 강조한다.

B.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을 해석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미메시스 능력>의 사용을 요구한다.

–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 능력>에 관한 앞선 논의에서 다루었지만, 어떤 글을 해석하는 해석 주체는 필연적으로 <미메시스 능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기표를 기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 번, 기의를 재종합하는데서 한번, 심지어는 그 종합들을 맥락과 순서에 맞게 재종합하는 연쇄과정에서 끝없이 미메시스 능력들은 펼쳐진다.

– 도서관 속에 있는 책들은 불완전한 사서들인 <인간>의 미메시스 능력에 의하여 해석되고 의미가 밝혀진다.

C. 바벨의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은 해석되었을 때에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수많은 번역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 바벨의 도서관 속 책들은 “모든 정보를 모든 언어로 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가설에 따르면, 같은 정보를 서로 다른 언어로 담고 있는 번역본의 존재가 그 가설의 검증 과정에서 확인되어야만 한다. 지금 도서관을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믿음에 의하여 사람들은 도서관에 번역본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번역본들이 실은 별개의 책이 아니며 동일한 책의 서로 다른 번역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책들이 모두 동일한 어떤 생각이나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여야 한다.

– 이는 플라톤의 <모방론>에 나타나는 3개의 층위와 그 층위 사이의 관계들에서 나타나는 <모방>과 동형적이다. 플라톤은 침대의 비유를 들어 현상 세계인 목수의 침대가 이데아 세계인 침대의 이데아를 모방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듯이, 우리의 바벨의 도서관에서는 하나의 진리(생각)이 여러 언어라는 도구를 빌려 다양한 형태로 도서관이라는 <현상>의 공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바벨의 도서관에서의 번역본의 병렬로부터 우리는 플라톤의 <모방론>을 연상하게 된다.

– 그런데 플라톤의 <모방론>에 대한 연상은 바벨의 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 점은 도서과에 관한 인간들의 믿음에 필수적이다. 도서관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자 도서관의 존재에 대한 현재의 주된 가설인 “도서관은 모든 정보를 모든 언어로 담고 있을 것이다.”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있는 번역본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며, 번역본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에는 <모방론>의 구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나 층위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 도서관에 관하여 인간들이 세운 이 문장은 검증이 불가능해지고 만다.

D. ‘바벨의 도서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혹자는 바벨의 도서관을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에 견주기도 하고 혹은 세상의 모든 것을 규명 가능하다고 믿는 인간에 대한 비판 제기라고도 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바벨의 도서관은 아마도 세상의 지식들을 인류가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대한 투영(Projectionm)인 것 같다.

– 도서관이 어떤 단일 신이 기술한 진리 집합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면, 도서관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은 사실 자연에 숨어 인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굳이 인류일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어떤 법칙과 지식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이 지식들 중 일부에서 발견한 패턴을 기반으로 하는 귀납적 추론으로 그 지식 중 일부를 해금하고 이 지식과 또 귀납적 추론들을 사용하여 해석 불가능한 자연을 해석 가능한 자연으로 바꾸어나가려고 한다.

– 도서관의 모든 지식의 해석 과정에는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 능력>과 플라톤의 <모방론>에 등장하는 층위들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사실, 이 두 가지가 결여되는 경우 도서관에서 사서들의 지식 해석 과정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 <미메시스 능력>이 없었다면 사서들은 도서관의 책들에서 동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귀납적 추론을 하지 못한다. 애초에 사서들은 책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 유사성을 기반으로 기표를 기의로 전환하여, 그리고 다시 기의를 종합하여 얻은 것, 그리고 이것들을 종합하여 얻는 어떤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 <모방론>의 층위들이 결여되는 경우 사서들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번역본이 사실 같은 대상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 도서관이 검증하고자 하는 것은 도서관은 “모든 지식을 모든 언어로 담고 있다”이다. 인류는 모든 지식을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로 해석한다. 지식의 해석 과정은 단 하나의 언어에 국한되어 일어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의 <미메시스 능력>을 발휘하여 자연을 이해 가능한 어떤 대상으로 (해석된 텍스트로) 바꾸어놓는데, 이 때 사람들 사이에 <미메시스 능력>으로 해석되었을 때에 동일하게 연상되는 것이 없다면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플라톤의 <모방론>이 필요한 지점이다.

– 그러므로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들을 해석하고자 하는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들의 분투의 서사는 세상 혹은 자연에서 그 속에 숨은 진리들은 <미메시스 능력>을 이용해 찾아내고 이해하며, 또한 규명하고 플라톤의 <모방론>의 층위들에 의하여 동일한 것을 연상함으로써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오늘날 인류의 지적 탐구 과정을 투영한 서사로 이해하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