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자살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치적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둘 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으며 행정부의 권한이 심히 강력하다는 점이 첫째일 것이요, 둘째는 정치적 대립이 두 국가 모두 극단에 이르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공통점도 있다. 두 국가는 모두 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스스로 자살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국가는 수년 전 헌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제 원리를 철저하게 파괴한 대통령을 시민의 손으로 끌어내렸고, 다른 한 국가는 선거에 불복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사실상 내란까지 선동해 헌정기관을 공격하는 사태를 만든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두 국가에서 모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그렇게 재집권한 자들이 지금까지의 사회가 만들어둔 합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모두 조롱하며, 극단적인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타협과 공론화의 장마저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을 잘 보장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까지 지켜온 가치들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가져다주는 교훈을 잊어버린 결과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70년대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을지언정, 수많은 사람들은 고문으로 억울히 죽거나 심히 다쳤고, 반대 의견을 외치는 사람은 입막음 당했다. 검열과 의사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사회에서 단지 ‘이전보다 먹고 살기 좋아졌다’는 이유로 침묵하기를 선택한다면, 영원히 침묵해야 할 수도 있음을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눈을 통해 다시 한 번 지각하게 된다.
그렇다, 작금의 두 국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나는 민주주의의 꽃 혹은 본고장이라고 불리던 두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조롱과 웃음거리로 무장한 자들과 동일하게, 상대를 악마화하고 추방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우(愚)를 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내 생각을 표현할 뿐이며, 최소한의 마지노선까지 인내하면서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생각을 듣고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각하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