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不信): 불신과 속단, 그리고 백신
요즘 들어 국내 현안 중, 코로나-19와 관련된 일들 중 가장 논란이 많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신(vaccine) 관련이 맞는 것 같다. 매일같이 정부는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다른 국가와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또 백신을 맞은 후 이상반응이나 부작용과 관련된 수많은 우려의 논평과 목소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질병과 백신이라는 아주 민감한 주제, 특히 사람의 명(命)과 관련된 문제가 현안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양쪽이라 부를 수 있는 각 주체들의 논쟁은 뜨거운 듯 하다. 정부를 비롯한 한쪽에서는 백신은 충분히 안전하고, 국민들의 걱정은 이해하지만 통계 자료를 보았을 때는 특이한 문제가 있지는 않다는 입장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백신의 부작용이나 혹은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정확하고 또 논쟁을 통해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논쟁’이 무엇인지를 혹여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곳곳에서 존재하는 것만 같다. 이를테면 어떤 질병관리청이 특정 연령대의 국민들에게는 AZ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이에 반대되는 입장의 덧글들이 의례 이를 보도한 기사나 혹은 SNS 게시글 밑에 달리기 마련인데, 대다수 국민들은 보다 안전한 화이자 백신을 원하는데 왜 정부는 AZ 백신만을 접종시키려고 하는가, 이것은 불통(不通)이고, 국민에 대한 배반의 행위이다 – 라고 하는 식의 논리가 꽤나 심심찮게 발견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불통(不通)인 쪽은 정부라기보다는 그런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 사람들인 것 같은데, 왜냐하면 백신이라고 하는 것은 ‘원한다고’ 다 그 바람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재난을 맞은 곳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이고, 현재 백신을 개발한 몇 안되는 제약 회사들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과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회사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백신을 끌어오려면 매우 높은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한정된 예산과 자원을 활용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또한 미국과 같이 재정 규모가 압도적으로 거대하지도 않은 우리나라로서는 사실상 원하는대로 물자를 끌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 싶다면 다량의 자본을 투입해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재원이 필요하며, 이는 국가 재무에 부담이 가게 만들 수 있는 다소 위험한 조처이다.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과제란 빠른 일상 생활로의 복귀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경제를 다시 정상화시키고 또한 국민들에게 마스크가 없는 일상을 되찾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게는 선택권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입장을 이해한다면, 과연 우리가 계속 정부를 불통(不通)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정부가 불통(不通)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배경이 정부의 발표나 혹은 홍보가 국민들에게 직접 와닿지 않고 설득력이 없었다면 분명한 문제가 있다. 정부는 항상 본인들의 정책에 대하여 그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그 정당성을 확인시켜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위하여 충분한 수단과 시간, 자원을 동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것이 한 개인에게 명확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개인이 여전히 정부를 불통(不通)이라고 단언한다면 이것은 누가 과연 불통인지 되물어야 될 순간이 아닐까.
논쟁과 비판은 민주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 그러나 결코 논쟁과 비판의 탈을 쓴 비난은 그렇지 않다.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본연적으로 타(他)에 대한 이해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롭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불통(不通)으로서 서로의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건강한 논쟁, 올바른 논쟁은 필연적으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만할 적절한 근거가 사용되며 진행되어야 한다. 논쟁은 타자를 패배시키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여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 아니다. 논쟁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라 양측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여 서로를 이해함으로서, 만족할 수 있는 합의안 혹은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논쟁에 뛰어든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만이 맞다고 주장하는 경우, 그는 논쟁의 본질에 대하여 불행히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누군가가 시사와 관련된 최근 현안의 뜨거운 논쟁에서 보여지는 경우, 우리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건전성, 혹은 사회의 건강함에 대하여 다시금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