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결여

2025-03-24 0 By 커피사유

조금 전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것처럼 새벽에 소설을 읽을 때면 문득 처음 내가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상상력의 결여’. 그 당시 나의 이러한 의사의 바탕에 깔린 문제 의식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던 (실제로도 극한을 향해 가고 있었기도 했다) 그 때의 나는 어느 사람을 보든, 어떤 텍스트를 보든, 아니면 어떤 문제를 보든 그 상황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방정식을 보고 거기에 상응하는 기하적 공간을 곧바로 그려내는 것, 주어진 기술들을 보고 그런 세계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는 것. 항상 그런 일들을 시도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이 어떤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서 애써 만들어내는 상들이 모두 희미한 실루엣으로 몽글거리며 어떻게든 피어오르다가 이내 흩어져버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기로, 한 세계가 언어 내지는 기호로서 흩어져 있기에 그것들을 끌어모아 기억 속에 있는 사물들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적절히 배치시켜 장면들을 재현하는 일들을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 결심으로부터 이제 4년 정도가 지났다. 어느 소설가가 고백했듯 등장인물을 설정하고 났을 때 그가 마음대로 움직여서 더 이상 제어하는 것이 아닌, 그의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말과 행동들을 변태처럼 일일이 기록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는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예전보다는 훨씬 자주 묘사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치 종이 위에 펼쳐진 문장들이 슬쩍 떠올라서는 눈 앞에서 이리 굽고 저리 휘감겨서 일종의 장면을 그려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덕분에 나는 당초에 문제 삼았던 어떤 문제들을 볼 때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시각화를 상상하는데에 있어 겪었던 어려움도 완화되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오늘 미용실에서 몇십 분 정도 생각한 Lagrangian을 이용한 Optimization Problem에서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사고 실험이 더 이상의 주요한 방해 없이 성공해서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마 이 짐작은 틀리지 않았을 것 같다.

어느 정도에 이른 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하철에서의 내가 보았던 광경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책을 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오른쪽으로 조금씩 고개를 까딱거리며 졸고 있고, 누군가는 검은색 유선 이어폰을 귀에 꼽고 짤툰과 유사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으며, 누군가는 웹 소설을 조금씩 넘겨보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품 속에 가지고 있던 펜 한 자루를 들어 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나 하나 뿐인 것 같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대학 새내기 시절, 나의 문제 의식으로 돌아간다.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하나의 느낌은 이제 확장에 이른다. ‘상상력의 결여’. 어쩌면 사람들은 이것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런 문장, 그런 장면, 그리고 그런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