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의 이해(Understanding Western Philosophy) 문답 #11. 결정론과 자유의지론 (엄격한 결정론, 자유의지론, 온건한 결정론)
#1. 우리는 어떤 이들에게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 없다라고 판단하는데에 어떤 바탕 기준을 사용하는가? 이 기준을 위해서는 먼저 행위자에 대한 어떤 속성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응급 상황을 기준으로 이 속성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들이 있다면?
우리는 주로 한 개인이 그 상황에서 “달리 행동할 가능성”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판단한다.
이를테면 광적 · 병적 절도광증에 의하여 물건을 훔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절도광증’에 의하여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그에게 절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필요에 의하여 물건을 훔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은 물건을 훔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절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위자가 달리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행위자가 그 다른 행동에 대한 행동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음이 사전에 전제되어야 한다. 응급 상황을 기준으로 행동가능성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가를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쓰러진 환자를 누군가가 ‘구호할 수 있었느냐’는 다음의 기준에 좌우된다.
- 그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까웠는가?
- 그 사람을 구호할 수 있는 의료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는가?
- 구호를 가로막는 여타의 원인은 없었는가?
#2. 엄격한 결정론은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주장하는가? 엄격한 결정론의 근간에 깔려 있는 기본 가정은 무엇인가? 엄격한 결정론은 도덕적 비난은 어떻게 생각하며, 도덕적 인간이란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는가?
엄격한 결정론은 인간은 자신의 성격에 의하여 결정되는 행동에 따라 행위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행동은 인간 자신의 의지가 관여하지 않고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은 주어진 상황에서 달리 행동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엄격한 결정론은 도덕적 비난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도덕적 비난의 경우는 ‘A가 아닌 B를 했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포함하는데, 엄격한 결정론은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했어야 한다’는 잘못된 문장이라고 본다. 다만 엄격한 결정론은 도덕적 비난은 도구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즉, 도덕적 비난이나 칭찬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행동을 미리 결정짓는 원인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엄격한 결정론은 도덕적 인간이란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조건 지어진 인간이라고 보았다.
#3. 엄격한 결정론의 기본 입장에 대한 비판에는 무엇이 있는가? 각각의 비판은 무엇을 정확히 비판하는가?
엄격한 결정론의 기본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비결정론자들은 우선 엄격한 결정론의 근본 전제인 “모든 행동은 원인을 가진다”라는 전제를 공격한다.
비결정론자들은 우선 이와 같은 전제는 ‘분석적 명제’가 아닌 ‘종합적 명제’로, 귀납 추론을 통하여 얻어진 명제이기 때문에 항상 참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반증가능성이 남는 명제라고 보았다. 그런데 결정론자들은 ‘원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또는 ‘성격에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의 보고에 대해서, “그것은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들은 반박피하기의 오류, 그 중에서도 우물에 독뿌리기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음으로 비결정론자들은 이같은 엄격한 결정론의 기본 입장은 도덕적 언명을 무의미화한다고 비판한다. 엄격한 결정론은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는데, 따라서 다른 행동을 취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도덕적 언명 자체를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비판했다. 물론 결정론자들은 도덕적 언명은 행동에 대한 원인으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덕적 언명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피하지는 못한다고 비판했다.
#4. 심리학적 이기주의란 무엇인가? 심리학적 이기주의에서는 인간은 무엇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하는가? 심리학적 이기주의에서 인간이 달리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인간은 자신의 ‘이익 동기’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는 결정론적 시각을 심리학적 이기주의라 한다. 심리학적 이기주의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려는 ‘이익 동기’에 따라 행위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심리학적 이기주의도 결정론적 시각이기 때문에, 인간이 달리 행동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심리학적 이기주의에서 인간이 다르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능한 것은 그에게 그 행위 이외의 다른 행위가 더 이익이 됨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5. 자유의지론자들은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주장하는가? 그러한 주장의 근거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가?
자유의지론자들은 인간의 행동은 성격과 같은 요소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에는 주로 도덕적인 비난 / 칭찬의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행위에 대한 달리 행동할 수 있을 가능성, 즉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주로 근거하고 있다.
#6. 자유의지론자들은 엄격한 결정론에 대하여 크게 3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이어갔다. ‘성격에 따르지 않는 행위의 존재성’, ‘원리적으로 예언할 수 없는 행위의 존재성’, ‘비관론으로 이어지는 결정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에 대한 자유의지론자들의 비판과, 이에 대한 결정론자들의 반박은 무엇이 있었는가?
#6-1. ‘성격에 따르지 않는 행위의 존재성’
자유의지론자들은 결정론자들의 주장하는 ‘성격에 따르지 않는 행위’가 존재한다며 결정론자들을 비판했다. 이를테면 도덕적 판단의 경우는 성격이나 자신의 이익에 따르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도덕적 판단의 경우는 종종 자신의 성격이나 이익에 전혀 상관없는 행위를 종종 인간은 행한다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결정론자들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재반론을 제시하였으나, 다음과 같은 재반론이 존재했다.
첫째, 도덕적 판단과 같이 자신의 성격에 따르지 않는 행위도 사실 자신의 성격에 규정되어 있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비결정론자들은 성격에 따르지 않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성격에 따르지 않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성격으로부터 기원할 수 없다고 반론하였다.
둘째, 위와 같은 것을 근거로 하여 비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알기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결정론자들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니라, 적어도 도덕적 판단의 경우에 존재하는 ‘성격 등에 근거하지 않는 인간 행위’를 지적할 뿐이라서 위와 같은 비판은 잘못된 오해라고 지적했다.
셋째, 한 개인의 성격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행위를 과연 그 사람의 행위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비결정론자들은 이 같은 반론의 핵심에는 개인의 행위 동기로 오직 ‘성격’과 같은 경험적 자아만을 상정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며, 비결정론자들은 ‘성격’, ‘이익 동기’와 같은 경험적 자아 이외에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자아 등도 있다고 본다고 응수했다.
#6-2. ‘원리적으로 예언될 수 없는 행위의 존재성’
자유의지론자들은 결정론자들이 모든 행위는 그 사전 조건을 알기만 하면 원리적으로 모두 예측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을 비판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그 예언의 내용이 행위자에게 알려지는 경우 행위자의 행동을 원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나 자신에 대하여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심리학자가 있다. 그런데 이 심리학자가 나 자신의 미래 행위에 대하여 예언의 결과를 알려준다고 해 보자.
이 심리학자는 무한 순환의 문제에 빠져 유한한 시간 내에 나 자신의 미래 행위를 예측할 수 없다. 결정론에 따르면, 심리학자가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알려주는 행위 자체도 나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는 원인 중의 하나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 순간 심리학자는 예언의 결과를 다시 예언 도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유한한 시간 내에 예언을 도출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같이 ‘예언의 결과가 알려지는 행동의 예언’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정론자들은 이 같은 ‘예언의 결과가 알려지는 행동의 예언 불능성’의 경우 해당 심리학자가 그 예언의 내용을 알리지 않으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비결정론자들은 그러한 예언의 내용을 알리지 않으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간주하는 것은 결정론은 “확실하다”라고 주장할 때 그 “확실하다”의 의미 자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확실하다”는 어떠한 부가 조건을 달지 않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론자들은 이 같은 비결정론자들의 반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재반박했다.
첫째로 ‘특정 조건을 다는 예언이 지탄받을 것만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를테면 과학의 법칙들은 모두 특정 조건 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술이라는 것으로, 이것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의 두뇌 등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무한 퇴행’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길이 있을수도 있다고 반론했다.
#6-3. ‘결정론은 어쩔 수 없이 비관론으로 빠진다’
비결정론자들은 ‘결정론’은 후회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며, 어쩔 수 없이 비관론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같은 결정론의 측면은 우리에게 전혀 실생활에 유용한 결과나 심리학적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않으므로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우선 결정론의 경우는 인간은 이미 주어진 성격 등의 요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러한 ‘결정론’의 측면은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소망하는 후회 자체를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둘째로 결정론의 경우는 이미 모든 행위는 결정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결과를 바꾸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모두 무용한 것이라는 비관론으로 필연적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결정론자들은 이와 같은 비결정론자들의 ‘비관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우선 첫째로 비결정론자들의 논의를 받아들이면, 비결정론은 ‘원인이 없는 사건’들로 이루어질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어떠한 개인도 그 자신에게 기원하지 않는 사건들에 대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측면에서 결국 비결정론도 유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둘째로 결정론자들은 결정론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후회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필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소망해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예컨대 자연재해를 당한 인간이 과거를 후회하는 행위가 가능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셋째로 결정론자들은 결정론이 반드시 비관론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역시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또한 그러한 인간이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 본성 자체에 내제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 온건한 결정론이란 무엇인가? 온건한 결정론은 엄격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에 대하여 무엇을 비판하였는가? 칸트는 이와 관련하여 무엇을 주장했는가?
엄격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양립하려는 시도를 온건한 결정론이라 한다. 온건한 결정론은 엄격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 모두 “원인과 결과”, 즉 인과성의 관계를 강제력으로 너무 좁게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건한 결정론은 인과성은 강제력만이 아닌 개연성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즉, 이를테면 “A와 B 사이의 인과성”은 “A 다음에는 반드시 B가 일어난다”가 아니라, “A 다음에는 B가 수반될 확률이 높다”라는 말과 같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온건한 결정론은 엄격한 결정론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원인을 가진다”라는 것이 전제되어도, 그들 성격이나 이익 동기와 같은 원인으로부터 항상 특정 행동이 귀결된다고 보는 것은 오류라고 보았다. 인과성은 강제력이 아니라 개연성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행동이 원인을 가진다고 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오류”라고 본 것이다.
인과성과 관련해서 칸트는 법칙을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으로 나눈 바가 있었다. 칸트는 자연법칙은 그 속에 필연성을 포함하고 있는 법칙으로, 사실 명제를 기술하는 법칙이라고 말했으며, 도덕 법칙은 그 속에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법칙으로, 도덕 명령을 기술하는 법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