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책들은 늘어만 가고
대기과학과 컴퓨터공학이라는 두 가지 전형적인 이과 과목들을 전공해오고 있는 대학 생활이지만 예전부터 나는 지극히 인문학적인 인간이기도 해서, 결국 또 독서회에서 알게 된 두 권의 책을 추가로 주문하고 말았다.
두 권의 책 중 전자의 책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1독일계 미국인 사회철학자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주의 학자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하다.의 일차원적 인간(One-Dimensional Man)인데, 이전에는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저서였으나 지난 6월의 독서모임에서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본문 중도에 등장한 이래 무슨 책일지 궁금하게 된 계기로 찾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이 이 책에 대해서 이전에 들어본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게, 이 책도 사실상 최근에 출간되어 있는 판본이 하나도 없었다. 신규 판매 서적은 당연히 없었고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초반에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각각 나온 판본들의 중고 물건이었는데, 수요가 너무 없어서 그럴까 중고 서점들이 원 정가의 3배 넘는 고액을 호가하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원문의 번역본을 이 정도의 가격을 주고 사야 할지 고민되기는 했으나, 결국 호기심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주문하고 말았다.
후자의 책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두 분과 함께하는 또 다른 독서 모임에서 추천받은 서적인데, 두 선생님을 통해 근 · 현대 철학을 공부해나가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정신분석학과 언어철학에 어떻게 입문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개론서를 하나 소개받게 되었다. 김석 교수의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의 초대라는 서적인데, 선생님의 조언에 따르면 프로이트와 라캉 등, 니체 전후의 정신분석학적인 철학적 전개의 흐름과 주요 사상 및 용어들을 소개해두었기 때문에 이들 철학사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이만한 ‘큰 지도’가 없다는 듯 했다. 자세한 것은 읽어봐야겠지만, 니체에서부터 시작하여 프로이트, 마르크스, 라캉, 들뢰즈 등등에 이르기까지 근 · 현대 철학에서는 인간과 세계에 관해 어떤 질문들을 던져왔으며 어떤 대답들이 존재해왔는지를 살펴본다고 생각하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전자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나와 절판되지 않았기에 중고 물건을 싸게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그리하여 이 두 권의 책이 모두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남은 것은 이제 이들을 읽고 나 스스로 곱씹는 것 뿐이다. 최근 나 자신을 덮쳐오는 멜랑콜리가 은근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읽어야 하는 책은 이들 외에도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레베카(Rebecca), 그리고 못 다 읽은 류츠신의 삼체 시리즈 제3권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내 지적 호기심의 난리통에 읽을 책들은 늘어만 가는데, 정작 읽고자 하는 용기와 시간은 부족한 것이 아닐련지 모르겠다.
주석 및 참고문헌
- 1독일계 미국인 사회철학자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주의 학자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