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대학 속에서 인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던 중 다음과 같은 인용부를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억압되거나 은폐된 부도덕한 성향을 드러내는 능력이 꿈에 있다고 믿으면, 그러한 견해를 다음과 같은 모리의 말보다 더 예리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꿈 속에서 인간은 있는 그대로 벌거벗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과 부딪히게 된다. 인간은 의지력의 행사를 중단하는 즉시 정열의 노리개가 된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양심, 명예심, 두려움이 그로부터 우리를 지켜 준다.〉 … (후략)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김인순 역. 《꿈의 해석》. 열린책들. 2020. 110쪽.
나는 위 인용부를 읽을 때, 문득 모리의 말에서 단어 하나만 바꾸어도 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즉, 내가 보기에는 ‘꿈’이라는 단어를 ‘대학’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문장에 모순이 없다는 것만 같다는 것이다. 모리의 말은 〈그러므로 꿈 속에서 인간은 있는 그대로 …〉 이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도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 속에서 인간은 있는 그대로 벌거벗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과 부딪히게 된다. 인간은 의지력의 행사를 중단하는 즉시 정열의 노리개가 된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양심, 명예심, 두려움이 그로부터 우리를 지켜 준다.〉
오늘 (2022. 3. 2.) 대학의 봄 학기가 개강했다. 적어도 나는, 나만큼은 정열의 노리개가 되고 싶지 않다. 정신을 항상 맑고 똑바르게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비록 나의 현실이지만 ‘깨어 있는 지성’에 가까워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