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아침이 된다. 눈을 뜬다. 잠시 동안의 천국이 펼쳐진다. 그러나 곧 전쟁이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세계의 비합리〉대 〈나의 합리에 대한 향수〉 사이의 투쟁이다. 니체의 표현으로 하자면, 〈나〉와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 사이의 분투다.
매일 아침마다 합리적인,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희망이 떠오른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태양처럼 환하게 나 자신을 비추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곧 새로운 〈비합리〉의 달이 떠오른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침입한다. 그것은 내 합리에 대한 향수를 치명적으로 자극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항하는 투쟁은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이 전쟁은 끝날 수 없다. 매일 반복되기까지 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과 날들 동안, 반복된다.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피곤하지 않느냐고? 그렇다. 또한 끝날 수 없는 전쟁을 명확히 인지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다. 〈희망〉이란 결국은 그 전쟁으로부터 나 자신의 머리를 돌리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매일 정신과 학문의 칼을 빼들고서 전력을 다해 돌진하는 것이다. 〈비합리〉를 〈합리〉로 환원하는 것,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러나 정말 깊이 생각해본 자라면 결코 끝날 수 없을 이러한 전쟁 속에서 칼을 빼들고 용감하게 달려나가는 전사의 모습으로부터 무언가 인간의 위대함의 본질을 엿본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향해 닥쳐오는 〈부조리〉에 대항하고, 이를 직시하며 맞서 싸우려고 하는 모습,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쟁에서 매일 이른바 〈패배〉를 맛보는 그러한 인간의 모습. 우리는 과연 그 모습으로부터 무엇을 보는가. 결코 달성할 수 없을, 거머쥘 수 없는 어떤 것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자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그것이 인간이라면, 그것이 나의 숙명이라면,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전쟁마저도 긍정할 수 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피하지 않겠다. 고개를 돌리는 것은 비겁하니까. 다만 나는 매일같이 스스로의 무지와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절망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왜 〈죽음〉이라는 동일한 결말로 걸어감에도 불구하고 내가 험난한 길을 택하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