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보내면서

2024-12-31 0 By 커피사유

참 다사다난한 갑진년이었다. 개인적 · 사회적으로 참 심란한 해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2년째 끌어오는 연구에 대한 성과가 여전히 나지 못한다는 점이 주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학원 진학을 비롯하여 졸업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지금, 조속한 복귀와 연구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나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이 뿌리에서 뻗어나오는 심리적 문제와 사회 관계에서의 갈등들이 조금씩 가지를 뻗어나간 끝에 이제는 너무나도 위협적인 규모가 되었기에, 더는 회피하지 않고 결단해야 한다.

심리적 · 철학적인 영역에서 올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두 가지, 하나는 《OMORI》이고 둘은 도가(道家) 철학이다. 둘 모두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를 되돌아보는데 있어 아주 훌륭한 거울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 대해 말하자면, 주인공의 무의식이 트라우마를 숨기기 위해 어떻게 기억 속의 구체적인 사물들을 치환하거나 묶어내는지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그러하듯 유감없이 살펴볼 수 있었고, 이 비교 · 대조 작업 중 주인공의 서사와 나 자신의 상황이 상당히 유사해보인 나머지(물론 상당한 논리적 오류가 있지만… 오류를 저지르는 모순적 존재이기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다) 그와 나를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잠시나마 느낄 수도 있었다. 여름에 출발한 물음이 이번 겨울 기말 보고서를 통해 일시적 종착역에 이른 도가 사상의 경우, 니체 철학과 도가 사상을 연관지어 생각해보며 진리 · 사상 · 견해의 절대성, 정의와 도덕, 학문의 정설과 비학문적 주장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의 삶을 옭아매던 매듭 중 하나를 명확하게 인지하는데 성공한 나는 이제 따라서 이제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마주할 준비가 조금이나마 더 된 것이다.

… 내 안에서 꿈틀거리던 수많은 질문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12월에 벌어진 사건사고들을 통해 보다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양태와 힘을 획득했다. 기말고사 기간으로 사실상 두문불출하던 12월 첫 주, 어느 날 밤에 느닷없이 선포된 그 목적이 명백한(선포를 행한 당사자는 비겁하게도 부정하고 있지만) 비상계엄 덕에 일주일처럼 느껴진 6시간의 새벽을 보낸 경험(당시 나는 목숨과 양심 사이를 저울질하는 진정으로 철학적이고 심오한 사유를 전개할 수 있었다. 최소한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말이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머리 끝까지 올라온 분노를 분출하기 위해 또한 최초로 집회에 참석한 경험, 매일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뉴스에 경악한 경험, 그리고 위정자들의 책임없는 태도를 보며 민주주의의 가치와 그 취약성에 대해 숙고한 경험, 그 모든 일련의 경험들이 스스로의 내면으로 진입 · 혼합되었고, 이렇게 맞닥뜨린 질문들을 하나씩 해부하며 사유하는 나의 정신은 이제 기나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얻은 듯 하다.

이틀 전의 참사로 가장 가슴 아프고 참으로 애통한 연말이 되었음에도, 나는 지난 1년의 경험이 나를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이끌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니체와 도가 철학, 정신분석학,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순적인 존재이며, 그 불확실한 토양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밀란 쿤데라가 일찍이 지적했듯 ‘키치’와 함께 사는 존재임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가오는 2025년을 앞두고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기억하고자 한다. 이 문구를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얻은 최고의 결실이니 말이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살아가는 나날 동안 줄곧 끊이지 않고 따라다니며 둔탁하게 울리는 이 소리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이 소리는 꼭 필요하다는 것 뿐이다. … (중략) … 불꽃에 복종한다는 것, 그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따금 어려움에 맞서서 겨루어 봄으로써 자신을 판단하는 일은 유익하다.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 (중략) … 그러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정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단 한 가지의 보는 방법에 만족한 채 모든 정신적 힘들 중에서 가장 미묘한 힘인 모순 없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것은 다만 어떤 사고 방식을 정의한 데 불과하다.

이제부터는 실제로 사는 문제가 남아 있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