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참회록”, 윤동주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그가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미 멸망한 옛 어느 왕조의 유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의 세월을 그가 시대의 어둠 속에서 단 한 번의 결정으로 – 그렇게 될 바에는 왜 살아왔는가… 그의 부끄러움이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지를 자문하며 한없이 묻어나오고 있다.
참회의 글. 그렇지. 나 또한 무슨 기쁨을 바라 만 십칠 년을 살아왔던 것인가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 나의 자손과 – 자손의 자손과 – 또 그들의 자손을 위해 아름다운 지구도 물려주지 못하는 죄스러운 인간이, 무슨 기쁨을 바라 만 십칠 년을 살아왔던 것인가.
오늘의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그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뻔뻔한 인간이, 무슨 기쁨을 바라 만 십칠 년을 살아왔던 것인가.
문제가 있음을 충분히 알고서도 침묵하며 방관하는 파렴치한 인간이, 무슨 기쁨을 바라 만 십칠 년을 살아왔던 것인가.
나는 끝없이, 끝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음 세대 – 내가 나의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서는 도대체 무엇이라 말해줄 것인가, 당장 내가 나의 후배들에게 – 그들이 가진 찰나의 어리석지만 어리석지 않은 – 아름다운 꿈을 위하여 진실을 숨기는 것이 과연 옳을 것인가. 수많은 물음들이 나를 괴롭히는 요즘,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아프게 하는 요즘, 수많은 참회들이, 허무의 윤회가 나를 끝없이,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요즘.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윤동주 그처럼 써야 할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홀로 부끄러워하며, 아파하며, 아직 여물지 않은 나의 오래된 구리 거울 – 아직 곱게 풍화작용하고 있지 않을 어린 나의 울음을 부드럽게 문질러본다.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듯이, 그저 어느 운석 밑에서 혼자 울고 있는 괴로운 어린 아이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 나의 거울 속에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