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이 나간 듯 텅 비어있는 가면의 표정: 권여선의《봄밤》을 읽고서
“영경은 똑같은 표정이었다. 수환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두려워하는, 넋이 나간 듯 텅 비어있는 가면의 표정.”
권여선의 《봄밤》을 읽은 나에게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분명히 위와 같은 두 문장을 고를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언급되고 있는 그 표정, ‘넋이 나간 듯 텅 비어있는 가면의 표정’은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수환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영경과 수환의 관계, 소설 안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알-류 커플’의 아슬아슬한 관계의 곡예를 목격하면서 진땀을 쥐었다. 그러나 그 진땀의 결말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기 보다는 오히려 일련의 허무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두 사람의 비극적인 인생사가 결국은 한 요양원에서 죽음과 미쳐버림이라는 극단의 두 비극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공허감의 주된 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내가 느낀 허무함의 원천은 두 사람이 맞은 비극적 운명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이 괴상한 감정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것의 정체를 발견하게 되고는 소리없이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내 가슴 한 켠을 차갑게 궤뚫고 있던 절망의 씨앗으로부터 뻗어나온 가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해하는 ‘넋이 나간 듯 텅 비어있는 가면의 표정’이라 함은, 곧 ‘빠져나올 수 없는 죄악’이었기 때문에 나는 영경의 삶을 다시 회상해보았다. 작중에 등장하는 단서들을 기초로 하여 그녀의 삶을 재구성하면, 그녀의 삶의 비극 – 즉, 국어 선생이었지만 이혼 이후 재혼한 남편 측에게 자신의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잃는 배신으로 얼룩진 비극 – 을 살펴볼 수 있었고, 그 다음에는 그녀가 ‘알코올’에 손을 댄 이유도 어림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점이 여전히 있었다. 그녀는 왜 ‘수환’을 결혼식장에서 보고서는 ‘은근한 감정’을 느꼈는가. 이것만큼은 여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겉보기에는 둘 다 ‘비극적’ 또는 ‘고통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오며 제각각의 이유지만 어찌 되었든 ‘삶을 어렵게 이어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인가? 아니다. 결혼식장 뒷풀이 술자리에서 서로 얼굴과 행동만 유심히 보고 무언가가 둘 사이에서 싹이 텄다는 표현이 등장하게 된 것의 배경으로는 그러한 설명은 너무 성의가 없다. 나는 이 이유를 한참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어떤 결론을 하나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론은 ‘두 사람 모두 넋이 나간 듯 텅 비어있는 가면의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애써 이를 숨겨온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표정’을 한 때 가져본 적이 있으며 동시에 아마도 아직도 가지고 있을 나로서, ‘절망의 씨앗’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비극의 ‘표정’을 숨겨오는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서로가 그 사실을 이윽고 알게 된다. ‘극한의 절망’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애써 웃고 있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보기 때문에 영경과 수환 사이에는 빠르게 인연이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런 경험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불합리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 경험을 여기에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가 이 아픈 경험을 여기에 간접적으로나마 언급이라도 하는 이유는 ‘영경과 수환’을 바라볼 때 ‘우리 속에서 어떤 것이 끄집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슬퍼도 못 우는 거 알지? – 그 말을 듣고 수환은 환하게 웃으려 했다.”
“보름밖에, 보름밖에라. 그게 아닌 거거든, 내 지랄병은, 보름씩이나 인 거거든.”
… 이들 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은 분명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