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2. Masquerade
생각을 움직여 다른 꿈을 꾸다. 동상이몽(動想異夢) 시리즈는 커피, 사유의 카페지기 커피사유의 시사 평론 및 생각 나눔의 장이자, 세상을 향한 이해를 표현하는 공간입니다.
Dear Andre, what a splendid party
The prelude to a bright new year
Quite a night, I’m impressed
Well, one does one’s best
Here’s to us
The toast for the city
What a pity that the Phantom can’t be hereMasquerade! Paper faces on parade
Masquerade! Hide your face so the world will never find you
Masquerade! Every face a different shade
Masquerade! Look around, there’s another mask behind youFlash of mauve, splash of puce
Fool and king, ghoul and goose
Green and black, queen and priest
Trace of rouge, face of beast, faces
Take your turn, take a ride
On the merry-go-round in an inhuman race
Eye of gold, true is falseCurl of lip, swirl of gown
Ace of hearts, face of clown, faces
Drink it in, drink it up till you’ve downed
In the light, in the sound but who can name the face?Masquerade! Grinning yellows, spinning reds
Masquerade! Take your fill, let the spectacle astound you
Masquerade! Burning glances, turning heads
Masquerade! Stop and stare at the sea of smiles around youMasquerade! Seething shadows breathing lies
Some of the lyrics of ‘Masquerade’, from the Phantom of the Opera
Masquerade! You can fool and friend who ever knew you
Masquerade! Leering satyrs, peering eyes
Masquerade! Run and hide, but a face will still pursue you
언젠가 나는 어느 새벽에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본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서로가 감시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추악한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좋은 것들만 보여 주고 싶어서, 저들마다 자신의 가면을 만들고 그것으로 애써 스스로를 감추는 것은 아닐까. 당시에 나 스스로가 이런 생각에서 내린 결론은 일단 적어도 ‘나’는 그렇다라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생각해볼 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내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워낙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인간 관계를 맺는데 문제나 어려움이 많고 미숙한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나는 그 누구에게도 솔직한 나 자신을 보이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나는 매일 가면을 쓰고 학교를 가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솔직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뿌리내린 가면이라고 하는 것은 쉽사리 벗길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 가면을 벗었을 때 드러나게 될 나에 관한 추악하거나 혹은 괴상한 몇 가지 진실들이 드러나는 것을 나는 심각하게 두려워했기도 때문이며, 그 가면이 벗겨질 경우 주변을 가득 메울 사람들의 비명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적어도 약 3~4년을 적어도 나는 가면을 쓴 채로 계속 살아야 하고, 이러한 가면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비애로 어느 새벽마다 우울한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본 뉴스는 비단 이러한 우울하고 비극적인 서사가 나 자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해 주었다.
… 적어도 내용은 그렇게까지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요약하자면 그렇게 고급스럽고 각종 양식과 절차를 복잡하게 얽매면서까지도 무언가를 지키고자 했던 한 조직에 관한 폭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 맞지 않는 어떤 것을 추구하지만, 드러내기에는 싫고 그냥 은근하게 움직이려는 그러한 조직이라는 이 폭로에 어떤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의 입과 나 자신의 입은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소리 내어 이 이야기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으나 이윽고 나는 그러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나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세상 앞에서 자신의 추악함을 드러내보이지도 못하고 ‘가면’을 쓰기를 고수하는 한 존재가 과연 다른 존재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즉, ‘가면’을 쓰는 사람이 ‘가면’을 쓰지 말라고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나의 은근한 마음속의 울분은 결국 다시 또 한 번의 우울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결국 어쩌면 영국 왕실도 그들의 ‘가면’을 벗고 싶지 않은 것일 것이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가면’이 벗겨지고 자신의 본래 얼굴이 보여질 때, 상대가 지를 비명이 너무나도 두렵고, 자신이 덧없이 추악한 존재로 비추어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 ‘가면’을 계속 쓰겠다는 고집이 우리 스스로를 더욱 추악하고 상처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가면 뒤에 상처를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가면’을 벗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가면’이 우리 스스로의 얼굴에 뿌리내린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우리가 ‘가면’에 뿌리내린 것이 이유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불쌍한 ‘에릭’이 생각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는 크리스틴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음악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그는 크리스틴이 자신의 끔찍한 얼굴을 볼 까봐 얼굴의 절반을 하얀 가면으로 가리고 다닌다. 그의 이러한 조심성은 불운하게도 크리스틴의 호기심에 의하여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크리스틴은 에릭의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에릭은 계속 크리스틴에게 그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결국 크리스틴은 자신이 원래 사랑하던 이인 라울에게 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남은, 불쌍한 에릭은. 결국 생을 마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이 비극적인 오페라의 유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가면이 벗겨진 이에게 만약 주어지는 것이 ‘생의 마감’이라는 유일한 선택이라면 나,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가면에 더욱 강하고 깊게 뿌리를 내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은근히 가면 없는 세상을 어느 새벽에 꿈꾸기도 하지만, 이미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므로 더없이 우울해지기만 할 뿐. 그저 가면들의 향연일 뿐, Masquerade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