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8. 격동기 속에서

부활 #8. 격동기 속에서

2025-01-27 0 By 커피사유

부활(復活) 시리즈는 카페지기 커피사유가 과거에 써 둔 어떤 글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첨언과 수정을 가함으로써, 과거의 생각을 현재로 다시금 불러오고 되살리며 새로운 해석을 부여해보는 공간입니다.

격동기 속의 인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1.

덕수궁 준명당. 준명(浚明)은 ‘다스려 밝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다스려 밝혀야 하는 것인가?

대학의 개강을 하루 앞두고 나는 홀연히 덕수궁에 가고픈 욕구를 느꼈다. 그것도 나즈막한 오후 중이 아니라, 저녁을 먹을 시간 즈음이 되어서 말이다.

사실 덕수궁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욕구가 왜 피어올랐는가 알기 어려웠다. 컴퓨터공학을 이제 추가로 복수전공한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는 모종의 긴장감 때문인가, 아니면 스스로가 니체 철학에 심취한 나머지 그의 주장대로 ‘앉아 있지 않은’, ‘근육이 활발히 움직일 때의’ 생각을 원했기 때문인가. 이러한 토양 위에서 나는 그나마 살아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숨이 막힌다고 느끼던 대학을 벗어났던 것이다. 이율배반적이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서 수많은 사상과 과거 사람들의 궤적들을 살펴봄에 따라 ‘어제의 나’를 살해하면서 새로이 태어난다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오로지 뒤틀린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려는데 혈안이 된 이들로 가득찬 강의실을 만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과연 지금 내가 재학하고 있는 이 대학을, ‘니체적 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풍토라던가 아니면 니체 식의 표현으로는 〈공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듣지만 여전히 엘리티시즘에, 능력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 바로 이러한 공간이 나의 대학이 아니던가. 하지만 대학 바깥에서, 학문의 바깥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이 내뿜는 공기라도 딱히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견딜 수 없어하는 바로 이 공기는 이 도시에도 가득 퍼져있는 것 같다. 도처에서 나는 키치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만난다. 복잡하고 더러운 공기를 가진 도시, 그리고 마찬가지의 대학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욕망은 아마 이러한 배경 위에서 나타난 것이리라.


#2.

덕수궁 함녕전 내부. 지금은 일월오봉도를 뒤로 한 초라한 의자 하나가 있다.
분명 그 때는 더 화려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초라하다.

덕수궁을 돌아보면 그곳에 존재하는 세 개의 시간선을 보게 된다. 특히 어느 저녁에 홀로 산책을 나가서 그 고궁 한가운데에 조용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면 더더욱. 거기에 존재하는 세 개의 이율배반적인,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선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서 있다. 어스름한 여명 속에서 그런 시간선을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는 자는 분명 소수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도시, 이러한 공기 속에서는 더욱이.

나는 얼마 전 완독한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야마다 무네키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그러한 시간선에 유독 주목하게 된 계기를 제공해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자이 오사무 이후 나는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니체를 선택하고 집착해왔다. 하지만 야마다 무네키의 소설을 덮으면서 나는 하나의 가설을 세운 바 있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은 ‘다자이 오사무’와 ‘니체’의 변증법적 합(合)이 아닐까. 조금 더 ‘니체적 용어’들로 문장을 바꾼다면 모든 인간은 ‘데카당’과 ‘반-데카당’의 변증법적 합이 아닐까하는 바로 그러한 가설. 물론 그 출발점이 나 자신에 대한 고찰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그 고찰의 배경에는 스스로가 처한 정신적 방황 혹은 일일이 찾아다니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한다. 하지만 덕수궁의 방문, 바로 그러한 희한한 선택을 한 계기가 무엇이었던가. 나는 이 방황이, 이들 가설이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3.

덕수궁 함녕전 뒤편. 여기서는 세 개의 시간선 중 두 개가 혼재되어 있다.
처마 밑, 난간에 기대어 고종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덕수궁에는 세 개의 시간선이 혼재되어 있다. 오른쪽에서 경복궁 · 창덕궁 등의 다른 고궁들에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조선의 200년 묵은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침전 그리고 국가 행사를 위한 건물들을 볼 때면, 왼쪽에서 격동하는 개화기 속 나름대로 서양 문물이나 문화 양식을 도입하면서 자주 근대국가를 희망했던 대한제국기의 ‘서양 신고전식’ 건물을 보게 된다. 당대의 혼란과 혼동을 상징하는 이들의 공존을 위로 덮은 이 숨막히는 도시의 현대식 스카이라인은 무자비하게 서 있다. 혼란 속에서, 여명 속에서 건물들은 그렇게 서 있는다.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마치 나에게 정확하게 과시하려고 하듯.

그 장면과 함께 순간 나는 건물들 사이사이마다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를 보았다. 그는 이양선 등으로 대표되는 외세의 간섭, 그러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자주성’을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러한 ‘자주성’에 대한 추구가 과연 효과적인 것이었나 아니면 역사적으로 바른 것이었나의 해석은 역사학자들의 몫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한 ‘자주성’을 외치면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함 속에서도 나름의 심란함과 고통을 견디면서도 천천히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간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어떨 때는 홀로 밤을 보내고 어떨 때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의 목숨에 대한 위협에 떨기도 했을 것이며 상대와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상대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는 경우도, 자신이 내딛는 발이 과연 정확한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적어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도 겪으면서 온몸을 비틀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들이 건물들에 ― 석조전 창문마다, 함녕전 기둥마다, 준명당 기단마다 ― 겹쳐 보였던 것이다. 집무 중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던 그의 모습, 무서움 그리고 낯섬 속에서 겨우내 잠을 청하던 그의 모습. 그것은 나의 가설의 연장선이 아닌가. 숨막히던 공기 그리고 답답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몸부림치는 모습. 고종과 나 자신이 동일시됨에 따라, 나는 그가 인간의 참된 모습, 주체적인 ‘인간’, 도전하는 ‘인간, 그 인간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남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4.

덕수궁 석조전. 고종의 침실이자 서재로 쓰였다.
기둥 사이사이의 창문 뒤로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외로웠을까, 불안했을까. 그는 어떻게 서 있었던 것일까.

결국 덕수궁 속에서 발견된 것이란 모두 격동기였던 것이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의 황제로 칭제건원한 고종이라는 한 사람의 격동기, 그리고 새로운 대학 학기를 맞이하는 나의 격동기.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려다보기 힘든 눈보라 속에서 나아가는 존재. 그 눈보라에 때로는 쓰러지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일어나기도 하면서, 비틀거리지만 천천히 걸어나가는 존재. 삶이 그런 것이다. 인간이 그런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 이것이고, 니체에게도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이 바로 이것일 터.

격동기 속의 인간. 나는 대학의 새 학기를 맞이한다. 봄을 맞이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정을 넘은 것이다. 해가 떠오르고 뉘였던 몸을 다시 일으켰을 때, 나는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을까? 이 풍토 속에서, 이 혼란스러운 공기 속에서 나는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자. 니체를 기억하고, 다자이 오사무를 기억하자. 원래 인간은 다자이 오사무와 니체의 합이라고 말하자. 고종을 기억하겠노라고 말하자. 본래 인간이란 무엇인가 흔들릴 때마다 되뇌이자.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므로.


Resurrected from 〈격동기 속에서〉 on 2 Mar 2023.

이 글에 사용된 사진들은 19 Jan 2025에 다시 덕수궁을 방문해 찍은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