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Rues de Paris

Les Rues de Paris

2025-01-15 0 By 커피사유


Non, Rien De Rein, Non, Je Ne Regrette Rein
(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Egal!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모두 내게 똑같답니다!)
Non, Rien De Rein, Non, Je Ne Regrette Rein
(아니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대가를 치렀고, 쓸어버렸고, 잊혔어요. 난 과거에 신경쓰지 않아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ein 中

이야기

의미란 무엇인가? 언어철학 · 형이상학 · 의미론 등 서양철학사의 여러 갈래들에서 조금씩 다른 의견들이 개진되어왔지만, 최소한 어떤 대상의 의미는 그 대상이 다른 사물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지적만큼은 공통적이다. 음악의 의미란 무엇인가? 의미가 만약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음악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가치란 결국 그 음악과 연계되어 있는 다른 대상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결코 드러낼 수 없다.

대상과 의미 사이의 관계 그리고 구조를 고민한 대표적인 철학자로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있다. 그는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과 기의(시니피에, signifié)의 관계를 처음으로 구조화했다. 그는 말이 가지는 감각적 측면, 예컨대 어떤 단어 그 자체를 표기하는 문자와 그 단어를 읽는 음성 그 자체를 기표(시니피앙)이라고 불렀고, 그 기표가 연상시키는 것, 그 기표가 의미하는 것을 기의(시니피에)라고 칭했다. 질문 하나, 음악은 기표인가, 기의인가? 존 케이지 등 현대 음악가들은 4’33”이나 Imaginary Landscape No. 4와 같은 작품들을 세상에 보이면서 음악 그 자체가 기표인 동시에 기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괴델, 에셔, 바흐》 제20장에서 분명히 지적했듯 “어떤 물건이 화랑에 전시되거나 〈작품〉이라고 이름이 붙을 때마다 그것은 깊은 내적 의미가 있다는 아우라를 획득”1… (전략) … 그런데 선에 관심을 가졌던 존 케이지가 음악과 마찬가지로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친구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션버그는 대상을 대상 자체에 대한 기호로써, 또는 뒤집어서 기호를 그 자체로 대상으로서 사용함으로써 대상과 기호의 구별을 탐구했다. 이 모든 것의 의도는 아마, 미술이 실재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다는 개념 ― 즉 미술은 “코드”로 말하며 감상자는 그것에 대한 해석자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개념을 허물려고 하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발상은 해석 단계를 제거하고, 물체를 있는 그대로 그냥 존재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마침표. (“마침표” ― 사용-언급이 모호해진 기이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도라면, 그것은 기념비적인 실패작이었고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물건이 화랑에 전시되거나 “작품”이라고 이름이 붙을 때마다 그것은 깊은 내적 의미가 있다는 아우라를 획득한다 ― 감상자에게 의미를 찾지 말라고 아무리 경고해도 소용없다. 사실, 역분사의 효과가 있어서 그로 인해서 감상자는 이 물건들을 신비화하지 말고 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신비감을 느낀다. … (후략) …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 《괴델, 에셔, 바흐(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박여성 · 안병서 역, 까치, 2013. pp. 971-972.
하기에 미술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음악도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름 위에서 평가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결국 기표(시니피앙)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된 음악들은 따라서 각각이 하나의 기표이다. 그러나 무엇을 가리키는가? 다시, 어떤 대상의 의미는 그 대상이 다른 대상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프랑스가 등장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의다. 감상자는 표지를 장식하는 에펠탑이라는 기표를 본다. 플레이리스트의 제목 즉 ‘파리의 거리’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Les Rues de Paris’라는 기표에도 주목해본다. 노래에서 간간히 들리는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이라는 음성학적 기표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이 2024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셀린 디옹(Celine Dion)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라는 점에 주목할 때 떠오르게 되는, 파리의 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에펠탑 위에서 불후의 명곡이자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가 부른 최고의 샹송이라 할 이 곡을 부르는 그녀의 프랑스어 발음이라는 복합적 기표를.

기표에 상응하는 기의는 이처럼 기표들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배치 · 관계를 맺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확인하거나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나는 한 가지 기표로써 기능할 질문 하나를 여기에 던진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기표인가, 기의인가? 자기 지시가 가능한 존재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주체가 자신과 독립적으로 상정하는 대상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모두가 동의할 만한 것은, 주체가 기표와 기의 둘 중 어느 것에 해당하든지 ‘나’의 의미는 나 자신이 다른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점일 테다.

그러니 과거에 겪었던 모든 사건들, 사람들이 ‘나’에게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은 그것이 행복이었든 불행이었든 결국 지금의 ‘나’가 누구이며 ‘나’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를 밝혀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에디트 피아프가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ein)”라고 말했던 것은 어쩌면 단순히 훌훌 털어버리고 비상하는 태도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묻고 그 의문을 끝까지 따라가는 과정에서 체득하게 되는 철학적 귀결을 바탕에 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Tracklist

주석 및 참고문헌

  • 1
    … (전략) … 그런데 선에 관심을 가졌던 존 케이지가 음악과 마찬가지로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친구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션버그는 대상을 대상 자체에 대한 기호로써, 또는 뒤집어서 기호를 그 자체로 대상으로서 사용함으로써 대상과 기호의 구별을 탐구했다. 이 모든 것의 의도는 아마, 미술이 실재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다는 개념 ― 즉 미술은 “코드”로 말하며 감상자는 그것에 대한 해석자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개념을 허물려고 하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발상은 해석 단계를 제거하고, 물체를 있는 그대로 그냥 존재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마침표. (“마침표” ― 사용-언급이 모호해진 기이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도라면, 그것은 기념비적인 실패작이었고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물건이 화랑에 전시되거나 “작품”이라고 이름이 붙을 때마다 그것은 깊은 내적 의미가 있다는 아우라를 획득한다 ― 감상자에게 의미를 찾지 말라고 아무리 경고해도 소용없다. 사실, 역분사의 효과가 있어서 그로 인해서 감상자는 이 물건들을 신비화하지 말고 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신비감을 느낀다. … (후략) …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 《괴델, 에셔, 바흐(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박여성 · 안병서 역, 까치, 2013. pp. 97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