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지쳐서 도망치다, 벗어날 수 없는
서윤은 여행 도중 딱 한 번 경민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밤중에 공중전화로 은지 몰래 건거였다. 수신번호가 낯설어 그랬는지 저쪽에선 금방 전화를 받았다. ‘그러지 말자’ 수없이 다짐했건만, 서윤은 경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평소 자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유치한 질문을 했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초해진 서윤이 황급히 병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은지는 엠피스리플레이어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찾아 재생 단추를 누른 뒤 불을 껐다. 은지는 새우잠을 자듯 모로 누워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연주곡을 경청했다. 그러곤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은지가 굳이 이 곡을 튼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윤이 이 음악을 좋아한단 사실을 알아서였다.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멀뚱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먼저 입을 뗀 것은 서윤이었다. 서윤은 무슨 암호 같은 말을 조그맣게 내뱉었다.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은지가 베개에서 머리를 들었다.
“뭐?”
“백석 시잖아. 아내도 없고 집도 없고 한 상황에 무슨 목수네 헛간에 들어와서 천장 보고 웅얼거리는……”
“난 또…… 근데?”
“이게 신의주 어디 박시봉 씨네 주소를 그대로 적은 거잖아?”
“그렇지.”
“고등학교 때 그 설명을 듣는데 그게 좀 먹먹하게 다가오더라고. 제목이 주소라는 게.”
“……”
“뭐라더라, 시적 화자니 주제니 이런 건 모르겠고, 그냥 이 시를 떠올리면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힌 한 남자가 생각나. 자기가 누워 있는 초라한 장소의 주소를 반복해서 중얼대는 사내가.”
“……”
“그리고 낯선 데서 자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주소지를 따라 부르게 돼.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하고.”
“왜?”
“몰라. 궁금해서 자꾸 웅얼거리게 되는가 봐. 따라 하다 봄 쓸쓸하니 편안해지기도 하고.”
“너는 과연……”
은지가 짓궃게 놀려댔다.
“국문학도로구나.”
다시 긴 정적이 흘렀다.
“은지야.”
“응?”
“여기 왜 오자고 그랬어?”
은지가 활달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말했다.
“응? 귀신 보고 싶어서.”
“진짜?”
“응.”
“너는 어떤 귀신 만나고 싶은데?”
“몰라. 백석 만날까? 하아, 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는데.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더라고. 누가 오려나.”
“안 무서워?”
“응.”
은지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럼 너는 누구 보고 싶은데?”
서윤이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나는 아무도 안 만나고 싶어.”
한밤중 서윤은 이상한 기운에 눈을 떴다. 어렴풋이 실눈을 떠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끼이익― 끼이익― 불길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 오래된 나무 계단을 밟고 한 발 한 발 올라오는 기척이었다. 그것은 점점 서윤 쪽 객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은지를 깨우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드르륵― 드르륵―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의 움직임은 계속됐다. 그 께름칙한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서윤 앞에 뚝 멈췄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게 오싹했다. 동시에 침실 주위가 환해지더니 별안간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로 변했다. 서윤은 이글거리는 붉은 노을을 보고 겁에 질린 듯 ‘크나이……’ 하고 중얼댔다. 이윽고 아까부터 드르륵 소리를 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윤은 ‘그것’이 무언지 알아채자마자 가슴이 터질 듯한 슬픔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5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러곤 손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거리에서 폐지를 주웠다. 몇 걸음 가다 허리 숙여 상자를 줍고, 다시 몇 발짝 가다 신문을 그러모으는 식이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절름거리며 골목 안을 누비는 게 살아 계실 적 모습 그대로였다. 서윤의 객실은 곧 대형마트의 ‘자율 포장대’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5백 원짜리 빨래 비누 하나를 사 대형 박스에 담은 뒤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다른 상자를 계속 구겨 넣고 있었다. 물건을 포장하는 척 종이 상자를 수집하는 거였다. 서윤의 양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생전에 폐지를 모아 자신을 키운 할머니 생각이 나 그런 건 아니었다. 할머니가 자기를 못 알아보는 게 서운해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서윤이 그토록 서럽게 우는 건 할머니가 죽어서도 박스를 줍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서윤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지가 화들짝 놀라 서윤에게 다가왔다. 은지는 “서윤아? 괜찮아? 응? 왜 그래?” 하고 물으며 서윤을 안았다. 서윤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침대 위에 뻣뻣이 누워 아주 오랫동안 큰 소리로 울었다.
김애란, 〈호텔 니약 따〉.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pp. 276-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