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판단의 깊이(기피)

2025-09-06 0 By 커피사유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가 품은 생각과 그가 겪은 불행과 그가 가진 심상(心想)의 비밀 속에는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 그의 삶에 대하여 오로지 물리적인 사건들만 알려고 하는 것은 연대기, 곧 바보들의 역사를 작성하는 짓이 아닌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나귀 가죽(La Peau de chagrin)》. 이철의 역, 문학동네, 2009. p. 154.

며칠 전 졸업논문 작성 상담차 방문한 지도교수가 생각났다. 따끔한 충고였고 통속적인 면에서는 필요했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만, 그의 발화가 후벼놓은 잔흔 위에서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버둥거리던 저 문장들을 붙잡아두는데 상당한 수고가 든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 사람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노력의 영역으로 간주되곤 하지만 실은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또 어떤 시각이나 도덕에서 볼 때는 설교되는 행위가 권장된다고 해서 단언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게 재단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