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
“바깥은 정말 날씨가 좋아요.” 나는 둥근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가을인 데다 일요일이고 날씨도 좋고, 어디를 가도 사람으로 가득해요. 이런 날은 이렇게 방 안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게 제일 좋아요, 피곤하지도 않고. 복잡한 데 가 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공기도 안 좋고. 전 일요일에는 대체로 빨래를 해요. 아침에 빨아서 기숙사 옥상에서 말리고 저녁 전에 거둬서 착착 다림질을 해요. 다림질하는 거 별로 싫어하지 않거든요. 마구 구겨진 게 매끈하게 변하는 거, 정말 기분 좋잖아요. 저, 다림질 꽤 잘해요. 물론 처음에는 잘 못 했지만. 여기저기 줄이 가고 그랬죠. 그런데 한 달 정도 하니까 손에 익더라고요. 그래서 일요일은 세탁과 다림질을 하면서 보내요. 오늘은 못 했지만. 애석하네요, 이렇게 빨래하기 좋은 날인데.
하지만 괜찮아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면 되니까. 신경 안 써도 돼요. 일요일이지만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요.
내일 아침에 세탁을 하고 10시에 강의를 들으러 갈 겁니다. 이 강의는 미도리하고 같이 들어요. ‘연극사 2’인데 지금은 에우리피데스를 합니다. 에우리피데스, 아세요? 옛날 그리스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비극의 빅 3로 알려진 사람인데요, 마지막에는 마케도니아에서 개한테 물려 죽었다고 하는데, 다른 설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에우리피데스입니다. 전 소포클레스가 더 좋지만, 취향 문제니까요. 그래서 뭐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그 사람 연극의 특징은 이것저것 마구 뒤엉켜 꼼짝도 못하게 돼 버린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이런저런 사람이 나오는데 그 모두에게 각각 사정과 이유가 있고, 모두가 나름대로 정의와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 탓에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요. 그건 그럴 수밖에요. 모든 사람의 정의가 실현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이 달성되는 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카오스 상태에 빠지고 말죠.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게 정말 간단합니다. 신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죠. 넌 저쪽으로, 넌 이쪽으로, 넌 저놈이랑 같이, 넌 거기서 잠깐 가만히 있어, 그런 식으로요. 배후 조정자 같은 거라고 할까요.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돼요. 이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합니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서는 자주 이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데, 바로 이 언저리에서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평가가 갈립니다.
만일 현실 세계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곤란한 상태에 빠져 옴짝달짝도 못 할 지경에 있으면 신이 하늘에서 하늘하늘 내려와 전부 처리해 주니까요. 이렇게 편한 일도 없죠. 아무튼 이게 ‘연극사 2’입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대충 이런 걸 배워요.”
내가 말하는 동안 미도리 아버지는 멍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그 눈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피스.” 하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민음사. 2024. pp. 375-377.